조승우가 걸쭉하게 부르는 트로트 한 자락, 이건 신의 한 수다('신성한, 이혼')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3. 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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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이혼’, 조승우의 무엇이 이 법정물에 빠져들게 하나

[엔터미디어=정덕현] 또 이혼 전문 변호사야? JTBC 토일드라마 <신성한, 이혼>은 사실 소재적으로 그리 기대감을 주진 않는다. 최근 들어 법정물이 쏟아져 나온 데다, 지니TV <남이 될 수 있을까> 같은 이혼 전문 변호사들의 이야기도 등장한 바 있어서다.

게다가 주인공 이름을 가져와 중의적으로 쓴 제목도 애매하게 느껴진다. 이혼이면 이혼이지 '신성하다'는 건 도대체 뭔 의미인가.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신성한(조승우)' 사이에 쉼표를 찍고 '이혼'을 넣은 제목에서, 이 드라마가 집중하는 것이 이 신성한이라는 특이한 변호사와 이혼 관련 소송 이야기라는 것을 읽어내게 된다.

이 두 포인트에 맞춰 <신성한, 이혼>을 다시 들여다보면 이 법정물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기대감은 다름 아닌 주인공의 매력적인 캐릭터에서 나온다. 첫 회부터 신성한은 나훈아의 '테스형'을 부르며 등장했다. 게다가 낡은 건물에 자신은 '빈티지'라 주장하는 오래되어 문도 잘 열리지도 않는 그런 사무실에서 일한다. 집 냉장고에는 마치 오래된 빈티지의 와인이라도 되는 듯 소주들이 열을 맞춰 눕혀져 있다. 그 소주를 신성한은 트로트를 들으며 와인 잔에 따라 마신다. 그것도 캔 참치를 안주 삼아.

하지만 이것이 신성한이라는 변호사의 전부는 아니다. 사무장이자 친구인 장형근(김성균)의 입을 빌어 이 인물은 뒤늦게 나이 들어 고시를 패스하고 변호사가 된 능력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 관련 소송만 하는 특이한 변호사다. 거기에 어떤 개인적인 사연이 분명 존재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건 2회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이 인물의 범상치 않은 면면들이다.

신성한은 본래 독일 유학을 했고 그것도 피아노를 쳤었던 인물이다. 청계천에 놓인 피아노에 앉아 슈베르트의 '마왕'을 미친 듯이 연주하는 광경이 이 인물의 숨겨진 면모다. 그러던 그가 피아노의 길을 접고 국내로 돌아와 갑자기 법을 공부하고 그래서 변호사가 된 후 이혼 관련 소송만 맡게 됐다는 건, 아무래도 그가 '이혼 소송 관련' 아픈 과거사가 있었다는 걸 예감케 한다.

그래서 슈베르트의 '마왕'을 피아노로 연주했었고, 또 집에 수천만 원대의 스피커로 클래식을 들었을 이 인물은 이제 그 스피커로 나훈아의 '테스형'을 듣는다. 그걸 친구들인 장형근과 조정식(정문성)이 뭐라 하지만 신성한은 그것이 트로트와 클래식을 차별하는 발언이라며 발끈한다. 알고 보면 그 허름한 사무실이 있는 건물도 신성한의 소유다. 어딘가 서민들과는 유리되어 부유하고 우아한 삶을 사는 게 어울릴 인물이 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며, 이렇게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이혼 소송 변호사가 된 것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이유다.

그 개인사는 분명 나중에 밝혀질 것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신성한, 이혼>이라는 드라마에 차별점이자 색깔을 부여하는 신성한이라는 인물의 독특한 캐릭터다. 이 드라마는 이혼 소송을 다루고 있고, 그 중에서도 강도가 센 사례들이 등장한다. 첫 번째 이혼 소송 이야기만 봐도 이서진(한혜진)이라는 기상캐스터 출신 라디오 디제이가 불륜을 저지르고, 상간남이 찍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벌어지는 소송이다. 양육권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남편이 심지어 그 동영상을 아들에게 보여주는 학대이자 패륜까지 등장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며느리를 마치 종처럼 부리는 시어머니의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이 도를 넘는다. 결국 며느리가 참지 못해 시어머니의 등짝을 스매싱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혼 소송이라고 하면 멀리서 보면 그저 부부가 갈리지는 정도의 이야기로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처럼 가까이서 보면 그 강도는 그 어떤 물리적 폭력보다도 더 세다. 소송은 결국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진흙탕 싸움이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소송에 나서는 변호사는 당연히 그 서민적인 서사들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할 줄 알아야 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이 주인공으로서 요구하는 건 서민적인 인물이면서도 어딘가 로망이 되는 그런 인물이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신성한, 이혼>은 드라마로서 그 판타지를 신성한이라는 인물을 통해 구현해낸다. 와인잔과 소주가 겹쳐지고, 슈베르트의 '마왕'과 나훈아의 '테스형'이 겹쳐지며, 허름한 사무실과 건물주가 겹쳐진다.

<신성한, 이혼>은 그래서 신성한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가장 중요한 드라마다. 다양한 이혼 소송 사례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지만, 신성한이라는 인간적이면서도 로망을 자극하는 캐릭터의 매력이 있어 이 사례들에 시청자들은 더욱 빠져든다. 그래서 뮤지컬 배우로서도 정점을 찍은 조승우의 캐스팅은 신의 한수가 아닐 수 없다. 클래식도 트로트도 어울리는 이 인물에게는 걸쭉하게 불러내는 트로트 한 자락과 더불어 법정에서 정색하며 승소를 이끌어내는 양면이 전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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