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경찰관]② 16년 만에 감소한 보이스피싱…서울 내 검거 1등 경찰서 이끄는 김재진 팀장

이학준 기자 2023. 3.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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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재진 서울 강북경찰서 지능팀장
부임 1년 만에 보이스피싱 검거 12위→1위로
범인 잡으려 제주도까지 출장... “밤낮, 휴일 없다”
필요하다면 미행도 하는 지능팀 수사관들… “현장에 답이 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얼굴을 뜻하는 일본어로 체면을 의미)가 없냐?”란 대사로 유명한 한국 영화 베테랑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형사들이 재벌 3세가 연루된 사망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과묵하고 성실한 신출내기와 발차기와 위장이 특기인 여형사, 불도저 같은 성격의 중참 형사가 구름 위 존재인 재벌가 자제를 붙잡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어떤 현실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범죄수사를 포함해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 중인 우리 주변의 서도철(황정민 役)과 봉윤주(장윤주)를 조명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은행입니다. 자영업자 대상 저금리 대환대출 적격대상으로 확인됐습니다.”

문자, 전화를 이용한 사기로 돈을 갈취하는 보이스피싱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끊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만, 피해자들은 “알면서도 홀린듯 돈을 입금했다”고 입을 모은다. 총책은 해외에 있고 조직원은 점조직으로 움직여 피해금액 되찾기도 쉽지 않다.

2006년 5월 국내 첫 피해 사례가 접수된 후 누적 피해금액이 4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지난해 고무적인 성과가 나왔다. 보이스피싱 발생건수가 3만982건에서 2만1832건으로, 피해금액은 7744억원에서 543억원으로 30% 감소한 것. 이렇게 크게 줄어든 것은 16년 만에 처음이다.

이런 성과에 크게 기여한 일선 경찰서 중 하나가 서울강북경찰서(강북서)다. 서울경찰청 보이스피싱 검거 활동 평가에서 2021년 12위에 올랐던 강북서는 작년 순위가 1위로 껑충 뛰었다. 서울 내 31개 경찰서를 대상으로 한 평가다.

일등공신은 2021년부터 지능팀을 이끌고 있는 김재진(48) 경감이다. 지난달 23일 강북경찰서에서 만난 그는 ‘결국 현장에서 답이 나온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경찰 자타공인 보이스피싱 수사 전문가다.

김 경감은 1996년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한 이후 20년 넘게 수사부서에서 일하며 노하우를 쌓은 베테랑이다. 그는 2013년 지능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경감으로 특진한 뒤 지능팀장을 맡았다. 이후 2017년부터 4년 동안 여성청소년범죄팀장을 역임한 뒤 2021년 다시 지능팀장으로 복귀했다.

서울 강북경찰서 지능팀장 김재진 경감./이학준 기자

◇ 67명에게 18억 뜯어낸 보이스피싱 일당 83명 잡으려 전국 일주

그는 작년 보이스피싱 중국 총책 2명의 신상을 특정해 환전책·수거책 25명 등 총 83명을 검거하고 이중 13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67명으로부터 18억7891만원으로 뜯어낸 혐의를 받는다. 김 경감은 지난 1년 간 이들을 잡기 위해 서울·경기는 물론 대전·부산·경남 사천·제주 등 전국 각지를 돌았다.

이 사건이 접수된 건 2021년 8월. 경찰은 범죄에 사용된 통신·계좌를 차단하고, 피해자가 직접 돈을 건넨 장소 주변 CCTV를 통해 수거책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변작 중계기(발신번호를 조작할 수 있는 장비) 유통경로 추적에 나섰다. 실제 발신번호는 ‘070′이지만, 피해자 휴대전화에는 ‘010′이나 수사기관·금융기관 공식번호가 표시되는 식이다.

전국 각지에서 검거된 피의자들의 진술과 추가 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 등을 종합한 결과 변작 중계기 유통의 시작점은 제주도였다. 김 경감은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제주도에서의 탐문수사와 하루가 넘는 잠복 끝에 국내 중계기 관리총책까지 검거했다.

그래픽=편집부

일반적인 보이스피싱 범죄는 중국·필리핀·베트남 등 해외에 위치한 ‘콜센터’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기관·금융기관 등을 사칭해 특정 날짜와 시점에 수거책에게 돈을 건네라고 요구한다. 피해자 휴대전화가 악성 애플리케이션에 의해 해킹된 경우 피해자가 금융기관에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콜센터로 연결되기 때문에 속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돈을 건네받은 수거책은 곧바로 해외에 돈을 송금하지 않는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현금을 2차 수거책, 3차 수거책, 4차 수거책에게 연달아 전달하고 최종적으로 환전책이 현금을 환전해 해외에 있는 상선(관리자급)에게 송금하는 식이다.

이를 수사하는 경찰은 돈이 오고 가는 장소의 CCTV를 들여다보는 등 각종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잠복 등을 통해 수거책이나 중간책을 검거하면 추가 수사를 통해 상위 조직원들을 추적한다. 그렇게 특정된 피의자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가 평균 6개월이나 걸리는 이유다.

김 경감은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하나하나 추적해야 한다”며 “2박 3일로 어디 놀러가는 게 아니다. 피의자를 잡아야 하는데, 시간은 항상 촉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체포했다고 끝이 아니다”며 “체포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신청해야 해서 다시 서울로 올라와 증거를 취합해 검사·판사가 ‘구속이 맞다’고 생각할 정도로 서류를 완벽하게 만들어 올려야 한다”고 했다.

◇ 주범 잡으려 미행도...최근 자영업자 대상 보이스피싱 기승

경찰은 필요하다면 미행도 한다. 김 경감이 이끄는 강북경찰서 지능팀은 작년 1월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의심되는 60대 여성 A씨 뒤를 밟아 상선을 검거했다. 최하위 조직원인 수거책만 체포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보고 A씨가 돈을 건네받아 다른 수거책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쫓아 성과를 낸 것이다.

김 경감이 이끄는 강북경찰서 지능팀은 수거책 A씨가 서울의 모 아파트 인근에서 현금 2000만원을 받는 모습을 포착해 추적을 시작했다. 돈을 받은 A씨는 아무런 이유 없이 서울 일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A씨 근처에는 이른바 ‘옵저버’로 불리는 또 다른 조직원 B씨도 있었다. A씨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 일대를 돌아다니면, B씨는 인근서 함께 이동하며 수거책에게 따라붙은 수사관이 있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김 경감 등은 B씨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추적을 계속했고, 결국 중국 동포인 상선 2명을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었다. 수사 결과 이 보이스피싱 조직은 금융기관을 사칭해 저금리 대환대출을 해주겠다고 속여 한 여성에게만 수억원의 돈을 뜯어낸 것으로 나타났다.

김 경감도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는 “보이스피싱 수사는 증거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녀야 한다”며 “한번 다녀온다고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팀원들도 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고 가정을 지켜야 하는데, 주말에 쉬지 못하고 일만 하고 있다. 팀장으로서 항상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 경감은 보이스피싱 수법이 경기 상황에 따라 변한다고 분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 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는 당장 돈이 급한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금리가 오른 최근에는 저금리 대환대출을 해주겠다는 수법이 활개를 친다는 것이다. 김 경감은 “금융기관은 절대로 대출 상담이나 신청을 권유하지 않는다”며 “수사기관도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김 경감은 보이스피싱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기 위해서는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팀’이라는 것은 서로 도와주며 의지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지능팀 수사관들은 ‘에이스’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힘들지만 범인을 검거하면서 고단함을 풀고 있다”고 전했다.

정재일 강북경찰서장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해 엄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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