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피해자만 있고 책임자는 없다?

김윤호 2023. 3. 6. 05: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강원 주재기자로 일한 지 5년차.

그중 4번의 겨울은 종종 2019년 고성·속초 산불 이재민들과 함께 보냈다.

지난달 고성·속초 산불과 관련해 업무상 실화 혐의로 기소됐던 전·현직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들이 1심과 마찬가지로 항소심에서도 전원 무죄판결을 받았다.

춘천지방법원에 모여 차분히 법원 결정을 지켜보던 일부 이재민들이 격분한 나머지 고성을 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원 주재기자로 일한 지 5년차. 그중 4번의 겨울은 종종 2019년 고성·속초 산불 이재민들과 함께 보냈다.

거처로 직접 찾아가기도 했고 전화 통화로 저간의 소식을 듣기도 했다. 가슴 아픈 사연을 묻는다는 건 언제나 그렇듯 어려운 일이었다. 이따금 책상에 앉아 법원 판결문을 들추며 손해사정이니 구상권 청구, 채무부존재확인 소송, 공소장 변경 같은 법률 용어를 곱씹기도 했다. 대부분 난해했고 뜬구름같이 느껴졌다.

지난달 고성·속초 산불과 관련해 업무상 실화 혐의로 기소됐던 전·현직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들이 1심과 마찬가지로 항소심에서도 전원 무죄판결을 받았다. 춘천지방법원에 모여 차분히 법원 결정을 지켜보던 일부 이재민들이 격분한 나머지 고성을 냈다. “하자는 인정하는데 관련자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게 논리였다. 다른 이재민은 그저 말없이 눈물을 떨궜다. 지난한 법정 공방 끝에 받아 든 허탈한 통지서 한장이 그의 가슴을 한없이 후벼 파고 목메게 한 탓이리라.

항소심 재판부는 전신주 하자로 전선이 끊어져 산불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유죄(업무상 과실)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두명이 사망하고 산림 1267㏊가 소실됐으며 1295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사실상 누구도 형사적 책임을 지지 않게 된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하룻밤 사이에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고 예닐곱평 남짓한 임시 조립주택에 살며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이재민에게 닥친 충격은 자못 커 보였다.

결국 이들은 법원 선고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노구를 이끌고 차디찬 거리로 나섰다. 보름 전부터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 정문 앞에서 1인 릴레이 항의 시위를 시작한 것. 그리고 대법원 상고라는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산불이 발생한 지 벌써 4년이 다 돼가지만 이처럼 법리 다툼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이재민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 역시 답보한다. 6월이면 강원특별자치도가 출범한다. 1월 열린 강원특별자치도 관련 포럼에서 한 발제자는 “강원도에는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산림자원이 있으며, 산불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한 산림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과거 안전하지 못했던 산림으로 피해를 본 이재민들 눈물도 닦아줘야 한다. 이들 가슴속엔 언제쯤 겨울의 엄혹함이 수그러들고 봄의 따스함이 찾아올지, 오늘도 숙연한 자세로 지켜본다.

김윤호 전국사회부 차장 fact@nongmin.com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