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창성의 ‘용산 리포트’] 1.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 인식

남궁창성 2023. 3. 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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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주년 3.1절 기념사 "日 침략자에서 파트너로 규정' 논란
과거 극복과 함께 복합 위기와 북핵 위협 속 협력에 무게
25년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미래 지향성 반영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던 역사학자 E.H. 카아(1892년~1982년)의 정의로 기억합니다.

104주년 3.1절이 있었던 지난 한 주는 한국 사회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3.1절의 기념 방식을 놓고 극렬하게 대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그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읽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의 104주년 3.1절 기념사에 대한 반응은 정말로 뜨거웠다.

기자가 1일 오전 10시40분쯤 기념사를 속보로 전하자마자 양대 포탈에는 댓글이 폭주하며 단 몇 시간 만에 1000여 개의 찬반 주장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지난 5년 내내 일본과 대립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향적인 내용이 담겼다는 점에서 댓글은 부정적인 반응으로 도배됐다.

찬·반 포격전의 과녁이 됐던 기념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104년 전 3.1 만세운동은 기미독립선언서와 임시정부 헌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지금 세계적인 복합 위기, 북핵 위협을 비롯한 엄혹한 안보 상황, 그리고 우리 사회의 분절과 양극화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이 자명합니다.”

이 대목까지는 무난했지만 다음 문장에서 기념사는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찬·반 공방에 불을 댕겼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특히,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독립 유공자에게 훈장을 수여한후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공동취재단

이 단락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 독도 영유권,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많은 국민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하지만 민족의 과거와 함께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며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는 균형잡힌 현실 인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윤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밝혔듯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글로벌 복합 위기, 미·중 패권경쟁 격화, 북핵 위기 고조, 신(新)냉전 체제 형성 등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서 한·일관계 정상화와 한·미·일 3국 협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전략적 결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 3.1절 기념사가 불러올 논란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당면한 한·일 현안을 타개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국민들에게 시그널을 발신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 연장선에서 기념사의 마지막 부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광의 역사든, 부끄럽고 슬픈 역사든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지키고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열을 기억하고 우리 역사의 불행한 과거를 되새기는 한편, 미래 번영을 위해 할 일을 생각해야 하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우리 모두 기미독립선언의 정신을 계승해 자유, 평화, 번영의 미래를 만들어 갑시다.”

윤 대통령은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번 기념사는 향후 한·일관계 정상화와 한·미·일 3국 협력 강화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흔들리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공동취재단

하지만 3.1절 기념사가 불러온 파장은 적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만들자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지만 역사적 책임과 합당한 법적 배상 없이 신뢰구축은 불가능하다. 윤석열 정부는 3.1운동 정신을 망각하고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2일 “일제 식민지배에 전 국민이 항거한 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시된 숭고한 항쟁의 정신과 건국 이념을 부정하는 대통령의 기념사였다”고 평가절하하며 “매국노 이완용과 윤 대통령의 말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비난했다.

용산 대통령실은 반발이 거세자 3.1절 기념사의 진정성을 알리는 데 적극 발벗고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일 “한국과 일본에는 한·일 관계와 관련해 두 가지 세력이 있는 것 같다. 한쪽은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세력, 또 한쪽에는 어떻게든 반일(反日) 감정, 혹은 혐한 (嫌韓) 감정을 이용해서 정치적 반사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연 어느 쪽이 좀 더 국가 이익을 위해서 고민하고 미래세대를 위해서 고민하는 세력이겠습니까. 현명한 국민들이 잘 판단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읽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공동취재단

또 다른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3일 이같은 대통령실 입장을 재확인했다. 야권을 중심으로 ‘이완용’, ‘친일 사관’ 등등 공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나왔다.

그는 “기미독립선언문에 담겼던 정신이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3.1운동은 뒤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가자는 선언이었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 그 정신에 입각해서 임시정부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임시정부 임시 헌장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였다. 왕이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 또 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으로 역사를 바꾸는 임시정부 법통이 세워졌다”며 “그 법통을 이어서 1948년 건국이 이뤄졌다. 지금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그 선열들에게 빚진 것이다. 기미독립선언문을 외친 애국지사들의 미래지향적 정신으로 지금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를 세우고, 보편적 가치를 가진 이웃 나라와 연대하고 협력하고, 번영의 미래를 가져오는 것, 저는 그것이 3.1운동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일관되게 흔들림 없이 가지고 있었던 국정운영 철학”이라고 밝혔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주요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국내 일부에서 비판을 받았지만 국제무대에서 환영을 받았다.

미국 국무부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1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가치를 바탕으로 일본과 더 협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에 대한 비전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이 비전을 매우 지지한다”고 했다. 또한 “최근 몇 달간 양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한·일 양국이 과거사 이슈를 치유와 화해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길 권고해왔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오는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을 초청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외교 소식통은 4일 일본 정부가 오는 5월19일부터 사흘간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을 초청할 의사를 한국 정부에 이미 전달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G7 정상회의의 핵심 현안인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대만 사태, 북한 문제를 논하는 데 있어 윤 대통령의 참석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용산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의 G7 정상회의 참석을 전제로 관련 절차 및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의 제104주년 3.1절 기념사를 계기로 한·일 관계 복원과 한·미·일 3국 협력 강화가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1998년 10월 도쿄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과정에서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자료 제공

지금으로부터 25년전, 1998년 10월8일 일본 도쿄로 가보자.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일본을 공식 방문해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뒤 양국 정상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쉽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공동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체재 중 오부치 게이조 일본국 내각총리대신과 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과거의 양국 관계를 돌이켜보고, 현재의 우호협력 관계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미래의 바람직한 양국 관계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 회담의 결과, 양국 정상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되어 온 양국 간의 긴밀한 우호협력 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쉽을 구축한다는 공통의 결의를 선언하였다’고 전했다.

공동선언은 이어 ‘양국 정상은 한·일 양국이 21세기의 확고한 선린우호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 관계를 돌이켜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대신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하였다’고 밝혔다.

공동선언 마지막 11번째 항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대신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쉽이 양국 국민의 폭넓은 참여와 부단한 노력에 의하여 더욱 높은 차원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공통의 신념을 표명하는 동시에 양국 국민에 대하여 이 공동선언의 정신을 함께하고, 새로운 한·일 파트너쉽의 구축·발전을 위한 공동의 작업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104주년 3.1절 기념사는 사반세기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연장선에 있다는 평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동국대 이종국 교수는 “이번 기념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기미독립선언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국가가 추구할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밝힌 것”이라고 했다. 또한 “윤 대통령이 한반도가 직면한 국제적 환경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처방전으로 가치 공유를 통한 협력 국가의 확대와 강화를 강조했다”며 “미·중 간 치열한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신냉전 체제 형성 등을 보면서 우리가 나가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윤 대통령은 한·일 파트너쉽 강화를 통해 화해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라며 “이번 기념사를 계기로 한·일 양국은 그동안의 갈등을 극복하고 협력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정상회담 등을 통해 현안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남궁창성 cometsp@kado.net
 

* 필자소개 *

▲ 남궁창성 기자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2008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15년 동안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청와대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대통령실 출입 기자다. 지난해 ‘BH 청와대 그 마지막 15일, 북악에서 용산까지’를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강원도민일보 지면은 물론 네이버와 카카오 등을 통해 용산 대통령실 국정을 주제로 전국의 뉴스 콘텐츠 소비자들과 실시간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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