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일 하는데 학폭 아들이 발목잡아 … “유학 보내면 그만이야”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3. 3. 4. 16:24
[씨네프레소-70] 웨이브 ‘약한영웅’과 넷플릭스 ‘소년심판’
*주의: 이 기사에는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과 ‘소년심판’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아버지의 욕망이 자녀 때문에 꺾였다. 고위공직자 후보가 아들의 학교 폭력 전력으로 낙마한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 백을 믿고 더 잔인한 방법으로 폭력을 가했단 사실, 그리고 아버지는 자기 모든 힘을 동원해 아들을 지켜주려 했단 정황이 드러나며 지난 일주일간 대중의 공분을 일으켰다.
국민들이 몇 년 새 지겹도록 봐 온 모습의 반복이다. 자녀의 입시 비리, 음주 운전, 폭행 등 일탈 행위가 알려지며 정치인 부모가 곤란에 빠지는 광경이 잇따라 펼쳐졌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지난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는 권력욕이 강한 아버지가 자식의 일탈로 인해 곤란을 겪는 국내 작품이 두 편이나 공개됐다. 둘 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음은 물론이다.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영웅 클래스 1(Class 1)’과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이다.
‘약한영웅’ … 대외 이미지 때문에 입양한 아들, 친구를 실신할 때까지 때려
‘약한영웅’은 학교 폭력을 제각기 방식으로 헤쳐 나가는 세 학생의 이야기다. 주인공 연시은(박지훈)이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한 자세로 이겨낸다면, 안수호(최현욱)는 강한 힘을 가지고 약한 친구를 도와가며 교실의 질서를 지키는 쪽이다. 학교 폭력을 이기지 못해 전학을 온 오범석(홍경)은 두 사람을 돕기도 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우정을 배워간다.
셋이 점점 강한 상대와 싸우게 되는 스토리에서 그쳤다면 그저 그런 학원 드라마로 남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세 친구 사이에 균열을 주는 방식으로 긴장감을 부여한다. 친구들과 함께 다니는 동안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한 오범석이 어두운 내면을 점점 많이 드러내면서다. 그토록 증오했던 ‘일진’들과 차이가 없어진다. 그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던 것은 착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럴 힘이 없어서일 뿐이었던 것이다.
안수호는 그런 친구의 탈선을 제지하고, 범석은 이로 인해 수호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낀다. 사실 범석은 수호와 가장 친하던 시기에도 종종 그가 자신을 업신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힘센 학생들에게 당했던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급기야는 돈을 주고 다른 학생을 고용해 수호를 폭행하기에 이른다. 수호는 이 사건으로 의식 불명이 된다.
아들이 학폭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양아버지는 분주해진다. 국회의원으로 승승장구했던 자신에게 걸림돌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다. 그는 아들의 범죄 사실을 감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은 필리핀으로 유학 보내버린다. 극에선 따로 다루지 않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을 소모했을 것임은 자명하다.
아들이 끔찍한 내면의 소유자가 되는 데 자신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반성은 하지 않는다. 대외적으로 선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범석을 입양한 아버지는 집에서는 그를 샌드백 대용쯤으로 여겼다. 범석이 때때로 급우의 시선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버지가 때릴 때의 감각이 늘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을 확인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도를 넘어서 상대를 제압하는 건 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소년심판’ ... 국회의원 출마 앞뒀는데, 아들의 시험지 유출이 걸림돌
지방법원 소년부를 다룬 ‘소년심판’에서는 22년 경력을 지닌 부장판사 강원중(이성민)이 나온다. 원중은 소년법 개정을 위해 힘을 쏟고, 늘 소년들을 생각하며 재판에 임할 정도로 의로운 판사다. 총선을 앞두고 신선한 얼굴이 필요했던 정당에서는 그에게 출마를 권유한다. 원중은 법복을 벗고 국회에 진출하기로 마음먹는다.
순탄하던 그의 출세 가도에 느닷없이 브레이크가 걸린다. 바로 자녀가 시험지 유출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하필 그 사건의 담당 판사는 원중 자신이다. “죄 없는 아비까지 물귀신처럼 붙잡지 말고 죽으려거든 너 혼자 나가서 죽어”라고 말할 정도로 원중의 원망은 극에 달한다.
사실 착하고 얌전한 그의 아들이 비리에 엮인 건 모두 아버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판사 아버지는 초엘리트였던 자신의 기준에 못 미쳤던 아들을 무시했던 것이다. 아들은 시험지를 미리 봐서라도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깨끗하게 살아왔던 판사 아버지는 아들 연루 사실을 은폐해야겠다는 유혹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점점 더 커지는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그는 국회 입성에 실패하고, 법원에서도 나가게 된다.
자식의 악행을 감싼 부모가 받을 가장 큰 벌은, 자녀가 죄에 무뎌지는 것
이번 리뷰에 언급한 세 아버지는 각각 아들 때문에 공직생활에 차질을 빚는다. ‘약한영웅’의 국회의원 아버지는 아들의 폭력을 감추기 위해 큰 비용을 지불하고, ‘소년심판’의 판사 아버지는 국회 진출에 실패한다. 현실 세계의 고위공직자 후보는 낙마라는 벌을 받았다. 현재 경찰이 착수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더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꿈이 좌절되거나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기 전부터 세 사람은 이미 벌을 받고 있었다. 그건 자녀가 죄악에 무뎌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의 자녀는 자신보다 약한 자는 짓밟아도 되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부모의 사상을 그대로 배우고 실천한다.
아마 자녀가 학폭과 성적 조작에 연루됐는데도 들키지 않은 부모가 더 많을 것이다. 그들은 벌을 받지 않고 넘어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자녀가 악에 익숙해진 채 사회에 돌아다니는 것 자체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히어로 영화로 치면 그들은 빌런을 키운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로 잘산다고 하면 잘사는 악당일 뿐이고, 힘이 세다고 한들 힘센 빌런일 뿐이다. 누구에게도 존경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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