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계약서 공개 판결에 질병청 항소...코백회 “정치권 다 모인 자리서 따지겠다”
질병청 판결문-백신 계약서 비교 검토 뒤 결론
질병청 “다른 백신 공급 차질” 항변에
원고 측 "제약사 눈치보기식 항소 유감"
피해자단체 국회 토론회서 “진짜 이유 추궁” 경고
코로나19 백신 계약서 일부를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의 1심 판결(국제신문 지난달 18일 자 온라인 보도)에 대해 정부가 항소하기로 하면서 이 사건으로 긴 법정 다툼이 이어지게 됐다. 이에 백신 피해자들은 국민의 생명권을 담보로 체결된 계약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알 권리 훼손을 넘어 법 위반이라고 비판하며, 질병관리청이 이를 통해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정치권과 전문가가 다 모인 자리에서 따져 묻겠다는 계획이다.
▮판결문-백신 계약서 비교·검토한 질병청 “항소 실익” 판단
질병청은 코로나19 백신계약서를 공개하라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28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3일 밝혔다. 양대림 씨가 질병청장을 상대로 지난해 4월 낸 코로나19 백신 공급계약서에 대한 정보공개거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 제6부(재판장 이주영 부장판사)가 지난 10일 원고 승소판결을 내리자 18일 만에 항소를 결정한 것이다.
앞서 양 씨는 지난해 질병청에 국민의 알권리 등을 내세워 코로나19 공급 계약서 내용의 전체 공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질병청은 “백신 제약사와 비밀 유지 조항이 담긴 협약을 체결했고, 이를 위반할 때 코로나19 백신 공급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국민에게 백신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하게 될 우려가 높다.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보호되는 공익이 국민의 알권리보다 훨씬 크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양 씨는 같은 해 4월 질병청장을 상대로 코로나19 백신 계약서를 공개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코로나19 백신 계약서는 헌법 제21조와 정보공개법의 목적 및 취지에 따라 원칙적으로 모두 공개해야 하고, 정보공개법에 적시한 비공개대상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정은경 당시 질병관리청장이 코로나19 백신 계약서에 대한 자신의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비밀유지조항의 존재만으로 비공개 대상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비밀유지의무는 계약 당사자들 사이에서만 효력이 있을 뿐 국민과 법원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이 계약 상대방과의 비공개합의만으로 정보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면 정보공개법은 무력화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판결이 나온 뒤 백신 피해자들은 정부의 백신 구매 계약 내용이 공개되면 그간 소문으로 제기된 정부와 제약사 간 백신 부작용 등과 관련한 불공정한 합의 내용이 드러나 백신 피해 보상 등에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질병청은 판결문과 해외 제약사 4곳과 각각 체결한 계약 서류를 검토, 계약서에 포함된 비밀유지 조항을 준수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우리 정부와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한 해외 제약사는 모더나·화이자·얀센·아스트라제네카 등으로, 질병청은 이들 업체가 다른 나라와 계약 때도 각기 다른 수준의 비밀유지 조항을 넣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질병청 “백신 공급 차질” 변명에도 피해자들 “진짜 이유 추궁” 경고
질병청은 항소심 날짜가 잡히면 추가적 입장을 소명할 계획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계약서가 원문 그대로 공개되면 비밀유지 조항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저촉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얻을 이익과 공개함으로써 얻을 이익을 비교해 항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차후에도 코로나19 외 신종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글로벌 제약사를 통해 백신 공급을 받아야 한다”며 “만약 이번에 계약서가 공개되면 이후 백신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소를 제기한 양 씨 뿐 아니라 백신 피해자들은 “기대했던 백신 계약서 공개가 늦어져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또 “2심 법원이 질병청의 항소 이유를 토대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항소심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양 씨는 “백신 계약서 공개를 명한 1심 판결이 정당하므로 질병청의 항소가 부당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입증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문제는 소송비 마련인데, 양 씨는 후원금을 모아서 소송에 임하겠다는 계획이다. 양 씨는 이미 1심 때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지인들로부터 빌려 변호사 선임비 등 소송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했다.
백신 피해자 단체는 오는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전문가 등과 여는 백신 피해 대책 토론회 자리에서 관련 문제를 공론화 하겠다는 계획이다. 김두경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체결한 계약 서류를 공개하지 않고,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면서 질병청이 얻으려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면서 “정부가 백신을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자체 개발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신경 쓰지 않고 불안정한 해외 수급에 기대려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백신 피해자들과 교수 등 전문가, 식품의약품안전처 심사위원 출신 전문가, 법조인 등이 모두 참석하는 자리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협치로 피해 구제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며 “이 자리에서 국익을 빌미로 국민의 알 권리를 막는 질병청은 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 부처인지 따져 묻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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