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선수들이 스스로 '경기 룰'을 바꿀 수 있을까?

전형우 기자 2023. 3. 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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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 개혁] ① 지역구 국회의원 전체에게 물어봤더니


정치인들은 왜 싸우기만 할까? - '승자독식' 제도의 폐해

지난 21대 총선에서 유권자 2870만 명 중 1256만 명의 표는 사표가 됐습니다. 1등이 모든 걸 가지는 선거제도 때문에 투표를 한 유권자 중 43.7%의 표는 버려진 겁니다. 국민의힘은 영남에서 56%의 득표율로 86%의 의석을 가져갔고,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65% 득표로 96%의 의석을 가져갔습니다. 실제 시민들 의사와 다르게 제도가 지역주의와 양당 구도를 더 강화시키고 있는 겁니다.

언젠가부터 한국 정치는 목숨을 걸고 상대 당과 전쟁을 벌이듯 이뤄져 왔습니다.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고 생산적인 논의를 하기보단 진영논리에 영합하는 극단적인 목소리들이 과대평가됐습니다. 정치가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선거제도에 있습니다. 승자독식 구조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게 만들었고, 지역주의는 본 선거보다 내부 경선과 공천이 중요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비례성이 낮고 지역구를 중심으로 한 국회의원 선출 구조로 정치인은 국가나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 지역의 개발 이슈와 예산 따기에 몰두하게 됐습니다. 합의가 아니라 투쟁으로, 합리적인 목소리보다 극단의 목소리가 크게 부각되는 것에는 인물의 문제도 있겠지만 제도의 문제가 분명 존재합니다.

국회의원의 제1 목표는 다음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결과가 앞서 언급했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으로 나오는 건데요. 정치인이 이런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선거제도입니다. 따라서 승자독식과 지역주의를 깨고, 시민들의 의사를 더 정확히 반영하고, 정치의 다양성을 높이려면 선거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왔습니다. 다만 '선거 룰'을 외부자나 심판이 아닌 선수가 바꿔야 하는 모양새라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특히 거대 양당의 지역구 다선 의원들이 기득권을 버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수십 년 동안 선거제도의 근본적 개혁이 실패한 이유입니다.

지역구 현역 의원 전원에게 물어봤다

최근 대통령과 국회의장, 야당에서 논의가 나오면서 다시 선거제 개혁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제도 개혁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가늠해 보기 위해, SBS는 '키 플레이어'인 지역구 현역 의원 전부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응답 국회의원 98% "선거제도 바꿔야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 총 252명(지역구 의석은 총 253석인데 현재 전북 전주을만 공석) 중 104명이 설문에 응답했습니다. 응답한 104명 국회의원 중 압도적인 숫자인 102명이 "선거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이 중 54명은 다음 총선부터 당장 선거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39명은 다음 총선부터는 불가능하겠지만 개편을 계속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또 8명은 시기는 밝히지 않았지만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선거제 개혁 관련 설문조사에 응답했다는 것 자체가 개혁에 대한 관심의 표시일 수 있습니다. 응답에 응하지 않은 지역구 의원 148명은 선거제 개혁에 큰 관심이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응답자의 절대 다수인 102명이 현행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졌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의원들은 어떤 제도를 가장 지지할까?

문제는 디테일에 있습니다. 큰 틀에서 선거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어떻게 바꾸냐에 대한 건 백가쟁명입니다. 국회에서 발의된 선거법 개혁안만 봐도 14개에 달합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전주혜, 장제원, 권성동, 곽상도, 김은혜)은 지난 총선 때 위성정당 논란을 낳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지하는 법안을 낸 바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크게 나눴을 때 세 가지 종류의 개편안을 냈는데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식(김영배), 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식(이탄희), 지역구 또한 정당 득표율에 따라 연동되는 '전면적 비례대표제'로 바꾸자는 방식(김상희, 박주민)이 있습니다.

정의당은 국회의원 수를 360명으로 늘리고 비례대표 의원을 120명으로 늘려,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2:1로 연동되는 안(이은주)을 발의했습니다. 같은 당 내에서도 생각하는 제도 개혁의 방향이 아직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개별 의원들의 솔직한 생각이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의원들에게 응답을 받을 때 이름은 밝히지 않고 소속 정당만 밝히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핵심쟁점은 이것 - 소선거구제냐 중대선거구제냐


가장 큰 쟁점은 한 선거구에서 몇 명의 국회의원을 뽑느냐입니다. 한국은 한 선거구에서 1등 한 명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51대 49로 이기더라도,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 패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영남에서는 국민의힘이, 호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가져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소선거구제는 필연적으로 양당체제를 가져온다는 '뒤베르제의 법칙'은 정치학에서 유명한 가설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이어져 온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로 인해 제3당, 소수정당의 시도들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거나 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의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양당 구도를 바꾸자는 개혁을 얘기할 때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중대선거구제입니다.

특히 한 선거구에서 4,5명 이상을 뽑는 대선거구제로 바꿀 경우 소수정당의 지역구 의원 배출 숫자는 크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또 영남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호남에서도 국민의힘 의원이 나올 가능성이 커집니다.


설문에 응답한 국회의원의 다수(48%)는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안을 지지했습니다. 중대선거구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은 19%, 도시냐 농촌이냐에 따라 선거구당 의원 숫자를 달리하는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는 17%가 지지했습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을 포함해 야당에서도 중대선거구제로의 변화 목소리가 많이 나왔지만, 실제 지역구 의원들의 상당수가 소선거구제 유지를 지지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중대선거구제로 바뀔 경우 지금의 지역구가 여러 곳과 함께 통합되고, 본인이 터를 닦아놓은 지역구가 변동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현역 국회의원에게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비례대표는 어떻게? - 급격한 변화와 정치 현실 사이

두 번째 쟁점은 '비례대표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입니다. 국회의원 300석 중 253석이 지역구, 47석이 비례대표입니다. 20대 총선까지 유지됐던 병립형 제도의 경우 지역구와 비례대표제가 연동되지 않고 별개로 뽑는 제도입니다. 비례대표 47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식이죠.

21대 총선을 앞두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47석 중 30석은 비례대표와 지역구가 연동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당시 자유한국당이 위성정당(미래한국당)을 만들고, 더불어민주당이 따라서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을 만들면서 '꼼수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사실상 준연동형의 취지가 사라져 버리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그 후 지금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거나 보완하자는 목소리는 계속 나왔습니다. 여기서도 문제는 어떻게 바꿀 것인가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준연동형을 폐지하고 21대 총선 이전처럼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는 법안을 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 중 일부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별로 지역구와 정당득표율이 연동되게 하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발의한 상태입니다. 또 다른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의원 의석수 전체를 정당득표율에 따라 나누는 걸 대원칙으로 하는 '전면적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안을 냈습니다.


제도에는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병립형으로 돌아갈 경우, 국민들이 익숙하기 때문에 직관적이고 단순한 제도적 장점이 있습니다. 기존의 양당 구도도 변화하지 않아 정치적 안정성도 유지됩니다.

반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의 방식과 유사한 전면적 비례대표제로 바꿀 경우, 정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제3당, 소수정당도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로 의석을 확보할 수 있고,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왜곡 없이 그대로 국회의원 구성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느끼기에 크게 생소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비례성을 높여 사표를 줄일 수 있는 제도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꼽힙니다. 전국을 5~6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 안에서는 정당득표율에 따른 의석 배분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방식인데, 이를 통해 지역주의를 완화시키고 소수정당도 제대로 대변되는 효과를 일부 가져올 수 있습니다.

현역 의원들은 어떤 제도를 지지했을까요.

우선 현행 준연동형을 폐지하거나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공감대가 모아졌습니다. 42명이 다음 총선 때부터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봤고, 45명은 다음 총선부터 즉시 폐지는 어렵지만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시기는 밝히지 않았지만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2명 있었습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설문에는 응답자의 77%가 찬성했습니다.

다음 총선에 도입할지, 장기적인 과제로 추진할지 등 시기에 따른 이견은 있었지만 응답한 의원 상당수가 권역별 비례제 도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역구에도 다수대표제를 운영하지 않고 모든 국회의원을 사실상 정당득표율을 통해 뽑는 전면적 비례대표제는 많은 공감을 얻진 못했습니다. 56%의 의원이 도입 반대 의견을 냈고 장기과제로 도입하자는 의견은 24%, 다음 총선에 바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3%에 그쳤습니다.
 

전체 의석을 늘리거나, 지역구를 줄이거나


지역구 현역 국회의원에게 가장 민감한 이슈는 지역구 의원 숫자를 줄이는 겁니다.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기 위해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방안에 동의하는지 물었습니다. 의원들 중 12명은 다음 총선 때부터 지역구 의석을 줄여야 한다고 답했고, 33명은 장기 과제로 축소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다른 33명의 의원들은 줄여서는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정치권에서 이야기하는 선거제도 개혁의 큰 방향은 비례성을 높이자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제도로 바꾸든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지 않고는 의미 있는 변화가 불가능합니다.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법은 지역구를 줄이거나, 국회의원 전체 숫자를 늘리거나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번엔 지역구는 그대로 둔 채 비례대표를 늘리기 위해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방안에 대해 의원들한테 물었습니다. 모두 64명의 의원이 국회의원 총의석수를 늘려야 한다고 봤고, 29명은 늘려서는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이를 통해 볼 때 지역구 현역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를 줄이는 방안보다는 국회의원 총의석을 늘리는 방안을 좀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실에서는 두 가지 모두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역구를 줄인다는 건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빼앗는 것이어서 정치인이 스스로 내려놓기가 어렵습니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에서 세금을 더 들여가며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자는 방안도 국민을 설득시키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하지 않은 채 지금의 '국회의원 300석, 비례대표 47석'을 유지하는 이상 근본적인 선거제도 개혁은 어불성설에 가깝습니다.
 

국민의힘-민주당 "비슷한 응답률, 다른 개혁 방향"


설문조사 답변을 정당 별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응답률에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의원 92명 중 35명(응답률 38%),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의원 155명 중 67명(응답률 42%)이 설문에 답했습니다. 두 당을 제외한 지역구 의원 중에서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설문에 답변했고, 무소속 의원 4명 중 1명이 답변을 했습니다.

응답률은 비슷하지만 두 당 의원들의 답변 내용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관련된 문항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가장 많은 의원들(15명)이 찬성 의사를 표했습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7명, 소선거구제 유지는 6명으로 가장 적었습니다. 반면 민주당 의원 중 다수인 40명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한 채 비례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9명, 도농복합형 도입 의견은 3명에 그쳤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언급한 만큼,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국민의힘, 민주당 의원들의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주당 내에서 개혁을 이끄는 의원 중 상당수가 중대선거구제 도입 법안을 냈는데, 실제 설문조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소선거구제 유지를 지지한 점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입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설문에서도 대체로 도입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정당별로 온도차가 있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 중 다수(17명)가 장기과제로 추진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민주당 의원 중 다수(36명)는 다음 총선부터 당장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즉, 민주당 의원들이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관련해 국민의힘 의원들보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이번 정개특위를 통해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의견 갈리지만…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관련해 수도권 지역과 나머지 지역 의원들의 의견 차이도 두드러졌습니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 의원의 경우 소선거구제 유지 의견이 67%로 가장 많았고, 도농복합 선거구제 도입 지지는 10%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영남과 호남, 강원과 제주 등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의 경우 소선거구제 유지 의견은 48%였는데 도농복합형 선거구제 도입 의견이 34%로 수도권 의원보다 눈에 띄게 높았습니다. 수도권 의원들의 경우 소선거구제 유지 의견이 많은 건 민주당 의원들이 수도권에서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전형우 기자dennoc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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