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자 연구팀, 우수한 IT 파워와 접목땐 선진국 충분히 추월 가능”[현안 인터뷰]
잠재력 무궁무진한 양자컴퓨터
전 세계 모두 초기 단계일뿐
‘100만 큐비트’ 이상 만들려면
최소 10년, 그 이상 걸릴 수도
한국 여전히 양자기술 불모지
장기적 전략·실행 필요한 이유
스타트업 ‘사이퀀텀’ 설립 일조
지금은 4조원 가치 유니콘으로
2년반 현장 경험 소중한 양분

양자(量子·quantum) 컴퓨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개발과 상용화 초기에 있는 미래의 과학기술이다. 미국 구글이 2019년 현재의 컴퓨터(고전 컴퓨터)를 능가하는 초월적 성능, 즉 양자 우월성(quantum supremacy)을 처음 증명한 후 비슷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나 보편적인 상업제품으로 생산하기에는 여전히 기술 수준이 낮다. 이론적 논문이나 잠깐 시연에 성공한 정도이다.
한국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 △우주항공·해양 △인공지능(AI)과 함께 맨 마지막에 양자가 12대 국가전략기술로 포함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24일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소개로 젊은 과학자들과 용산 대통령실에서 만나 국제협력과 인재양성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 양자 과학자 대표로 참석한 이가 바로 손영익(39) 카이스트 교수다.
손 교수는 전기·전자 공학을 전공하다가 박사 때 응용 물리학으로 기초 학문을 다진 후, 다시 미국 양자 컴퓨터 신생벤처기업(스타트업)에서 2년 반가량 창업 과정까지 경험한 드문 인재다. 서울에 잠시 볼일을 보러온 그를 문화일보 인터뷰실에서 만나 천재들만 이해한다는 양자 컴퓨터에 관해 긴 대화를 나누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젊은 과학자 초청 행사에 다녀온 소감은.
“얼굴이 잘 알려진 분들을 직접 보니 신기했다. 마치 TV에서 보던 스타나 연예인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이 장관님은 저희(과학) 분야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계시니까 당연히 잘 알고 먼저 봤다. 대통령 오실 때도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래도 과학 예산과 정책을 결정하는 ‘권력자’들인데 일선 과학자로서 벽이 느껴지진 않았나.
“커뮤니케이션은 다 어렵다. 연구실에서도 비싼 장비를 사서 실험할 때 연구원 사이에 제한된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연구원마다 관심 분야가 조금씩 다르니까 이를 조정해야 할 책임이 내게 있다. 그분들 역시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 과기정통부도 청와대도 자기 프레임이 있을 것이다. 반면 과학자들의 연구는 날 것에 가깝다 할 수 있다. 프레임과 날 것은 서로 잘 들어맞지 않을 때가 많다. 억지로 프레임에 맞추다가 본질이 왜곡되는 일도 있다. 참 힘들다. 하지만 그 자리에 계시는 분들의 권력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 아닌가. 세상은 모든 레벨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설득이란 걸 점점 깨닫는다.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어 진실하면서도 잘 전달되는 내용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연습한다. 그래야 지원이 되고 내가 원하는 연구도 할 수 있고. 이런 걸 계속 느끼고 있다.”
―어쩌다 양자 컴퓨터를 연구하게 됐나.
“학부와 석사 때 전기 공학을 전공했는데 특히 나노(nano) 광학에 집중해 배웠다. 구체적으로 나노 기계소자(素子), 영어로 멤스(MEMS, Micro―Electric Mechanical System)라는 분야다. 반도체 공정에 적용 가능한 기술이다. 박사 과정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응용 물리학으로 바꾸었다. 예전부터 물리학을 좋아했었다. 그때 양자 통신을 연구했다. 전기 공학에서 배운 소자 제작 기술을 양자 통신에 융합해 양자통신용 소자를 만들었다. 이게 많은 연구자에게 인용되면서 꽤 유명해졌다. 후배가 이걸로 미국 아마존의 양자 통신팀에 취직하기도 했다.
양자 통신을 공부하다 보니 인접 분야인 양자 컴퓨터에도 큰 흥미를 갖게 됐다. 또 대학의 기초연구와 달리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계 응용 기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박사를 마칠 때쯤 양자 컴퓨터 회사 몇 군데에 지원했고 광(光)기반 양자 컴퓨팅 하드웨어를 만드는 ‘사이퀀텀(PsiQuantum)’에 붙었다. 영국 브리스틀 대학의 유명 연구자들이 2016년 미국에 설립한 스타트업인데 지금 31억5000만 달러(약 4조1500억 원)짜리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그 회사의 초창기 핵심 연구인력으로 2년 반 일하면서 많이 배웠다. 연구실에서 스타트업을 만들고 키워나가는 걸 내부에서 봤으니까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카이스트에서 광기반 양자 컴퓨팅 산업계 기술의 대학 연구실 버전에 해당하는 기초 연구를 다시 하고 있다.”
―왜 한국이 해야 하는가.
“시장 가치로만 따질 수 없는 패러다임 시프트(국면 전환·paradigm shift) 기술은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영영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양자 물리학 탄생 후 기초과학에 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다가 21세기 들어 양자 통신·양자 컴퓨터·양자 센서 등 산업계로 응용이 가능한 분야가 출현하고 있다. 여전히 불확실하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란 위험은 있다. 심지어 양자 컴퓨터를 아예 못 만들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만든다 해도 이게 과연 큰 시장을 열 수 있을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하지만 무서운 잠재력이 있다.
기존 컴퓨터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뭔가를 할 수 있다. 얼마나 폭발력이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불확실성을 안고 투자하는데, 우리는 ‘저러다가 돈도 못 벌고 낭비만 할 것’이라면서 전략적으로 적게 투자하고 대신 연구비를 좀 더 실용적인 데 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했을 때 이게 점점 발달해서 할 수 있는 기능이 차례로 발견되고 강력한 것이 돼갈 때 한국이 양자 기술 불모지면 격차를 줄일 수가 없게 된다. 항공 기술이 처음 나왔을 때 민간 우주여행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우리가 누리호를 발사하면서 선진국을 쫓아가려 애쓰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한국이 할 수 있을까.
“양자 분야는 늘 ‘한국이 후발 주자다. 너무 늦게 시작했다. 뒤처져 있다’라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우리가 추격자고 남이 하던 걸 따라 해야 하며 자원을 더 투입하지 않으면 추월하기 힘들다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양자 컴퓨터는 전 세계 영역에서 막 시작이다. 1큐비트(qubit)에서 시작해 이제 겨우 몇백 큐비트 선점을 갖고 다투고 있다. 당장 몇 년 안에 양자 컴퓨터가 나와 많은 일을 한다는 생각은 오해다. 실용적으로 쓸만한 100만 큐비트급까지 만들려면 적어도 10~15년 이상 더 걸린다. 마라톤으로 치면 아직 10㎞도 안 뛴 셈이다. 전략을 잘 세우고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역전할 수 있다.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이다. 기존 기술을 양자 분야에 잘 적용해 해외 선진국도 안 해봤던 뭔가를 해보면서 선도적으로 치고 나갈 빈틈이 아주 많다. ‘한국의 IT 인력이 양자 연구자들과 원팀이 돼 시너지를 살린다면 긴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 이런 자신감을 갖고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기업 모두 양자 연구를 해본 경험에서 말씀드리면 대학은 대부분 물리학 위주의 기초과학에 치중해 있다. 그런데 기업에서 이걸로 실제 장치를 만드는 과정에 소·부·장 기술이나 전자회로, 반도체 기술의 비중이 늘고 있다. 공학 엔지니어들의 지식을 양자 컴퓨터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막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물리학자 말고는 아예 양자를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학에 강한 우리가 강점이 있다.”
‘50큐비트’ 정보처리속도 ‘50비트’의 1125조배… 보안체계 무력화 열쇠로 주목
■ 양자 컴퓨터는…
데이터 동시 병렬처리 가능해져
기존 컴퓨터보다 압도적 계산력
양자 컴퓨터는 지금 컴퓨터의 비트(bit) 대신 큐비트(qubit)를 정보 처리의 단위로 쓰는 미래 컴퓨터를 말한다. 비트는 0과 1의 2진법을 한 단위로 한다. 진공관의 불이 꺼진 경우를 0, 켜진 경우를 1이라고 하면 진공관 2개로 00·01·10·11의 4가지 경우를 표시할 수 있다. 이를 2비트라고 한다. 2의 2제곱(22), 즉 4가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소형 진공관인 트랜지스터를 16개 붙인 16비트의 경우 2의 16제곱(216), 즉 6만5536가지 정보를 처리한다. 현대 컴퓨터는 64비트 중앙정보처리장치(CPU)를 내장한 제품이 보통이다.
이에 비해 양자 컴퓨터의 큐비트는 0과 1 상태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 양자의 중첩(重疊, 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 현상 때문이다. 큐비트는 양자 비트(quantum bit)의 준말이다. 2큐비트는 2비트의 4가지 정보를 동시에 표시할 수 있어 이론적으로 4배 빠르다. 2비트 컴퓨터에서 제일 오른쪽 자릿수를 0에서 1, 또는 1에서 0으로 뒤집는다고 생각해보자. 00·01·10·11의 4가지 조합에서 고전 컴퓨터는 4번의 동작이 필요하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는 1번의 동작으로 가능하다. 오른쪽 자릿수를 뒤집는 동작을 딱 1번만 해도 4가지 조합의 상태가 동시에 바뀐다. 이를 양자 병렬성(quantum parallelism)이라고 한다. 양자 컴퓨팅이 현재 컴퓨터보다 빠른 이유다. 2큐비트는 2비트보다 2의 2제곱(4배) 빠르지만 10큐비트는 10비트보다 2의 10제곱(1024배) 빠르다. 50큐비트가 되면 50비트보다 2의 50제곱(1125조8999억684만2624배) 빠르게 동작하는 셈이다. 큐비트 수를 늘리면 늘리는 만큼 지금 컴퓨터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계산력, 즉 양자 우월성을 갖게 된다.
양자 우월성(quantum supremacy)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은 소인수분해 암호를 깰 수 있기 때문이다. 소인수분해는 어떤 수를 소수(素數)만의 곱으로 표시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12를 2×2×3으로 분해하는 식이다. 매우 큰 수의 소인수분해는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몇 달, 몇 년이 걸릴 만큼 어렵다.
금융·국방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현대 RSA(Rivest Shamir Adleman) 암호는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RSA 암호는 론 리베스트(Ron Rivest)·아디 샤미르(Adi Shamir)·레너드 애들먼(Leonard Adleman)이라는 3명의 수학자에 의해 개발된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인터넷 암호화·인증시스템을 말한다. 그런데 1993년 어떤 학자가 효과적인 양자 알고리즘을 짜면 이 암호가 깨질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양자 컴퓨터가 전 세계의 보안 체계를 무력화시킬 마법의 열쇠란 인식이 퍼졌고 선진국들은 앞다퉈 투자를 늘리며 선점 경쟁에 들어갔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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