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 앞에서 할 소리냐”…윤 대통령 지지층도 화났다[3·1절 기념사 파문]
“할 수 있는 말이라 쳐도
시점 부적절…부끄럽다
안보 믿음 있어 뽑았는데
국가관 이러면 어찌 믿나
“가족을 살해한 전과자가 출소 후 새사람이 되었다고 쳐요. 그렇다고 한들 피해자 기일에 그 사람과 잘 지내보자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지난해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찍었다는 자영업자 안모씨(30)는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 2일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대해 윤 대통령을 뽑았다는 안씨에게도 일본이 ‘침략자’에서 ‘파트너’가 됐다는 대통령 기념사는 ‘못할 말’로 들렸다. 안씨는 “할 수 있는 말이라 해도 매우 적절치 못한 시기에 한 것”이라며 “부끄럽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놓고 여권 지지층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반공 정서만큼 반일 감정이 큰 노인 세대에서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일본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분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신보수’로 불리는 2030 남성 지지층에서도 일본과 화합해야 한다는 전체적인 메시지를 내놓은 시기나 방법이 모두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평생을 보수 정당 후보에게 투표해왔다는 남모씨(68)는 윤 대통령의 기념사가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남씨는 “보수를 뽑아온 이유는 진보 후보보다 나라를 더 잘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는데 (윤 대통령이) 이리 굴종적인 기념사를 할지 몰랐다”면서 “이런 국가관을 가진 대통령이 어떻게 안보를 잘 신경 쓸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유관순 열사 앞에서 할 얘기는 더더욱 아니었다”고 했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찍었다는 ‘이대남’들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큰 틀에서 취지에 공감해도 3·1절 기념사로는 매우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직장인 곽모씨(29)는 “대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생각에는 공감하지만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가는 것을 보고 너무 실망했다”며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리고 감사한다는 표현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선 당시) 대장동 논란을 보고 도저히 이재명을 뽑을 수가 없어서 윤 대통령을 뽑은 건데 이번 기념사는 정말 경악스럽다”고 지적했다.
SNS도 탄식·분노 쏟아져
안씨도 “일본이 협력 파트너라는 사실 자체는 맞더라도 3·1절에 할 얘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안씨는 “3·1 운동을 기념하고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리는 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념사는 과거와 관련한 내용이 주가 되었어야 한다”며 기념사에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내용이 일절 담기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이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나 2번(윤 대통령) 찍었는데 후회된다” “무엇을 위해 독립투사들이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느냐”는 내용의 게시물 등이 줄줄이 올라왔다.
윤 대통령은 전날 서울 중구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기념사에서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과거사 문제가 완결된 것처럼 묘사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점, 침략 피해의 원인을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라고 말한 점도 입길에 올랐다.
이홍근·강은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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