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1위 스위스]④ 밀크 초콜릿에 녹아든 ‘혁신 DNA’
1875년 세계 최초로 밀크 초콜릿 개발
대공황·세계대전 위기 자동화로 극복
내륙국인 스위스에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를 대량으로 수입해 들여올 수 있는 항구가 없다. 전 세계 카카오 생산의 약 70%는 코트디부아르와 가나 등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담당한다. 그렇다고 영국과 프랑스처럼 과거 이 지역을 지배했던 것도 아니다. 가나는 영국,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 식민지였다.

그런데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스위스의 1인당 연간 초콜릿 소비량(2021년 기준)은 11.6kg으로 세계 1위다. 2위 미국(9kg)과 격차가 꽤 크다. 독일이 5.7kg으로 3위였고, 프랑스와 영국이 각각 3.6kg, 3kg으로 뒤를 이었다.
스위스 사람들의 각별한 초콜릿 사랑은 한국과 스위스 수교 60주년을 맞아 지난달 12∼18일 취리히와 바젤, 베른, 로잔 등 스위스 여러 도시를 다니는 일정 내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투숙하는 호텔방 테이블 위엔 앙증맞은 미니 초콜릿이 놓여있었고, 취재를 위해 방문한 대학과 공공기관의 소개자료엔 ‘초코바’가 따라왔다. 슈퍼마켓에도, 백화점과 면세점에도 출입문 근처 목좋은 자리에는 어김없이 초콜릿 코너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스위스 사람들은 언제부터 초콜릿을 좋아하게 된 걸까?
유럽에 코코아를 처음 들여온 건 스페인의 정복자들이었다. 16세기 초 멕시코에서 스페인으로 가져온 코코아 열매는 이후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스위스에는 1679년 취리히 시장 헨리 에셔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맛본 초콜릿 음료(당시 유럽의 왕족과 학자들은 꿀과 향신료를 첨가한 코코아를 즐겨 마셨다)를 스위스에 소개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스위스에서 초콜릿이 처음 생산된 건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1819년 프랑수와 루이 까이에가 레만 호수 북동쪽에 있는 브베 지역에 초콜릿 공장을 세운 것. 지금은 네슬레의 일원이 된 스위스 까이에 초콜릿의 시작이다.
오늘날 전 세계 초콜릿 시장의 양대 강국으로 꼽히는 스위스와 벨기에 중 출발은 벨기에가 앞섰던 셈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스위스는 이후 혁신적인 발명을 통해 독특한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1875년 다니엘 피터와 헨리 네슬레(세계 1위의 식품회사인 네슬레의 창업자)는 세계 최초로 우유와 초콜릿을 결합시켜 밀크 초콜릿을 개발했다. 쌉싸름한 초콜릿에 우유와 섞어 부드러운 맛을 내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우유의 수분 때문에 발생하는 곰팡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시 기술로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초콜릿 장인 피터의 집념에 세계 최초로 가루형 분유를 개발하여 수많은 신생아의 생명을 구한 네슬레의 기술이 합쳐지면서 마침내 밀크초콜릿의 시대를 활짝 열어제칠 수 있었고, 스위스는 세계 초콜릿 산업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초콜릿 브랜드 ‘린트’의 창업자 로돌프 린트는 1879년에 세계 최초로 콘칭(Conching) 기법을 개발했다. 초콜릿 멜팅 기법의 하나인 콘칭은 섭씨 50~90도의 온도로 카카오 매스를 휘저어 녹이는 작업이다. 콘칭 과정을 거치면 초콜릿 입자가 작어져 부드러워지며, 입자가 서로 섞이고 마찰되는 과정에서 산화가 일어나 신맛과 씁쓸한 뒷맛도 누그러든다.
스위스의 초콜릿 산업이 발전하면서 각지에 초콜릿 장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1890년부터 1920년까지 스위스 초콜릿 산업은 전성기를 맞았다. 잘나가던 스위스 초콜릿 산업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1930년대 대공황과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설탕과 코코아의 수입이 제한되면서 침체기를 맞은 것. 하지만 종전 이후 적극적인 생산 자동화를 통해 스위스의 초콜릿 산업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스위스에서 소비되는 초콜릿의 80%는 밀크 초콜릿이다. 알프스의 넓은 초원에서 신선하게 짜낸 우유가 스위스 초콜릿을 부드럽고도 크리미하게 만든다. 전체의 10~12%는 다크 초콜릿, 3~4%가 화이트 초콜릿이다.
발효시켜 말린 코코아 열매를 볶아서 갈은 코코아 페이스트에 코코아 버터와 설탕을 섞은 것이 다크 초콜릿이고, 다크 초콜릿에 우유 가루나 연유를 섞으면 밀크 초콜릿이 된다. 밀크 초콜릿에서 코코아 페이스트를 뺀 것이 화이트 초콜릿이다.
스위스의 최대 ‘초코 라이벌’ 벨기에는 코코아 함량이 높은 다크 초콜릿 중심이다.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초콜릿 본연의 맛에 좀 더 가깝다. 벨기에는 프랄린(다양한 속을 넣은 초콜릿)의 원조이기도 하다. 프랄린안엔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필링을 채워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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