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물’ 클린스만 선임, 축구협회 어이없는 후진적 행태[김세훈의 스포츠IN]
유럽파들은 대통령 앞에서 외국인 감독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스타 출신 지도자를 좋아한다. 천안축구센터 건립 자금을 마련하려면 마케팅 효과가 큰 ‘빅 네임’ 감독이 필요했다.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은 자격 미달, 수준 미달이었다. 강화위원회도 유명무실했다. ‘퇴물’ 위르겐 클린스만이 한국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에, 그것도 일사천리로 선임된 배경이다.
2022카타르월드컵 직후 대통령실 초청 만찬에서 선수들은 차기 감독으로 외국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외국인 감독을 뽑으라고 직접 지시를 내렸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해외파 영향력, 막강한 대통령 권력 등을 고려하면, 감독 선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몽규 회장은 스타들을 좋아한다. 다수 연령대별 대표팀 감독뿐만 아니라 협회 부회장단도 축구 스타와 방송계 유명인으로 채워왔다. 스타, 유명인은 대중적인 관심을 끌 수 있다. 인사에서 실패해도 인사권자는 스타들 이름값 뒤에서 면피할 수도 있다.
뮐러는 이영표 등 국내 후보들이 위원장직을 거부한 뒤 선임됐다. 한국 인사들이 왜 위원장직을 거부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부담스러운 자리였을 수도 있다. 개인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무조건 외국인을 선임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거부했을 수도 있다. 예상 밖으로 중책을 맡은 뮐러 위원장은 강화위원들과 온라인 상견례 정도만 한 뒤 감독 선임 5대 조건을 언론에 밝혔다. 그게 지금도 감독 선임 조건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그건 강화위원회 숙의를 거치지 않은 자의적 생각이었다. 감독 선임 기자회견에서 동문서답하는 뮐러가 온라인 회의에서 얼마나 원활하게 한국인 위원들과 소통했을까. 한 강화위원은 “처음부터 들러리를 선다는 느낌을 받아 그만둘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클린스만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공격 일변도 자기 스타일로 팀을 운영했다. 그게 먹히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언론, 축구계로부터 비판도 자주 받았다.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5년 4개월 일했을 뿐, 장기적으로 대표팀을 운영하는 독일대표팀에서는 겨우 2년,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겨우 9개월, 헤르타 베를린에서는 겨우 10주 동안 감독 노릇을 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감독을 하지 않았다. 이건 그가 지도자로서 감각을 유지했느냐, 하지 못했느냐 문제가 아니다. 엄청난 팀을 지도한 프로필에도 불구하고 갈 곳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 클린스만을 영입하면서도 뮐러는 강한 성격과 클린스만 의지만 강조했다.
클린스만은 모델 출신 미국인 아내와 결혼해 오래전부터 미국에 살고 있다. 심지어 독일대표팀 감독 시절에도 미국에서 독일로 출퇴근했다. 클린스만이 한국에 상주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무조건 외국인이면 되나. 스타면 모든 게 해결되나. 이름값만 있으면 과거사는 무시해도 되나. 그렇다면 수많은 외국인 감독과 스타 출신 지도자들이 왜 실패했나. 철저한 자성과 냉정한 현실 직시, 객관적으로 실현 가능한 비전 제시 없는 감독 선임은 한국 축구행정이 후진적이며 줏대 없음을 자인한 처사다. 협회는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마저 스스로 버렸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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