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친미파 지도부 숙청 바람… 親중국 되나

조성호 기자 2023. 3. 1.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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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사이서 개혁·개방 추진하다가… 변화 기로에

지난 1980년대부터 개혁 개방을 추진해 온 베트남이 변화의 기로에 섰다. 지난 1월 친미 성향의 응우옌쑤언푹(69) 주석이 뇌물 스캔들로 사임 후, 후임에 친중파인 보반트엉(53) 공산당 상임서기가 금주 중에 선출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될 경우, 이른바 ‘빅 4′로 불리는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서열 1위)과 국가주석(2위), 총리(3위), 국회의장(4위)이 모두 친중파로 채워지게 돼 베트남이 급격히 친중국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푹 주석 등 최근 실각한 고위급 관료 3명 모두 친미로 분류되는 인사라며 베트남 외교의 무게중심이 중국으로 쏠리게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는 “실각한 푹 주석은 그동안 서방 자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며 “그가 물러나며 베트남 내에서 친중 엘리트의 권력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친미파와 친중파가 권력 다툼을 해왔다.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정치 세력은 체제적 유사성을 가진 중국과 가깝고, 남중국해 분쟁에서 중국으로부터 영토를 수호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두는 세력은 서방주의를 표방하며 친미 행보를 보여왔다. 친중파는 대부분 베트남 북부 출신이며, 공산당에서 정치 이력을 쌓았다. 반면 친미파는 중·남부 태생이 많고, 주로 정부 고위 관료 출신이다.

베트남은 1986년 경제 불황 타개를 위해 ‘도이머이(Doi Moi·새로운 변화라는 뜻)’ 정책을 도입했다. 공산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대내 개혁과 대외 개방을 통해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 주로 친중파가 서기장을, 친미파가 총리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베트남은 공산당 서기장이 국정 전반을 관장하며, 국가주석이 외교와 국방, 총리가 행정, 국회의장이 입법을 관할한다. 구소련 유학파인 응우옌푸쫑(79)이 2011년 당 서기장에 오를 때만 해도 서열 2~4위인 주석과 총리, 국회의장은 모두 친미 인사였다.

하지만 쫑 서기장이 3연임에 성공한 2021년엔 팜민찐 당 조직위원장이 총리, 브엉딘후에 하노이 당서기가 국회의장에 올랐다. 두 사람 모두 당에서 정치 이력을 쌓은 친중파 인사다. 그런 상황에서 ‘빅 4′중 유일하게 남아있던 친미 인사인 푹 주석이 지난 1월 돌연 사임한 것이다. 주석이 5년 임기 중에 사임한 것은 1976년 베트남 통일 이후 처음이었다. 그는 일신상의 이유로 물러난다고 밝혔지만 실질적으로는 총리 재임 시절 발생한 뇌물 스캔들로 사임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베트남에선 해외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특별 귀국시키는 과정에서 여행 업체가 폭리를 취하게 도왔다는 뇌물 스캔들이 터졌다. 이로 인해 푹 주석의 사임 이전에 이미 부총리 2명이 부패 의혹으로 낙마했고, 장관급 인사 3명이 구속됐다.

이들의 실각이 단순히 부패 의혹 탓이 아니라 파벌 싸움에서 밀린 ‘숙청’이라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번에 물러난 이들은 친미 세력에 속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홍콩의 아시아타임스는 “축출된 이들이 모두 서방주의 세력이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이처럼 부패 척결을 무기로 권력 다지기에 나선다는 점에서 쫑 서기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닮았다. 베트남에서도 민간 부문의 영향력 축소와 인터넷 통제 등 중국식 지배 관행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쫑 서기장의 강력한 반부패 노선이 경제를 더욱 경색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호주의 로위연구소는 “베트남의 반부패 캠페인은 당 지도부에 직업적 성과보다 개인의 청렴성과 정치적 충성도를 우선시하게 할 수 있다”며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베트남의 장기 경제 전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베트남은 지난해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다. 한국은 342억5000만달러(45조원)의 흑자를 베트남에서 올렸다. 한국이 베트남에 직접 투자하는 금액만 48억8000만달러(약 6조500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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