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비난받지 않는 자들

기자 2023. 3.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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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저지른 잘못에 비하여 지나치게 너그러운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가혹하게 탈탈 털리고 항변마저 외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계층들은 뻔뻔하게 굴어도 당연하게 여겨지고, 어떤 집단들은 순백의 눈처럼 깨끗해야만 한다. 지적의 운동장이 평평하지 않다는 사실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는다. 나는 이중 기준의 카르텔이 식민주의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송기호 변호사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가 취소된 정순신 전 검사를 보자. 그의 아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들의 학교폭력 당시 정순신은 검사였다. 학폭 피해자 학생의 아버지가 제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빨갱이”라 불렀다고 조사된 아들에 대한 처분을 막기 위해, 정순신 검사는 당시 직접 학교폭력위원회에 참석했다. 보도에 의하면 학교폭력위원회가 조사한 사실에 대해 반성보다는 변호하였다고 한다. 변호사를 선임하여 대법원까지 소송을 하였다. 이렇게 시간을 끄는 과정에서 학폭 피해자 학생은 고통 속에 병원을 다녀야 했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였고 극단적인 시도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순신을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한 대통령은 대통령실을 통해 인사 검증에 아쉬운 점이 있다고만 했다. 정순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몰랐다고 했다. 경찰청장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공적 책임자 그 누구도 정순신의 행위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정순신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인권감독관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청소년기에 학교 폭력을 당하여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 학생을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았다. 그는 인권의 수호자인 공직자로서 행동하지 않았다. 법 기술자로, 소송으로 시간을 끄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이는 피해자를 더 고통스럽게 하였다.

전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곽상도는 어떠한가? 그는 아들이 받은 퇴직성과급 50억원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50억원의 성과급을 정당화할 만한 중대한 질병이 발병되지도 않았고 지나치게 과다하다고 판단했다. 곽상도의 알선의 대가로 아들에게 50억원을 지급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판결문에 썼다. 그러나 무죄 판결했다. 그 이유는 하나이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아들이 받은 것을 곽상도가 직접 받은 것이라고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이 무죄가 나올 정도로 허술한 증거를 제출했다는 의미이다. 이제 무죄가 선고된 곽상도는 더 이상 비난해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대우받고 있다.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으로 검찰로부터 조사 소환을 받았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있는 김건희 여사도 비난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대우받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서는 도망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음에도 한사코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고 구금하려고 시도하면서도 50억 클럽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죽을 때까지 가혹하게 화살을 쏘면서도, 어떤 이들에게는 무딘 화살조차 겨누지 않는다.

국민을 나누고, 이중 기준을 들이대는 뿌리는 일제 식민주의이다. 일제는 조선 사람을 둘로 나누었다. 그들에게 복종하는 자들과 저항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후자를 ‘불령선인’으로 부르고, 낙인찍었다. 같은 조선 사람이라도 후자에 대해서는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 심지어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에서도 조선 사람을 죽일 때에 ‘불령선인’이라 부르며 정당화했다. 이 사람들은 일본국 국민이 아니므로 이들에게는 어떠한 비난과 처분을 해도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친일파들에게는 많은 특혜를 주어 포섭했다. 식민지는 이중 기준의 카르텔이었다.

내가 정순신 사건에서 가장 섬뜩했던 것이 ‘빨갱이’라고 학교 친구를 불렀다고 조사된 사실이다. 이 말에는 피가 흐른다. ‘빨갱이’라는 낙인으로 국민을 나누고 또 나눈 시대가 있었다. 그렇게 몰려 수많은 국민들이 죽임을 당했다. 민족상잔과 냉전은 피로 쓴 이중 기준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 카르텔이 아직 해체되지 않았음을 정순신의 아들인 고등학생의 입에서 나온 빨갱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다.

이제 드러내고 인정하자. 비난의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고 소리 내어 외치자. 어떤 계층에 대해서는 그들의 잘못을 당연하게 여기고 심지어 그들과 심리적으로 동조화하려고 하면서도 어떤 계층에 대해서는 가혹한 비난을 퍼붓는 우리 안의 식민주의를 마주 보자. 우리도 모르게 중독된 집단적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잘못을 해도 관대하게 대우받아도 되는 특권이란 없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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