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활기 속 고개 드는 ‘재건축’…분당의 종착지는?

심윤지 기자 2023. 2. 2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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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중심지 분당, ‘1기 신도시 특별법’ 발표 후 분위기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무지개마을4단지의 리모델링 후 조감도. 무지개마을4단지 조합 제공
무지개마을 4단지, 이주 절차 한창
인근엔 ‘재건축 준비위’ 플래카드
4~5개 단지 ‘통합 재건축’ 나서기도
평수·인프라 투자비 등 갈등 불씨
조합 설립~사업 승인 ‘기본 10년’
“변수 많아 현실성 따져야” 조언도

“오랜 기간 사업이 진행돼 온 만큼 한 세대도 빠짐없이 반드시 이주를 완료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 2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무지개마을 4단지 곳곳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12월 리모델링을 위한 분담금 확정 총회를 마친 뒤 오는 4월30일까지 이주 절차를 마무리하고, 내년 하반기 착공에 들어간다. 1기 신도시 리모델링 추진 단지 중 가장 빠른 속도다.

하지만 인근 단지에는 하나같이 ‘재건축준비위원회’ 출범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오는 5월 이주 예정인 느티3·4단지 조합 사무실에는 “재건축을 하면 돈을 덜 내고 할 수 있지 않았냐”는 일부 조합원들의 문의전화가 걸려왔다.

리모델링 정비사업이 가장 활발했던 분당에서 재건축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일 ‘용적률 500% 상향’을 골자로 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노후계획도시특별법)을 발표한 것이 발단이다. 하지만 실제 재건축이 이뤄지기까지는 여러 변수를 거쳐야 하는 만큼, 성급한 재건축 기대감을 품는 것보다 현실화가 빠른 대안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급한 것은 ‘이주 대책’이다. 중·노년층이나 아이가 없는 부부들은 성남 수정·중원, 용인 수지 등 보다 집값이 저렴한 인근 도시로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하지만 분당 자체가 학군지여서 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원거리 이주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박기석 무지개마을 4단지 조합장은 “500가구밖에 안 되는 우리 단지가 이주하는데도 인근 지역 빌라와 아파트 전·월세 가격이 소폭 올랐다”며 “2개 단지(1000가구)만 움직여도 이주 대책 수립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재건축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블록 단위’의 통합 정비를 추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시행사업자(조합 등)를 1곳만 둘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내놨다. 이에 분당 서현 시범단지와 수내 양지마을은 인접한 4~5개 단지끼리 모여 통합 재건축을 선언했다. 몸집을 불려야 사업성도 커지고, 시공사와의 협상력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이 진행되면 될수록 단지 간 이해관계 충돌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김명수 느티3단지 조합장은 “단지별로 소형 평수와 대형 평수 비율이 다른 경우, 어느 단지에서 조합장을 선정할지부터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기부채납·공공기여도 고려해야 한다. 재건축 사업성이 높다는 것은 정부가 같은 땅에 들어오는 가구 수를 늘려 조합원 분담금을 줄여주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가구 수가 늘어나는 만큼 도로·상하수도·학교 확충 등 기반시설 재투자에 드는 비용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리모델링 조합장들은 모든 정비사업 자체가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성남시에 따르면 분당에서 리모델링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5개 단지는 조합 설립에서 사업계획 승인까지 최소 6년, 최대 11년이 걸렸다. 정부가 규제완화를 선언하더라도 실무 단계에서는 안전진단 등을 소홀히 하기 어려워 각종 허가가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원했던 박근혜 정부는 2014년 ‘4·1 부동산대책’을 통해 3개 층 수직증축을 허용해 리모델링 수익성을 개선해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권교체 이후,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들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2차 안전진단 검토를 차일피일 미뤘다. 조합들은 수직증축을 포기하고 수평·별동 증축으로 선회한 후에야 2021년 사업 승인을 받았다.

서은신 느티4단지 조합장은 “정부가 지금 안전진단을 면제해주겠다고 약속해도, 막상 사업에 들어가면 안전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박기석 무지개4단지 조합장은 “리모델링이 활성화된 건 박근혜 정부가 가구 수를 15% 늘려 사업성을 높여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인데, 그 후 10년이 흘렀는데도 아직 착공한 단지가 없다”며 “정부가 특별법을 통과시킨다고 해도 실질적인 허가는 모두 ‘지자체’가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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