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국내 첫 디지털 치료 기기 허가 내준 식품의약품안전처 오유경 처장 | “AI 기반 치료 기기 새로운 길 만들겠다…韓 제품 경쟁력 있어”

오송=김명지 조선비즈 기자 2023. 2. 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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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서울대 약학대 학·석사, 미국 뉴욕주립대 약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 의대 세포생물학과 박사후연구원, 전 차의과대 의학과 교수, 전 고려대 생명과학대 교수, 전 한국약제학회 회장, 전 한국약학교육협의회 이사장,전 서울대 약학대 학장 사진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처장은 지난해 12월 경기도 용인세브란스병원 병리학과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스마트 병원 선도’를 목표로 정보통신(IT) 및 로봇 기술을 업무에 적극 활용하는 곳이다. 국내 대학병원 병리학과에서는 암 조직과 정상 조직을 분별하는 업무를 한다. 수술실에서 환자의 조직을 떼어 슬라이드로 만들어 오면, 숙련된 병리학자가 현미경으로 보면서 암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별하는 식이다. 그런데 용인세브란스병원 병리학과에서는 환자 조직의 슬라이드를 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이 커다란 화면으로 떴다. 여러 대의 현미경을 갖다 놓고, 서로 돌려봤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환자 조직이 화면으로 뜨니, 병리학과 의사들끼리 실시간 토론이 가능했다. 용인세브란스병원에서 신촌 본원, 나아가 외국에 있는 병원과 원격 토론도 가능해졌다.

서울대 약학대 교수인 오 처장은 초년에 차의과학대학교 의학과에서 근무했었다. 오 처장은 “의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접목된 진단 소프트웨어가 의료 현장에 쓰이는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2월 15일 식약처는 불면증 치료 소프트웨어인 솜즈(Somzz)를 국내 첫 디지털 치료 기기로 허가했다. 식약처는 2020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치료 기기에 대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식약처는 이번에 허가된 불면증 치료 가이드라인 외에 주의력결핍증후군(ADHD), 섭식 장애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추가로 개발하고 있다. 오 처장은 “한국은 IT 강국이기 때문에 디지털 쪽에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라며 “우리 제품이 세계를 선도할 수 있게 규제의 새로운 길을 뚫겠다”라고 말했다.

여성 첫 서울대 약학대학 학장을 지낸 오 처장은 차의과학대학교, 보령, SK케미칼 등 산업계 근무 경력에, 40대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으로 등록되는 등 유능한 약학자로 통한다. 그가 지난해 5월 27일 식약처장으로 취임하자 업계에선 ‘적임자가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오 처장은 지난해 오미크론 변이 유행 당시 아세트아미노펜 등 해열제가 품귀 현상을 보이자, 국내 제약사들을 백방으로 쫓아다니며 생산량 확대를 이끌어냈다. 2월 7일 충청북도 오송에 있는 식약처에서 오 처장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디지털 치료 기기 육성을 위해 식약처가 적극 나서는 배경이 궁금하다.
“한국은 IT 기술이 강하기 때문에 첨단 바이오와 디지털 쪽은 좀 더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었다. 여기에 기존의 케미컬 의약품은 이미 규제의 길이 뚫려 있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후보물질을 발굴해서 동물실험을 거쳐 임상을 하면 된다. 그러나 디지털과 AI는 다르다.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규제의 길이 명확하지 않다. AI 기반 디지털 치료 기기는 규제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더 기회가 있다고 본다. 그러니 우리 제품이 세계를 선도할 수 있게, 식약처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정부 업무평가에서 전 부문 우수 등급을 받았다.
“이번 평가에 국민 참여 비율이 높았던 것으로 안다. 식약처가 이제 변신해서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구나라는 노력을 국민이 가상하게 봐주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오미크론 유행으로 감기약이 품귀였을 때 제약사들을 설득한 것으로 안다. 그 점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게 아닌가.
“그런데 요즘에는 변비약(마그밀) 품귀 문제가 더 크게 회자하고 있다. 일본에서 수입되던 마그밀 원료 의약품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수입원을 다른 나라로 변경했다. 앞으로 제2의 마그밀, 제3의 아세트아미노펜 같은 문제가 또 나올 수 있으니 체계적으로 접근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건가.
“의사회와 약사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보건복지부, 식약처가 협의해 해결할 프로세스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약사회가 의약품 공급 이상 징후를 알려오면, 의사회가 대체 의약품 지정이나 처방 분산을 요청하고, 나아가 식약처가 제약사 공급을 독려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보건복지부에 ‘약가 인상 검토’를 요청하는 식이다.”

식약처가 전문 심사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나.
“전문 인력 확충은 오래된 숙제다. 식약처의 심사 인력은 345명이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1년 기준 8051명이다. 하지만 FDA는 신약 허가를 받는 데 내는 돈이 34억2000만원 정도인데, 한국은 883만원이다. 상황이 다르다는 뜻이다. 결국 차선책을 생각했을 때 우리는 ‘일당백’ 개념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심사관들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내부적으로 맞춤형 교육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임시 직제였던 마약기획관이 정규직으로 편성됐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
“마약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정부 의지를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최근 마약사범의 연령대가 낮아지는 추세다. 마약사범 중 20대 비중이 2017년 15%였는데, 2021년 통계를 보면 35.4%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10대 비중은 2017년 0.8%로 미미했는데, 2021년에 2.8%가 됐다. 이제 국가가 적극 개입할 때가 됐다.”

마약 단속과 격리가 우선시돼야 하는 것 아닌가.
“단속 예방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마약사범의 재범률은 37%에 이른다. 미국 등에서 유학한 학생들이 돌아와서 문제가 되기 때문에 재활 부분을 도외시하면 안 된다.”

단속과 예방 측면에서는 어떤 점을 고민하고 있나.
“신종 마약에 대한 정보 수집을 신속히 하려고 한다. 마약을 구분할 때 크게 신종 마약, 임시 마약, 마약으로 나눈다. 전 세계가 신약 개발에 나서듯이 새로운 마약이 줄기차게 나온다. 신종 마약은 의존성 등은 있는데 구조가 달라서 마약 검출이 안 된다. 이런 신종 마약을 신속히 발견해 임시 마약으로 지정하려고 한다. 국내에서 신종 마약에서 임시 마약으로 지정되기까지 90일 정도 걸렸는데, 작년에는 52일로 단축했고, 올해는 40일까지 줄이려고 한다.”

국제사회와 협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작년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와 협력 의향서를 체결했다. UNODC는 불법 마약, 국제 범죄 문제 등 대응을 위해 1997년 설립된 유엔사무국 산하 조직으로 신종 마약류 정보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 조직과 협력하면 신종 마약에 대한 정보를 빨리 받을 수 있고, 임시 마약 관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하나밖에 없는데, 관련 법을 세분화할 계획이 있나.
“미국 등 선진국 사례를 보면, 한국도 마약 재활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와 가족을 어떻게 재활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법제화되면, 예산 확보도 훨씬 수월해질 텐데 지금은 그런 울타리가 없는 상태라, 식약처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의료용 대마 관련 규제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마는 양면성이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오남용 우려를 불식하면서도, 절실히 필요한 환자에게 쓰일 수 있게 하고, 산업계가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오남용 가능성은 마약류 통합관리 시스템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더해 우려를 줄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식약처를 어떤 조직으로 만들고 싶나.
“식약처를 소통이 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규제를 하는 기관으로 재정립하고 싶다. 과거 식약처는 무섭고 말 안 통하는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예전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인을 만나면 ‘FDA에 가면 말이 통하는데, 식약처 직원을 만나면 말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FDA와 할 수 있었던 과학적인 소통을 식약처에서도 할 수 있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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