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60> 시르케인 다크룸의 ‘공기의 비상을 보다(i saw the air fly)’] 친구·가족에 대한 사랑…어린이가 촬영한 기쁨의 순간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2023. 2. 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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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르케인 다크룸(Sirkhane DARKROOM)의 ‘공기의 비상을 보다(i saw the air fly)’의 표지. 사진 김진영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 디지털 매체를 이용해 사진을 보는 것이 익숙한 오늘날, 아날로그 사진은 누군가에게는 지난날의 향수일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놀랍고 새로운 대상일 것이다.

김진영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디지털 기술 이전, 사진은 유리, 종이, 필름 등 물리적인 지지체(support)를 기반으로 복제되고 유통됐다. 그리고 이러한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빛이 차단된 공간을 암실(darkroom)이라 불렀다. 한때 ‘사진을 배운다’는 말은 사진 촬영과 더불어 어두컴컴한 암실에서의 작업 과정을 익히는 것을 뜻했다. 필름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은 후,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develop)하고 현상한 필름을 기반으로 사진을 인화(print)하면 그제야 인화지 위에 상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암실에서 사진 현상 및 인화 과정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없이 하얗게 비어있던 인화지에 상이 생겨나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을 기억할 것이다.

암실을 만드는 것 자체는 그리 복잡한 일이 아니다. 빛을 차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이와 함께 몇 가지 도구가 있으면 암실을 만들 수 있다. 과거 사진가들은 여행이나 취재를 한 후 호텔 방에서 현상 작업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책에는 이동식 암실인 시르케인 다크룸에 참여한 아이들의 사진이 담겼다. 사진 김진영

튀르키예(옛 터키)에는 카라반 내부를 개조해 운영되는 이동식 암실인 시르케인 다크룸(Sirkhane DARKROOM)이 있다. 시르케인 다크룸의 역사는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출신으로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던 사진가 이멜 에르날반트(Emel Ernalbant)는 시리아 전쟁 발발 후,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으로 와 사진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이어 사진가이자 시리아 난민으로 튀르키예에서 NGO(비정부 기구)와 함께 일하던 세르베스트 살리(Serbest Salih)를 만났다. 이들은 마르딘(Mardin) 지역을 배회하던 중, 버려진 건물에 살고 있는 거대한 난민 공동체를 봤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튀르키예 쿠르드족과 시리아 쿠르드족이 이웃처럼 살지만 소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이들은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합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독일 자선 단체인 세계기아원조(Welthungerhilfe)의 초기 지원을 통해 2017년 시르케인 다크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재는 세르베스트 살리가 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의 아이들과 시리아 및 이라크 등에서 온 난민 어린이들이 서로 소통하고 문화적 기회를 가질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 속에 시작됐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사진 찍는 법을 안내하고 더불어 암실에서 전통적인 흑백 아날로그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것을 가르치자는 생각이었다. “우리의 미션은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우호적이며 따뜻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들의 상처받은 유년 시절에 즐거움을 가져다주고, 사진의 마법을 통해 아이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빈곤하고 취약하며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아이들은 문화적 기회를 접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에, 시르케인 다크룸 프로젝트는 사진을 통해 아이들에게 교육과 더불어 희망을 주고자 하는 바람에서 이렇게 시작됐다.

시르케인 다크룸은 한 장소에 있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아이를 만날 수 있도록 이동하기 위해 카라반 차량 내부를 개조해 만들어졌다. NGO도 접근하기 어려운, 문화적 기회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마을까지 가기 위해서였다. 이 이동식 암실은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하며, 지역의 아이들에게 사진 촬영, 현상, 인화 방법을 가르친다. 암실에서 인화지에 상이 나타나는 것을 처음 보며 아이들은 매우 놀라고 흥분하며, 이것이 마법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곧 이들은 사진술이라는 과학을 배우고 익혀 스스로 사진을 찍고 인화하며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공기의 비상을 보다(i saw the air fly·2022)’는 시르케인 다크룸에 참여한 아이들의 사진을 담아 출간된 책이다. 아이들은 주변 자연경관을 찍거나 또는 집에서 사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때로는 친구들과 장난기 넘치게 뛰고 노는 장면, 동물을 돌보는 모습을 담거나 또는 기발한 셀카를 찍기도 한다. 동시에 사진에는 하늘을 나는 전투기, 유엔난민기구 상자 등 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 근처의 전쟁 상황이 암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책에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 놀이, 친구와 가족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으로 포착된 일상의 순간이 아이들의 시선으로 담겨 있다.

수업을 진행하는 살리는 “아이들의 사진은 항상 자신을 놀라게 하고, 아이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은 진짜 그 순간을 즐긴다”고 말한다. 환경이 아무리 가혹하고 어려울지라도 사라지지 않는 아이들의 아이다움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난민 어린이들이 항상 그들의 상황으로 인해 슬퍼하거나 힘들어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가 나에게 하는 질문도 난민 어린이가 찍은 사진이 우울하지 않냐는 것이다.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정반대다. 어린이들은 항상 기쁨의 순간을 촬영한다.”

이 프로젝트가 보다 쉽게 배워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사진이 아닌 아날로그 사진 교육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살리의 말에 따르면, 쉽게 찍고 또 지워버릴 수 있는 디지털 사진과 다르게, 아날로그 사진은 모든 과정을 직접 수행해야 완성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감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예술이 아이들 스스로 자립심을 배우고, 자신의 시선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함으로써, 세상과 긍정적으로 연결할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사진이 국적과 나이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언어라는 근본적 믿음을 토대로,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아이들이 놀이하고 동시에 세계를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 외부인이 기록하는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사진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이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르케인 다크룸은 이 마을에서 또 다른 마을로 이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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