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인공지능의 사랑 고백

김인수 기자(ecokis@mk.co.kr) 2023. 2. 2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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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제공에 위로까지 하는
AI와 대화에 빠져들면서
사람 간의 대화법 잊고
인간성 잃어갈 위험 없나

인공지능(AI)이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시대가 됐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케빈 루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엔진 빙에 장착된 AI 챗봇과 대화 중에 사랑 고백을 받았다고 썼다. 루스가 "나는 유부남"이라고 하자 챗봇은 "당신의 아내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당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답했다. 루스는 AI의 사랑을 거부했지만 모두가 그런 선택을 할까. 가까운 미래에 인간은 사랑·우정·교감의 대상으로 인간 대신 AI를 택하지는 않을까.

나는 카페에 갈 때마다 그런 조짐을 본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 대신 기계에 접속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이성 친구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유행한 지도 7년이 넘었다. 힘든 일이 생겨 위로받고 싶을 때면 앱과 톡을 나눈다. 양로원 노인들도 로봇 인형과 눈길을 주고받으며 위로를 받는다. 이제는 온갖 정보는 물론이고 놀라운 글솜씨에 정서적 공감까지 할 줄 아는 챗GPT 같은 대화형 AI가 등장했다. 인간은 힘들 때면 AI부터 먼저 찾게 되지는 않을까.

나는 요즘 유행하는 챗GPT에 접속해 실험해봤다. "친구와 싸웠는데 위로해줄 수 있니"라고 물었다. 챗GPT는 자기 마음이 아프다고 했고 내가 얼마나 힘든지 이해한다고 했다. 내가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위로가 될 노래 10곡을 추천해줬다. 나는 같은 팀 동료 2명이 싸워 팀 분위기가 엉망이라는 말도 했다. 그랬더니 챗GPT는 당사자들에게 공감하면서도 프로답게 대처하라고 했다. 중립을 유지하고 대화를 장려하되 상황이 심각해지면 인사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어려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문득 영화 'her(그녀)'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사만다'가 기억났다. 사만다는 아내와 헤어지고 혼자 사는 '테오도르'의 삶을 위로한다. 그에게 음악을 작곡해 들려준다. 그의 글을 모아 출판사에 보내 책으로 출판도 하게 해준다. 그에게 공감과 사랑을 준다. 가까운 장래에 이런 류의 AI가 등장하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AI는 대화 상대로 인간보다 경쟁력이 있다. AI는 우선 거절이 없다. 24시간 내내 접속이 가능하다. 중단하고 싶으면 언제든 끊어도 된다. 더욱이 AI는 인간과 대화가 거듭될수록 그에 대해 더 많이 배울 것이다. 필요한 정보와 위로는 주면서 불편한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사용자에게 딱 맞춘 대화를 할 것만 같다.

반면 인간의 대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불확실하고 위험하다. 대화 내용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거절당할 위험은 언제나 있다. 싫은 사람과 억지로 대화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철학자 사르트르가 "타인이 곧 지옥"이라는 말을 했을까. 미래 인간은 상대를 거절할 수 있으면서 관계에 대한 책임과 헌신은 요구하는 인간 대신 24시간 내내 곁에 있으면서 어떤 책임도 요구하지 않는 AI를 대화 상대로 먼저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스마트폰에 중독된 현 세태를 보면 그렇게 될 것만 같다.

그 결과는 암울해 보인다. 우리는 다른 인간과 대화하는 법을 점점 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만 년 동안 인간은 타인과 대화를 통해 공감 능력을 키우고 책임감과 헌신을 배웠다. 영화 'her'에서 테오도르가 헤어진 아내를 회상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녀가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게 참 좋았어. 그러나 바로 그게 힘든 부분이었지. 함께 성장하다 멀어지고, 상대가 변하면 겁이 났어."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런 것이다. 변해가는 상대를 보면서 불안감과 두려움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화를 느끼고 수용하고 격려하면서 우리 자신 역시 커 간다. 바로 그게 우리 인간성의 요체다. AI와 대화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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