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재를 소개합니다, 학예연구사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기획한 임혜경 학예연구사 인터뷰
‘살아 있는 유물’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 박물관. 이곳에서 역사와 문화재, 그리고 사람을 하나로 이어주는 이가 있다.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학예연구사는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는 동시에 문화재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놓는 역할을 한다.
박물관의 ‘종합 엔터테이너’, 학예연구사
학예연구사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작품이나 유물 등을 수집하고 관리해 학술적으로 연구하며, 이를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해 전시를 기획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을 맡는다. 이에 따라 학예연구사가 담당하는 업무도 세부적으로 나뉜다. 소장품을 등록하고 수장고를 관리하는 유물관리원, 소장품의 보존 처리와 과학적인 분석을 수행하는 보존 처리원, 문화재를 연구하고 조사하며 전시를 기획하는 학예연구원, 연령별·계층별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교육연구원 등이다. 말 그대로 박물관에서의 학예연구사는 문화재의 가치를 다방면으로 수호하기 위한 ‘종합 엔터테이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학예연구사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길
학예연구사가 가진 직업의 전문성, 그리고 업무의 다양성이 폭넓은 만큼 관련 학과가 많은 편이다. 사학과나 역사교육과를 졸업하는 것 이외에도 고고학을 전공하면 발굴 유물을 연구할 수 있고, 미술사학을 전공하면 회화나 조각 등 미술품을 시대별로, 나라별로 다루는 학예연구사가 될 수 있다. 만약 문화재를 수리하고 보존 처리를 담당하는 분야로 가고 싶다면 문화재보존학과와 같은 보존과학 관련 학과나 화학과, 물리학과, 원자력공학과 등 이공계열 학과를 이수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직은 고고학, 미술사학, 역사학, 보존과학, 박물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위와 경력을 갖춘 지원자를 선발해 담당 직무를 배정하고 있다.
■ 학예연구사가 말하는 직업 이야기
“우리 역사와 문화재를 사랑하는 폭넓은 시선을 지닐 것”
임혜경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학예연구사
고귀함이 살아 숨 쉬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쪽 벽면에 가득 채워진 고서를 둘러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곳에서 임혜경 학예연구사를 만나 이 직업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전시장의 뒷이야기까지 들어봤다.
Q.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을 준비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전시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의궤란 조선시대의 중요한 국가 행사를 상세하게 기록해놓은 책을 말해요. 조선왕조 의궤 중에서도 왕만 볼 수 있도록 만든 ‘어람용’ 의궤가 바로 외규장각 의궤인데요.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의궤가 우리나라에 돌아온 지 1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전시를 열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를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조선왕조 의궤가 얼마나 중요한 책인지, 특히 어람용으로 구성된 외규장각 의궤의 고귀한 품격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Q. 전시를 기획하고 개최하기까지 다양한 일을 하신다고요. 보통 1년이 넘는 준비 기간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이번 전시를 예로 들면, 먼저 조선시대 역사를 알고 의궤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어떤 유물을 전시할지를 선별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충분히 공부하고 연구사적 검토를 거쳐야 하죠. 이 과정이 전체 기간 중에 절반 정도로 가장 길다고 보면 됩니다. 어떤 지점이 중요하고, 어떤 것을 조금 더 새롭게 관람객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를 동료들과 토론하기도 해요. 그다음부터는 유물을 어떻게 배치할지 구성하고, 전시 전문 디자이너와 함께 전시실의 색감과 분위기 등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때는 학예연구사가 숨겨뒀던 미적 감각을 발휘하기도 해요.(웃음) 전시실 조성을 마무리하고 개막한 이후에는 관람객들을 직접 만나 전시 작품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들려드리곤 합니다.
Q.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학예연구사라면 아무래도 문화재를 가까이서 다루는 경우가 많을 텐데요.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항들이 있다면요?
A. 첫째는 역시 문화재의 안전이에요. 유물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넘겨줘야 할 인류의 자산이잖아요. 그래서 문화재를 옮기고 정리할 때는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다룹니다. 문화재 중에는 가벼운 책만 있는 게 아니라 토기류나 금속류 등 무거운 것들도 있어서 힘도 많이 써야 해요. 강인한 체력이 필요한지라 생각만큼 ‘고상한’ 직업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네요.(웃음) 또, 학예연구사는 문화재를 이해하고 해석할 때 균형 있는 시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그 속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알리고, 문화재를 소개하는 직업이기에 폭넓게 공부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Q. 말씀을 듣다 보니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일하시면서 손에 꼽는 ‘최애’ 문화재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저는 대학원에서 한국 불교 문화사를 전공했는데요. 불교 경전에 대해 공부할 때는 책에 있는 글과 사진으로만 접한 것이 전부였어요. 그러다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초조대장경 실물을 보게 되었어요. 방대한 길이의 대장경을 쭉 펼쳐서 바라보는데 감회가 새로웠죠. 천년의 지혜가 담긴 유물을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있다니, 어렸을 때의 우상을 실제로 마주쳤을 때의 느낌이 이랬을까요?(웃음) 언젠가는 제 전공 분야인 불교 문화재를 주제로 저만이 할 수 있는 구성으로 전시를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항상 가지고 있어요.
Q. 미래의 학예연구사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A. 문화재가 존재하는 한 그것을 관리하고, 보존하고, 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업무의 성격은 조금씩 달라지겠죠. 과거의 학예연구사가 했던 일과 지금이 많이 달라졌듯이,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일만 하지는 않을 거예요. 현재는 관람객들이 이곳의 시간과 공간 자체를 즐기면서 전시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어요. 전시장에 인터랙티브나 실감 콘텐츠 등 관람객이 체험할 수 있는 최신 기술이 속속 도입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저희들도 신기술을 개발하는 전문가들을 만나기 위해 현장조사를 다니기도 한답니다. 앞으로는 여러 분야를 융합해 전시를 기획하는 능력이 더욱 필요할 거예요. 원래 있던 것을 어떻게 새롭게 해석하고 좀 더 신선한 관점에서 구성할 것인지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춘다면 좋겠죠.
Q. 학예연구사를 꿈꾸는 청소년이 지금 당장 해보면 좋을 활동이 있나요?
A. 제 이야기를 끝까지 읽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우리 역사와 문화재에 관심과 애정이 충만한 친구들일 것 같아요. 그렇다면 기본적인 소양은 어느 정도 갖춘 셈이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죠? 그것은 바로 열정이에요. 독서를 통해 꾸준히 배경지식을 쌓고 근처 박물관에 기회가 되는 대로 찾아가서 문화재를 직접 느끼며 ‘마음의 폭’을 넓혀가길 바라요.
이은주 MODU매거진 기자 silver@modu1318.com
글 이은주 ‧ 사진 바림,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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