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잠든 문화유산에 디지털 숨결을 불어넣다, 디지털문화재복원전문가
· 국내 1세대 디지털문화재복원전문가 박진호 교수 인터뷰
박물관 혹은 유적지를 직접 찾아가 문화재를 눈으로만 보는 시대는 끝났다. 가까운 미래에는 문화재를 ‘체험’하기 위해 가상공간에 ‘접속’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가상현실, 메타버스, 디지털 트윈 등의 신기술로 문화재를 재탄생시키는 디지털문화재복원전문가를 만났다.
과거를 현재로, 현실에서 가상으로! 디지털 문화유산을 남기는 사람들
지난 2008년, 당시 국보 1호였던 숭례문에 화재가 일어나 전부 불타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빠진 와중에 숭례문 복원 및 복구에 대한 이슈가 뜨겁게 떠올랐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으로 화재 사건이 있기 6년 전 숭례문 전체를 ‘3D 레이저 스캔’으로 기록한 적이 있었다. 스캐너를 이용한 3차원 촬영을 하면 건축물의 3D 입체 도면이 제작되는데, 이 기술 덕분에 숭례문의 완벽한 복원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전에 수기로 작성된 도면은 불완전한 기록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그 이후로 주요 문화재의 3차원 촬영을 진행했다. 디지털 문화재 복원에 대한 개념이 국내에 잘 알려지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디지털문화재복원전문가는 유·무형의 문화재를 디지털 기술을 통해 가상공간에 복원해내는 일을 한다. 디지털 영상기술 3차원 스캔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를 문화재에 적용한 것이다. 최근에는 드론과 사진측량 기술이 도입되었고, 가상현실을 이용해 문화재를 직접 앞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현실감 있게 재현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과거에 훼손되거나 사라진 문화재를 눈으로 보고, 가상의 세계에서 손으로 만지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영구적인 가치를 가진 디지털 문화유산이라는 뜻의 ‘디지털 헤리티지(Digital heritage)’라는 말로 전 세계에 통용되고 있다.
■ GO! 현장 속으로
앙코르와트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
1. 3D 스캔
문화유산이 있는 유적지에 방문하여 3D 레이저 스캐너와 고해상도(HD) 영상 카메라를 이용한 실측 데이터를 확보하는 단계다.
2. 3D 모델링
현존하는 유·무형 문화유산의 경우 고해상도 정밀 스캔 기술을 이용해 3차원 모델로 만든 뒤 가상공간에 구축한다.
3. 콘텐츠 활용
관람객들은 디지털 복원으로 재탄생한 문화재를 VR·AR로 즐기거나, 프로젝션 매핑 등의 미디어 아트, 실감형 콘텐츠로 체험할 수도 있다.
■ 디지털문화재복원전문가에게 듣는 직업 이야기
“디지털 타임머신을 타고 K-문화유산 여행을 떠나보세요”
박진호 디지털문화재복원전문가 /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역사책에 살고 있는 과거의 인물을 만날 수는 없을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수단은 뭘까?’ 대한민국 1세대 디지털문화재복원가의 꿈은 이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문화재를 디지털로 재현하는 일을 두고 그는 ‘디지털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만나는 것’으로 표현했다. 과거의 유산을 미래의 소중한 유산으로 변화시키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Q. 문화재를 수리하고 원형으로 복구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과학기술을 활용해 문화재를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디지털 문화재 복원’의 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A. 혹시 ‘황룡사 9층 목탑’을 알고 있나요? 몇 년 전에 이를 실제로 복원하자는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지만 결국 무산됐습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만일 목탑을 다시 짓게 되면 당시 탑의 아래를 받치고 있던 옛날 유구나 초석이 훼손될 수 있다는 거예요. 문화재 재건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야 하는 문제도 있었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황룡사 9층 목탑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 바로 디지털 복원을 통해 문화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1300년 전의 경주 유적을 가상으로 재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황룡사 9층 목탑을 VR로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했는데요. 현장에 있는 유적을 훼손하지 않고, 복원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또, 관람객들은 가상공간에서도 황룡사에 온 듯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지요.
Q. 그런데 황룡사 9층 목탑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참고 문헌이나 그림과 같은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들었어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디지털로 복원할 수 있나요?
A. 건물이나 목탑의 모양, 건축 양식에 대한 아무런 증거와 자료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아서 3차원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을 때는 ‘가상 추정’ 복원을 진행합니다. 문화재의 고증과 복원에 가장 근접한 학계의 정설에 기반해 3D 모델링을 하게 되죠. 만약 문화재를 고증하는 근거인 이론이나 정설이 바뀐다면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 또한 디지털 복원의 장점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 중에는 멀쩡히 남아 있는 것보다 훼손되고 망실된 경우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현재는 가상 추정을 통해 디지털 문화재 복원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역사 속에서 사라진 문화재를 디지털 세상으로 ‘소환’한다면 사람들이 오래오래 과거의 문화재를 기억할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의 1세대 디지털문화재복원가로 국내와 해외에서 수많은 문화재 복원 프로젝트에 도전해오면서 뿌듯했던 순간이 있었다면요?
A.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요청을 받아 우리나라의 석굴암을 디지털로 복원해 현지에서 전시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특히 일제가 훼손하기 전인 1300년 전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3D 스캐너를 사용해 중앙의 본존불과 주변 조각상들을 0.3mm 간격으로 매우 세밀하게 측정했죠. 뉴욕에 있던 여러 세계인이 석굴암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저의 첫 해외 프로젝트였던 ‘앙코르와트’ 디지털 복원 작업도 떠오릅니다. 캄보디아의 거대한 사원을 뛰어다니며 다섯 번에 걸쳐 3D 스캔을 완료했어요. 도면을 바탕으로 3D 모델링을 하는 데만 5개월이 걸렸고요. 처음에는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중압감과 끝없는 시행착오 때문에 그곳에서의 1년이 마치 10년처럼 느껴졌지만.(웃음) 마침내 결과물이 세상에 나오고 나서 그 고통은 기쁨으로 바뀌었어요. 그때의 소중한 경험 덕분에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해외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었답니다.
Q. 저도 언젠가 ‘디지털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기행을 즐기고 싶어지네요.(웃음) 지금까지 말씀하신 유물과 유적지처럼 형태가 있는 문화재 말고도 혹시 무형의 문화유산들도 디지털로 되살릴 수 있을까요?
A. 물론이죠! 게다가 디지털 복원을 통해서 과거의 사람들을 현실로 불러오는 것이 가능해요. 대표적으로 인공지능의 신기술을 활용한 ‘AI 디지털 휴먼’이 있습니다. 역사적 인물이나 위인을 가상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의 외형을 3D로 똑같이 재현하고, 그분과 관련된 빅데이터를 수집해 인공지능이 딥러닝과 머신러닝을 거쳐 실제 안중근 의사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물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들은 VR기기를 쓰고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가 이뤄졌던 역사적 공간으로 들어가서 현장을 함께하며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교과서를 읽고 강의만 듣는 것이 아니라 교실 안으로 위인을 불러오거나, 학생들이 과거의 장면으로 직접 들어가서 역사 속의 주인공과 소통할 수 있죠. 그래서 앞으로의 교육 패러다임도 바뀌게 될 거예요. 저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AI 디지털 휴먼’을 통한 역사 인물과 현대인의 만남을 계속 추진해볼 생각입니다.
Q. 디지털문화재복원가의 꿈을 품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조언해주세요.
A. 디지털 문화재 복원은 고고학과 인류학, 역사학, 그리고 IT 기술을 함께 접목한, 한마디로 ‘IT 컬처 테크놀로지’ 분야라고 할 수 있어요. 우선은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잘 파악한 후 원하는 학과에 진학해 공부를 이어나가세요. 본격적으로 이쪽에 진출하려면 대학원의 문화콘텐츠 관련 학과에서 디지털 헤리티지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며 시야를 넓히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그 나라의 기관과 현지 전문가와의 협력이 필요하기에 영어 구사 능력은 필수입니다. 전 세계 곳곳에 우리 문화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처럼, 곧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시대도 올 거라 의심치 않습니다. 한반도를 넘어 세계의 문화유산을 연결하며 K-디지털 헤리티지의 선봉을 이끄는 미래의 주인공이 되어주세요!
이은주 MODU매거진 기자 silver@modu1318.com
글 이은주 ‧ 사진 바림, 박진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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