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 뭉치는 美·日·대만, 침묵하는 韓… “‘칩4′서 희생양 될수도”

황민규 기자 2023. 2. 2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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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1년 만에 日 추가 투자 선언
美·日, 세계 최첨단 파운드리 기지로 부상
”칩4서 한국만 소외돼…이득 없이 피해만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일본에 두 번째 반도체 생산 공장 건설을 검토한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일본 언론들이 1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한·미·일·대만의 반도체 4자 동맹인 ‘칩4′가 최근 첫 고위 간부급 회의를 진행하며 미국, 대만, 일본의 기업간 협력 구도가 긴밀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소외돼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대만, 일본이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모색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최대 생산지인 중국 공장의 가동에 차질만 빚게 되는 리스크를 떠안았다.

27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일본, 대만 반도체 기업간 파트너십이 강화되고 있다. 전일 대만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는 일본에 두 번째 반도체 설립을 공식화하며 한화로 약 9조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공장에서는 5nm(나노미터), 10nm의 제조공정을 적용한 반도체가 생산된다. TSMC는 지난해 4월 첫 공장 건설을 시작한 바 있는데 1년도 지나지 않아 추가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TSMC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현재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신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투자 규모도 당초 계획에 비해 3배나 늘렸다. 내년부터 가동을 시작하는 애리조나 공장에서는 세계 최대 고객사 중 하나인 애플 아이폰 등에 탑재할 최선단 공정의 칩을 생산하게 된다. TSMC의 투자를 바탕으로 미국, 일본도 대만에 이어 세계 최첨단 파운드리 생산기지로 떠오르게 된 셈이다.

◇칩4로 자국 반도체 산업 힘 키우는 미·일·대만

칩4 동맹국들은 중국에 대항해 각자 자국 반도체 산업의 약점을 협력해 메꾸려는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미국은 자국 본토에 5nm 이하의 최첨단 칩을 생산할 기지가 없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TSMC, 삼성전자 등으로부터 최첨단 생산라인 투자를 유치했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램리서치, KLA 등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중국 사업을 중단하며 중국의 첨단 공정 개발에 제동을 거는 한편 일본, 대만 등지에 새 둥지를 틀고 있다.

대만 TSMC도 이득을 보고 있다. 칩4 동맹을 바탕으로 TSMC는 기존 주력 생산기지였던 대만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지로 팹 위치를 다변화했다. 주요 거점 고객사들과의 전략적 협업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또 소재, 부품, 장비 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자국 산업 생태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본의 소재, 장비 기업과 돈독한 파트너십을 맺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짓고 있는 컴퓨터 칩 공장 건설현장을 류더인(劉德音) TSMC 회장(오른쪽)과 C.C. 웨이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대만이나 한국에 비해 반도체 생산 시설과 공정 기술이 떨어지는 일본은 대만 TSMC의 공장을 자국으로 유치하면서 최첨단 칩 공급망을 손에 넣었다. 시장 규모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라인을 일본 내로 불러들였다. 또 일본 8개 대기업의 출자로 작년 하반기 설립된 반도체 회사 라피더스를 키워 최선단 반도체 공정 경쟁에 뛰어들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다른 칩4 국가에 비해) 이상하리만큼 한국은 조용하다. 각국의 연합 구성에 한국만 소외된 것 같다”며 “한국이 다른 미국이나 일본, 대만과 상호협력 없이 독자적으로 새로운 공급망을 형성하려면 경쟁국가에 비해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될 것”이라며 “게다가 최근 메모리 업황은 역사상 최악의 하락 사이클을 경험하면서 만 14년만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적자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잠잠한 정부에 다급한 삼성·SK하이닉스, 美 로비 강화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반도체 제재로 인해 가장 피해가 큰 건 한국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주요 생산기지들이 중국 우시, 시안 등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최대 매출 품목인 D램 공장의 약 48%를 우시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역시 주요 매출 품목인 낸드플래시의 생산량 40%를 시안 공장에 의지하고 있다. 이 공장들은 미국 제재로 인해 공정 업그레이드나 유지, 보수가 점점 어려워져 시간이 갈수록 생산차질을 빚게 될 전망이다. 이는 고스란히 삼성, SK하이닉스의 손실로 이어진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분위기지만 정작 정부도 이렇다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지난 16일 한국, 미국, 일본, 대만 정부의 국장급 실무자들이 화상으로 모여 본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에 정통한 업계관계자는 “이날 회의에서는 주로 공급망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고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상황이 다급해진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미국, 중국 정부에 합법적 로비를 진행하며 상황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앞서 대미 대관조직을 강화하기도 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 SK하이닉스는 기업이 할 수 있는 선에서의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로비를 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담당 부서인 산업부가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해야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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