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인데 국적도 안 줘…여전히 일본 법 따져"

박상휘 기자 박혜연 기자 이정후 기자 김용빈 기자 2023. 2. 27. 05: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전하는 현실] ①단재 신채호 며느리 이덕남 여사
"친일파 후손 재산은 찾아주면서 독립운동가 땅 한 뙈기 찾아줘 봤나"

[편집자주] 3·1절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부터 지정된 국경일로, 광복 이전부터 독립운동가들과 우리 민족의 기념일이자 축제였습니다. 그러나 104년이 흐른 지금, 국가와 사회의 외면 속에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입니다. 이들은 마음 한편에 간직해왔던 자부심마저 초라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뉴스1은 3·1절 104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목소리를 3편의 기획물에 담아 송고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인 이덕남 여사가 21일 충북 청주시 단재 신채호 사당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2.21/뉴스1 ⓒ News1 김용빈 기자

(서울·청주=뉴스1) 박상휘 박혜연 이정후 김용빈 기자 = "아직까지도 해방은 멀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로 유명한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의 며느리 이덕남 여사(79)는 신채호 선생 순국 87주기였던 지난 21일 <뉴스1>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신채호 선생의 묘소가 있는 충북 청주까지 연로한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부터 두세 시간가량 차를 달려온 이 여사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기어서라도 와야 한다"며 며느리로서 책임을 강조했다.

이 여사는 우리나라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가 '불충분'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안 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순국선열 국적회복 문제다. 대한민국 정부가 신채호 선생에 건국훈장을 수여한 것은 1962년이지만, 정작 신채호 선생의 국적이 '대한민국'으로 회복된 시점은 2009년이다.

일제강점기 호적 등재를 거부한 독립운동가들은 해방과 정부 수립 이후에도 무국적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승만 정부가 일제 호적 등재자에만 국적을 부여한 탓이다. 이 때문에 후손들은 정식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되지 못한 채 상속이나 연금 등 법적 분쟁에 휘말려야 했다.

이 여사가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순국선열의 국적회복 운동을 주도하게 된 계기는 1991년 남편인 신수범 선생이 작고한 뒤 벌어진 '적자 분쟁' 때문이었다. 단재의 장손을 자처한 A씨가 신수범 선생이 이 여사와 결혼하기 전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인해 사생아가 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호주승계권과 함께 연금 수혜권이 갈리는 문제였기 때문에 이 여사와 자녀들은 민사와 형사 소송을 진행하는 10년 동안 경제적 궁핍도 겪어야 했다. DNA 감식을 동원한 끝에 자신의 자녀들이 단재의 친손이라는 확인을 받았지만 이 여사는 시아버지인 단재와 남편 신수범 선생이 여전히 무국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바로잡고자 국적 회복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여사는 "내가 18년을 혼자 뛰어다녔다. 국적을 (회복)해달라고"라며 "어린아이들도 신채호를 다 아는데 어떻게 대한민국의 순국선열이라면서 국적을 안 주고 이럴 수가 있나"라고 답답했던 심정을 호소했다.

2009년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 개정으로 단재를 포함해 우당 이회영 선생 등 64명의 독립지사와 후손들의 국적회복도 함께 이뤄졌다. 정부는 당시 직계 후손이 있는 독립유공자에 한해 후손의 신청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했다.

이후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광복절을 앞두고 홍범도 장군과 윤동주 시인 등 직계 후손이 없는 무호적 독립유공자 156명의 가족관계등록부 창설도 추가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여사는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을 찾아 예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인 이덕남 여사가 21일 충북 청주시 단재 신채호 사당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2.21/뉴스1 ⓒ News1 김용빈 기자

이 여사는 "지금도 국적이 없어서 유령으로 있는 독립운동가들은 얼마든지 있다. 약 20만명 정도"라며 "서울 현충원에 적힌 무후(無後·후손 없음)라는 건 정말 후손이 없어서가 아니라 호적이 없어서 연결고리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단재의 국적은 회복됐지만 그 부인인 박자혜 선생은 아직도 법적인 처(妻)로 등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여사는 "호적상에는 신채호 선생이 부인 없이 아들을 낳은 것으로 돼 있다"며 "법률적으로 인정받고 싶으면 혼인 신고서를 가져오라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자혜 선생은 중국에서 신채호 선생을 만나 1920년 4월 혼인하고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혼인신고를 해야만 법적 부부로 인정받는 법률혼주의는 1923년 일제강점기 때부터 실시된 것이다. 이 여사는 "(바로잡으려면) 판사가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며 "아직도 일본 법에 우리가 그대로 묶여 있다"고 비판했다.

이 여사와 자녀들은 2019년 단재의 소유였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 땅에 대해 국가배상 소송도 제기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이 여사 측은 단재가 1919년 4월 망명 직전 대한매일신보에 "본인 소유 초가 6칸의 문권(집문서)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분실하였기에 쓸모없는 휴지로 처리하시오"라고 광고를 낸 것을 근거로 사실상 단재의 소유권을 일제가 불법 침탈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 여사는 "이완용·송병준 같은 친일파는 그 후손들이 재산을 찾아가지 않았나. 나라 팔아먹고 일군 재산을 전부 환수해도 시원찮을 처지에 그것을 찾아주면서 독립운동한 분들은 땅 한 뙈기 찾아줘 봤느냐"라고 말했다.

이 여사와 남편 신수범 선생은 경제적 열악함에도 단재를 기리는 사업에 사비를 지출해야 했다. 이 여사는 "(남편이) 은행에서 월급 받은 것이 전부 (시아버지) 전집 짓는 데 들어갔다"며 "여기 (신채호사당) 자리도 건축비는 정부에서 나왔지만 땅을 우리가 사라고 해서 아파트도 팔았다"고 회상했다.

이 여사는 "(독립유공자 예우 문제) 얘기를 하자면 너무 괴롭고 슬픈 것이 많다"며 "우리나라가 그런 형편이고 일본은 군국화하려고 하는데 (자손들을) 이 땅에 계속 살게 해야 하는지, 다른 나라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인 이덕남 여사가 21일 충북 청주시 단재 신채호 사당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2.21/뉴스1 ⓒ News1 김용빈 기자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혜연·이정후 기자)

hypark@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