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한동훈, 학폭 보도 당시 정순신과 함께 근무... 정말 몰랐나
공직기강비서관실 사전질문지에 송사 기재토록
대통령실은 "경찰 탓·정순신 개인 탓" 책임 돌려
인사 검증 투명성 큰소리 법무부도 '모르쇠' 일관
5년 전 학폭 첫 보도 때 검증자 다수 인지 가능성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이하 국수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57)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학폭) 문제로 임명 하루 만에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대통령실은 검증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부실한 검증 시스템이 속속 드러나면서 '예고된 인사 참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대통령실은 정 변호사와 경찰이 아들 학폭 문제를 보고하지 않아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루 만에 임명 철회··· 대통령실 "경찰·내정자 탓"
26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정 변호사를 국수본부장에 임명한 지 하루 만에 취소했다. 정 변호사 아들이 2017년 자립형 사립고 재학 시절 동급생을 상대로 학폭을 저질러 강제 전학 처분을 받고도, 정 변호사가 전학 처분에 맞서 '끝장 소송'을 진행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이 급속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는 전날 "아들 문제로 국민들이 걱정하시는 상황이 생겼고 이런 흠결을 가지고서는 국수본부장이란 중책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국수본부장 공모부터 임명까지 한 달 넘도록 '아들 학폭'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원인을 초기 검증 부실 탓으로 돌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5년 전 관련 보도가 있었지만 실명이 아니라 익명이었기 때문에 관계자가 아닌 사람들은 알기 어렵다"면서 "경찰 세평 조사에서도 걸러지지 못했다"고 경찰의 부실 검증을 질타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과거 정부와 달리 민간인 사찰 수준의 정보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후보자 본인이 먼저 알려오지 않는 이상 인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한동훈·이원모, 학폭 보도 당시 정순신과 같은 곳서 근무
하지만 대통령실 해명과 달리 이번 인사 참사가 검사 출신이 대거 포진한 윤석열 정부 인사 시스템이 낳은 예고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은 대통령실 인사기획관 추천을 받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1차 검증을 맡는다. 이후 법무부가 보낸 1차 자료를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실에서 관리하고,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해당 자료를 바탕으로 2차 검증을 한다. 현재 인사기획관과 인사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은 각각 복두규 전 대검 사무국장과 이원모 전 검사, 이시원 전 부장검사가 맡고 있다. 인사 추천부터 검증까지 검찰 출신이 주도하다 보니, 검찰청에서 자신들과 한솥밥을 먹던 인사에 대해선 제대로 검증하기가 힘든 구조다.
특히 정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으로 재직했던 2018년 11월 아들 학폭 사건이 익명으로 이미 보도됐기 때문에 사건 내용을 몰랐다는 해명은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당시 가해학생 아버지가 고위직 검사라고 보도됐기 때문에 해당 검찰청에선 당연히 누군지 파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폭 보도 당시 윤 대통령은 지검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3차장검사, 이원모 인사비서관은 평검사로서 정 변호사와 같은 검찰청에서 근무했다. 정 변호사가 학폭 문제를 먼저 알리지 않았더라도, 현재 인사 책임자들은 이미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얘기다.
공직자 후보의 자녀 학교생활기록부가 인사검증에 활용되는 자료가 아니라서 학폭 사실을 몰랐다는 대통령실 해명도 석연치 않다. 인사검증 업무를 담당했던 전직 공무원은 "인사 검증 매뉴얼과 체크리스트에는 검증 대상자의 송사를 조사하는 것을 기본적인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변호사가 아들의 법정대리인으로서 학교 측의 전학 처분에 맞서 대법원까지 소송을 제기한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공개한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에는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 행정 소송 여부를 기재하게끔 돼있다.
법무부 인사검증단 '제 식구 감싸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도 도마에 올랐다. 윤석열 정부는 인사 투명성을 높인다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담당했던 인사 검증 기능을 없앤 뒤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권한을 넘겼다. 법무부는 "인사정보관리단 설치는 '음지'에 있던 인사 검증 업무를 '양지'로 끌어내는 것"이라고 규정한 뒤, '감시가 가능한 시스템', '질문할 수 있는 영역' 등의 표현까지 써가며 인사 업무의 투명성이 제고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법무부는 그러나 정 변호사 낙마 뒤 쏟아지는 부실 검증 질타에 "인사정보관리단은 대통령실에서 의뢰가 있으면, 1차로 형식적·기계적 검증을 한다"며 "대통령실 의뢰가 있었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이미 정 변호사를 2차 검증한 사실이 알려졌는데도 1차 검증 여부조차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인사 추천·검증단이 검찰 출신으로 포진된 이상 '제 식구 감싸기' 비판은 언제든지 나올 수밖에 없다"며 "비검찰 출신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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