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 줄이는 바다, 희망하는 바…다

이정호 기자 2023. 2. 2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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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연구진, 바다에 녹아있는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 개발
이산화탄소 30~40% 빨아들이는 바다, 숲보다 흡수율 높아
공기 중 제거 방식보다 18배 저렴…바다 산성화 완화 효과도

#. 미래의 어느 날, 지구는 육지 하나 없이 바닷물만 일렁이는 ‘물의 행성’이 된다. 발 디딜 곳이 남지 않은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고철을 엮은 인공 섬을 구축하고, 작은 엔진이나 돛과 노를 장착한 배를 몰고 다니며 살아간다. 사회체계나 정의 같은 가치는 진작에 사라졌다. 생존에 필요하다면 남을 죽이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1995년 미국 영화 <워터월드>의 줄거리다.

<워터월드>에서 묘사된 극단적인 해수면 상승은 기후변화의 결과였다. 영화처럼 모든 육지가 사라지는 수준까진 아니지만, 현실에서도 해수면 상승은 큰 문제다. 가까운 미래에 바다는 해안 도시를 대거 침수시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그런데 최근 오히려 바다를 통해 인류가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바다가 공포가 아닌 희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바다에 녹아 있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뽑아내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바닷속 이산화탄소’ 이렇게 뽑아냅니다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진이 바닷물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기 위해 고안한 시설의 상상도. 2년 안에 시험 설비를 만들어 가동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계획이다. MIT 제공

바다, 탄소 배출량 40% 흡수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최근 바다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에너지 앤드 인바이런멘털 사이언스’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진에 따르면 바다는 지구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해 저장하는 창고다. 인류가 공기로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의 30~40%를 바다가 먹는다. 숲보다 비율이 높다. 톡 쏘는 맛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바다는 탄산음료 같은 성질을 지닌 셈이다.

바다가 이산화탄소를 다량 흡수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최근 기후변화가 비상상황이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선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시기(1850~1900년)의 평균기온보다 1.5도가 높아지면 지구의 기후변화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으로 본다. 1.5도 상승이 마지노선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오른 기온이 이미 1.1도나 된다. 기후변화 속도를 늦추지 못하면 2030년을 전후해 1.5도 선을 뚫을 것으로 과학계는 본다.

공기보다 분리 비용 저렴

바다는 이런 고민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바닷물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 농도는 공기 중보다 100배나 높다. 연구진은 MIT 공식자료를 통해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려면 이산화탄소를 농축해야 한다”며 “하지만 바다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바다가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빠르게 줄일 우회로라는 얘기다.

바다에 이산화탄소가 고농축 상태로 녹아 있다는 점은 공기 중에서처럼 이산화탄소를 꾹꾹 눌러담기 위한 장비도, 이를 작동시키기 위한 막대한 양의 전력도 필요 없다는 뜻이다. 건설과 운영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현재도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공장이 아이슬란드에서 돌아가지만, 바다에서 이산화탄소를 뽑는 편이 ‘가성비’ 면에서 낫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해수담수화 시설에서 이미 쓰고 있는 장비들을 활용하면 바닷물에서 이산화탄소 1t을 제거하는 데 56달러(7만2000원)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공기 중에선 t당 최고 1000달러(130만원)가 필요하다. 비용이 18배나 차이 난다.

기후변화 ‘치료제’ 기대

연구진이 이런 기술을 만들 수 있었던 건 바닷물에 양성자를 방출하는 방법을 고안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바닷물 속에서 중탄산염이 이산화탄소로 바뀐다. 바뀐 이산화탄소는 지하 깊은 곳에 저장하면 된다. 현재 과학계에선 기름을 다 퍼낸 유전 같은 빈 공간에 이산화탄소를 가스 상태로 주입한 뒤 액체 상태를 거쳐 주변 암석과 결합된 고체로 변하게 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연구진은 이번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 기후변화 대응의 흐름을 바꿀 확실한 ‘치료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는 속도를 늦추거나 정지시키는 것을 넘어 이미 방출된 이산화탄소를 꾸준히 줄이는 일까지 가능하다고 봤다. 연구진은 2년 안에 이산화탄소 제거 기능을 갖춘 실제 장치를 만들어 바다에서 시험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기술에는 또 다른 장점도 있다. 연구진은 공식자료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공정을 거친 바닷물은 알칼리성을 띤다”며 “이를 적절한 방식으로 방류하면 바다 산성화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산성화된 바다 때문에 탄산칼슘으로 이뤄진 껍데기의 강도가 떨어진 산호나 조개, 갑각류 등을 살리고, 해양 생태계의 바탕을 형성하는 플랑크톤도 보호할 수단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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