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정치적 올바름과 문학
‘뚱뚱하다’ ‘못생겼다’ ‘이중턱’….
어린이들이 문학 작품에서 읽기에 부적절한 말일까. 문학과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이 논쟁이 최근 영국 아동문학작가 로알드 달(1916~1990)의 작품 개정판 출간을 놓고 불거졌다. 퍼핀 출판사는 달의 작품들에서 신체 특징, 정신건강, 젠더, 인종 등과 관련된 수백개 표현을 수정하려 한다. 1964년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과체중 소년 오거스터스 그루프의 수식어는 ‘뚱뚱한’에서 ‘거대한’으로, 소인족 움파룸파의 성별은 ‘남자’에서 중성적인 ‘사람’으로 바꾼다. 1980년작 <멍청씨 부부 이야기>에서 인신공격으로 보일 수 있는 ‘이중턱’ ‘미친’ ‘못생긴’은 지운다. 58개 언어로 2억5000만권 이상 팔린 영향력이 큰 저자인 만큼 시대 변화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비판이 나왔다. 영국 왕비와 총리, 유명 작가가 대열에 동참했다. 표현의 자유 침해이자 상상력을 제약하는 검열에 다름 아니고, 책 읽는 재미를 떨어뜨리는 ‘살균된 문학’이라는 취지이다. 그러자 출판사는 방침을 바꿔 개정판과 함께 원본도 계속 출간하기로 했다. 양시론을 택한 셈인데, 기업으로서는 이윤 극대화에 부합하는 선택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의 관점에서 보는 표현의 자유, 상상력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체로 서구 주류 그중에도 어른의 시각일 가능성이 크다. 약자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을 재검토하겠다는 본래 취지가 백래시에 부딪혀 희석된 것이다. 출판사의 애초 접근이 어린이들의 비판적 독서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원본에 주석을 달아주는 방식으로 어린 독자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논쟁에서 여전히 내게 어려운 문제는 ‘어머니 대지’ 같은 표현이다. 성차별적 관점에서 비롯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비유라 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대지가 가진 자연,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차별과 폭력에서 자유로워지는 방향을 염두에 두며 동시에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장을 고민해보자는 정도로 정리해보면 어떨까.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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