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돈말결해’?···떼인 돈 받아주며 함께 싸운 10년의 기록

이영경 기자 2023. 2. 2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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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수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 <오랑캐꽃이 핀다>
10권에 895편 글 담아···체불, 폭행, 성추행 시달리는 노동자들
삼디돈말결해···후진 고용허가제가 문제
한윤수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 박영률출판사 제공

“외국인을 왜 쓰는지 아세요? 한마디로 ‘돈말결’이죠. 돈 적게 줘도 되고, 말(불평)이 없고, 결근이 없기 때문이죠.”

한윤수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는 정확히는 ‘삼디돈말결해’라고 말한다.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3D 업종에서 일하는 데 더해 돈 적게 받고, 말이 없고, 결근이 없고, 해고가 쉽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축약한 말이자, 한국 고용주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

여기에 돈을 떼이고, 폭행당하고 성추행 당하는 일까지 더해진다. 한 소장은 “한국의 외국인 고용 제도가 무척 후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021년 기준 취업자격을 갖고 있는 체류외국인은 40만6669명, 불법체류 외국인 규모는 40만명에 이른다. 2023년은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되는 해지만,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매년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 금액이 1000억원을 넘는다. 2020년엔 영하 20도의 한파 속에 난방도 안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잠자던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가 숨지기도 했다.

목사인 한 대표는 2007년 경기도 화성시에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설립한 뒤 무료 법률 상담을 시작했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센터를 거쳐간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한 <오랑캐 꽃이 핀다>(전 10권·박영률출판사)를 출간했다. 895편의 글 속에는 낯선 땅에 일하러 와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도 받지 못한 채 고통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있다.

한 대표가 말하는 ‘후진 한국의 외국인 고용제도’는 고용허가제를 말한다. 고용주에게 노동자를 고를 권리 등 모든 권한을 주는 제도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직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아 외국인을 노예 부리듯 이용하는 걸 가능케 한다. 이런 제도 아래서 기본적인 임금 체불부터 폭행, 산업재해가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여성 노동자들은 성추행을 비롯한 성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캄보디아 여성은 센터를 찾아와서 울었다. 농장 주인이 술만 마시면 ‘취권’ 흉내를 낸다며 “까오” 소리를 내며 끌어안는다는 것이다. 술에 깬 다음날엔 냉혹한 농장주가 되어 아파서 쉬게 해 달라고 호소해도 방문을 걸어잠그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퇴직금 떼어먹기는 기본이다. 퇴직금 자체를 떼어먹다가 퇴직 보험료를 노동자 임금에서 공제했다. 이젠 퇴직금은 놔두는 대신 그보다 더 많은 국민연금을 떼어먹는다. 국민연금은 노동부 감독관 관할도 아니니 감시망을 피하기 쉽다. 악덕 고용주들 사이에선 “이 돈 못 먹으면 병신이여!”라는 말이 나온다.

1980년 10대 한국 노동자들의 생활담과 일기를 모은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을 출판한 뒤 도망다녀야 했던 한 대표는 “30년 후에 착취와 고통이 만연한 노동 현장이 한국 땅에서 다시 되풀이되는 현실을 목격했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돈을 떼이고 폭행당하고 성추행당하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고 말한다. 제목의 오랑캐꽃은 제비꽃의 다른 이름이다. 가장 밑바닥에서 한국 경제를 떠받치지만 ‘오랑캐’처럼 멸시와 모욕을 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속내를 보면 제비꽃처럼 예쁘다는 의미에서다. 책엔 다양하면서도 작고 아름다운 제비꽃 만큼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통과 애환부터 소소한 삶의 모습까지가 생생하게 담겼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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