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진짜 위기, 사법 리스크 아닌 ‘총선 리스크’다

성한용 2023. 2. 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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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69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앞둔 이재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3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검찰의 영장 청구서 내용을 반박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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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백척간두에 섰습니다.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집니다.

대다수 언론은 부결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하지만 세상일은 알 수 없습니다. 표결은 무기명 투표로 합니다.

민주당 의원 중에 체포동의안에 찬성하는 이탈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 기회에 아예 이재명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 중에 체포동의안에 반대하는 이탈표가 나올 수 있습니다. 민주당을 이재명 방탄 프레임에 가둬두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표결 당일 이재명 의원의 신상 발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체포동의 요청 이유 설명도 민감하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절체절명의 승부처

어떻게 될까요? 가결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부결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궁금한 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미시적 분석과 전망을 잠시 미뤄두고 오늘은 이번 사건의 정치적, 역사적 의미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이번 검찰의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는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가 대선 패배자이기 때문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체로 자신과 겨뤘던 대선 후보, 전임 대통령, 야당 대표 등 정적들을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속성 때문일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2대,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했던 조봉암 당수를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시켰습니다. 사법살인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에서 겨뤘던 정치인 김대중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 의원직을 박탈했습니다.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무리하게 수사하다가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습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 성역 없는 수사,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정치 보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외적인 경우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정도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과 오히려 정치적 화해를 시도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2003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이 터졌지만, 당시 검찰은 이회창 후보를 입건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막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동시에 강도 높게 수사하고 있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법치주의’라고 해석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이른바 보수 세력의 ‘집단적 정치 보복’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검사 출신들이 현 정권의 핵심 요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를 수사하는 현 검찰은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과거 윤석열 검사의 부하들’입니다. 수사하는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항변하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타당한 해석입니다. 따라서 이재명 대표가 검찰의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를 야당 탄압이라고 규정하며 저항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서 이겼더라면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수사하거나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월1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둘째, 이재명 대표가 맞닥뜨린 위기는 사법 리스크가 아니라, 정치 리스크, 총선 리스크입니다.

이재명 대표에게 혐의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는 지나치게 가혹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시겠지만, 이재명 대표의 주요 혐의는 ‘부패’나 ‘범죄’라고 명확하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법리상 유죄인지 무죄인지 다툼의 여지가 꽤 있습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지방자치 권력을 사유화한 시정 농단 사건’ ‘내로남불, 아시타비의 전형’ 같은 주관적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 저도 오래전 법조를 취재한 적이 있지만 구속영장 청구서에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검사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배임은 무척 어려운 범죄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법원의 조정 권고를 받아들여 과세 처분 취소 항소심에서 소를 취하한 정연주 <한국방송>(KBS) 사장을 검찰이 배임 혐의로 기소한 일도 있습니다. 제삼자 뇌물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광역단체, 기초단체 공무원들이 지역 발전을 위해 민간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나라 주요 언론사 간부들도 회사에 광고, 협찬, 구독 실적을 올리기 위해 대기업, 공기업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재명 대표만 성남에프시(FC) 제삼자 뇌물로 처벌하는 것은 가혹하고 비현실적입니다. 모름지기 수사와 처벌은 공평해야 합니다. 더구나 이재명 대표가 재판에 회부되면 최종심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입니다. 2024년 4·10 총선 이전에 대법원 재판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결국 이재명 대표가 지금 처한 위기는 엄밀히 말해서 사법 리스크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법 리스크가 아니면 뭘까요? 이재명 대표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지금 무척 위중한 정치 리스크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2022년 3·9 대선에서 패배했습니다.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서 치른 6·1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했습니다. 2024년 4·10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만약 패배한다면 세차례의 전국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입니다. 세차례의 전국 선거에서 패배한 정치인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024년 4·10 총선은 이재명 대표에게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 되는 절체절명의 승부처인 셈입니다.

‘정권 심판론’으로 민주당 압승?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길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저는 민주당의 승리를 낙관할 수 없는 선거라고 생각합니다.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나는 민심입니다.

1주일마다 하는 한국갤럽 정당 지지도를 보면 지난해 3·9 대선 전후에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도가 엎치락뒤치락했습니다. 6·1 지방선거 전후에는 국민의힘이 앞섰습니다. 10~11월에는 민주당이 앞섰습니다.

이후 다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올해 2월 2주차부터는 국민의힘이 앞서고 있습니다. 24일 발표한 2월 4주차 조사 결과는 국민의힘 37%, 민주당 34%입니다. 1주일 전보다 좁혀졌지만 뒤집지는 못하고 있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민주당에서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여론조사에 많이 응답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항변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긍정 평가가 지금처럼 낮은데도 민주당 지지도가 국민의힘에 뒤지는 현상을 국민의힘 전당대회 효과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가 한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검찰은 앞으로도 몇차례 더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추가 기소를 시도할 것입니다. 재판이 시작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둘째, 총선의 역동성입니다. 총선은 대선보다 더 이변이 많습니다.

2012년 총선 전망은 안갯속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전환한 뒤 새누리당을 창당했습니다. 민주통합당은 정권 심판론을 믿었습니다. 새누리당이 이겼습니다.

2016년은 반대였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의 탈당으로 민주당이 위기에 처하자 문재인 대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영입해 전권을 줬습니다. 민주당은 이해찬·정청래 등 현역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극약 처방을 썼습니다. 새누리당에서는 ‘진박 감별사’가 공천을 했습니다. 민주당이 이겼습니다.

코로나19 와중에 치러진 2020년 총선에서 황교안 대표의 미래통합당은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지나치게 믿었습니다. 정부와 민주당을 색깔론으로 공격했습니다. 역풍이 불었고, 민주당이 압승했습니다.

2024년 4·10 총선은 어떻게 될까요? 1년 뒤의 선거를 함부로 예측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의 역동성을 우습게 보는 처사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민주당의 많은 의원이나 지지자들의 생각처럼 윤석열 정권 심판론이 작동해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확신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이재명의 선택은 어디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물러나야 할까요?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언젠가 이재명 대표 스스로 자신의 거취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재명 대표는 2006년 성남시장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민주당을 떠난 적이 없는 정치인입니다. 선당후사를 모를 리 없습니다.

민주당은 김대중의 정당도 아니었고, 노무현의 정당도 아니었고, 문재인의 정당도 아니었고, 이재명의 정당도 아닙니다. 민주당은 1955년 창당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와 싸웠던 관록의 정당입니다. 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에 성공하고,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했던 저력의 정당입니다. 그런 민주당의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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