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신 임명→사임까지 28시간…‘학폭 논란’ 인사검증 오작동

이제교 기자 2023. 2. 2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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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본 정순신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이 25일 오후 아들의 고교시절 ‘학폭 논란’으로 임기 시작 하루를 앞두고 전격 사임했다. 사진은 지난 24일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 국수본부장 임명 발표 직후 한 직원이 휴대전화 통화를 하면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정순신(57·사법연수원 27기)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이 대통령 임명 이후 사임하기까지 걸렸던 시간은 불과 28시간이었다. 아들 학폭 논란은 알려졌던 사안이었던 만큼 용산 대통령실 인사검증에 오작동이 있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루 만에 사임으로 가닥이 잡힌 것은 그나마 신속한 대응이지만 국민이 민감하게 여기는 학폭 논란을 인사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은 중대한 실수라는 지적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지난 24일 오전 11시쯤 정 변호사를 제2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특수통’ 검사 출신으로 사법연수원 4년 선배인 윤 대통령과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 등에서 함께 근무한 이력이 있다. 윤 대통령이 대검 중앙 수사2과장이던 2011년 대검 부대변인으로 활동했다. 2018년에는 서울중앙지검장과 인권감독관으로 같은 검찰청에 근무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물론 이같은 경력은 엘리트 검사들이 대부분 거치는 코스인 만큼 윤 대통령이 인연을 고려해 정 변호사를 국수본부장에 임명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는 검찰 안팎에서 수사능력 측면에서 검증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인천지검 특수부장을 지냈고 2016년 국정농단 의혹 수사에 참여해 검찰 내에서는 ‘특수통’으로 이름을 알렸다. 2020년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장을 끝으로 검찰에서 퇴직했다.

경찰청은 지난 17일 국수본부장 모집 지원자를 심사한 결과 지원자 3명 가운데 정 변호사를 최종 후보자로 낙점해 윤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국수본부장은 전국 18개 시도경찰청장과 경찰서장은 물론 3만 명이 넘는 전국 수사 경찰을 지휘, 경찰수사와 관련해서는 경찰청장보다 영향력이 더 크다. 이에 따라 경찰 내부에서는 경찰수사를 대표하는 직위가 된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찰 출신이 임명되면서 적지 않은 ‘물밑 반발’이 감지되는 기류도 엿보였다.

24일 저녁부터 신임 국수본부장 아들의 학폭 논란이 불거지면서 경찰 수사를 총지휘하는 국수본부장 직무수행에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2017년 한 유명 자립형 사립고에 다니던 정 변호사의 아들은 기숙사 같은 방에서 생활하던 동급생에게 8달 동안 언어폭력을 가해 이듬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재심과 재재심을 거쳐 전학 처분을 받았다. 정 변호사 측은 ‘전학 처분이 지나치다’며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학교의 조치가 부당하지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8년에 해당 사건은 방송에 보도되기도 했다. 인터넷 매체들은 판결문을 통해 당시 학폭 논란 상황을 상세하게 전했다. 피해 학생은 정신적 고통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정상적인 학업 생활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정 변호사는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25일 오후 3시쯤 입장문을 통해 “아들 문제로 국민들이 걱정하시는 상황이 생겼고 이러한 흠결을 가지고서는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국가수사본부장 지원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또 “아들 문제로 송구하고 피해자와 그 부모님께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한다”며 “가족 모두 두고두고 반성하면서 살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야당은 ‘인사참사’라면서 정부에 대한 맹공격에 나섰다.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국수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전 검사가 과거 아들의 학교폭력 행위를 옹호하며 소송전까지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학교폭력 소재를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의 현실판”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정순신 국수본부장 임명과 사의를 전후해 추가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학폭 사건’의 심각성을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다. 또 과거의 일이라는 이유로 사건을 시간 속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아직도 고통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모든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교 기자 jk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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