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하게 무너진 20대...접종 후 복합부작용에 꿈 상실
사회 첫발 열흘 만에 접종 후 2년간 4가지 중증 진단
각종 통증에 일상 회복 힘겨운데 미래 불안까지
아들 피해 구제 나선 아버지는 협의회 꾸려 전력
무너지는 일상 붙들어 잡으며 희망 찾겠다는 父子
2년 넘게 계속된 코로나19 백신 후유증 사태는 피해자와 가족의 몸과 마음만 무너뜨린 게 아니다. 부푼 꿈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 딛은 청년의 앞날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이를 바라보는 가족은 하루가 멀다고 노심초사하며 정부의 보여주기 식 대응에 속수무책으로 좌절한다.
“매일 찾아오는 통증보다 더 참기 힘든 건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에요.” 올해 백신 후유증 2년차에 29세가 된 김지용 씨는 지난 23일 취재진에게 백신 접종 이후 달라진 자신의 처지 이야기와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 첫 출근 열흘 만에 삶 송두리째 빼앗겨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김 씨는 2021년 3월 4일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접종한 날 밤 응급실로 실려갔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완치되지 않는 복합적인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지난 2년간 급성 횡단성 척수염과 밀러피셔 증후군, 길랑바레 증후군 등 신경계 질환을 앓았는데, 작년 늦가을에는 근무력증 진단까지 받았다.
김 씨는 매일 손발 떨림과 통증이 심해 숟가락질과 신발 착용도 스스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는다. 갑자기 근육 힘이 풀리다 보니 혼자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넘어져 무릎 머리 등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지팡이를 짚으면 좋겠는데, 손의 저림과 바늘로 찌른 뒤 헤집는 것 같은 통증이 극심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어떤 때는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 증세가 심해 밤에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가는 일도 있다고 한다.
병원 여러 곳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는 없었다. 김 씨 아버지 두경(55) 씨는 “아들이 온갖 통증에 잠도 못잘 정도로 고통을 겪었다. 어떻게 될까봐 겁났다. 그런데, 아이를 치료하던 상급병원에서는 더 상태가 심각한 이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급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이후 치료 병원을 옮겨 다녀야 했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코로나19 백신 후유증 장기 치료자들이 병원 측의 요구에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어려움 겪는다는 소문의 실체를 실제로 맞닥뜨린 것이다.
이런 비극은 김 씨에게서 일상과 장래를 빼앗아갔다. 김 씨는 2011년 2월 병원 작업치료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 열흘째 되는 날 백신을 접종하고 헤어나오기 힘든 늪에 빠졌다. 그는 현재 종잡을 수 없는 몸 상태 때문에 일상 생활이 쉽지 않다. 병원 치료가 없는 날에는 무기력감과 몸의 통증 탓에 방안에 누워있기 일쑤다. 몸이 불편하니까 누군가를 만나도 의기소침히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다. 병원은 김 씨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을 진단했다. 특히, 김 씨가 무기력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은 내다보기 어려운 캄캄한 앞날이다. 그는 “처음엔 또래 친구보다 일을 빨리 시작해 좋았다. 그러다가 이렇게 되니 억울하고 분했지만, 지금은 체념했다”며 “다른 친구들은 취직하거나 취직 준비 중인데, 이런 몸과 마음으로 지금까지 하던 것을 놓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극단적 선택도 떠올렸지만,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다잡아 본다. “어떻게든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게 주변 사람들에게 더 걱정을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몸을 치료하는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 아들 피해 구제하려다
아들의 발병 이후 두경 씨는 코로나19 백신 피해자들과 정부에 피해 인정과 대책을 요구하는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를 꾸렸다. 협의회장인 그는 자신의 아들을 비롯한 백신 피해자의 접종과 이상 반응 간 인과성 인정 확대와 관련 법 제도 개선을 위해 매일 사방팔방 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아들의 피해 구제와 권리 보호를 위해 시작한 일인데, 어느 덧 짊어져야 할 짐이 더 무거워졌다. 아들 치료비 마련 등을 위해 6000만 원을 융자했는데, 생업과 협의회 일을 병행하면서 가계를 꾸리는 게 쉽지 않다. 최근에는 그의 아내까지 아이 일에 충격을 받아서 지병인 허리 병이 악화됐다.
그래도 두경 씨는 아들 앞에서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아들도 힘을 얻어 쾌차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두경 씨는 “얼마 전 집 주방에서 아들이 손에 힘이 풀려 떨어뜨린 물병에 아내 발가락이 부딪혀 피가 철철 났다. 놀라서 아이와 아내 모두 울었다. 온 가족이 고통을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근 부자(父子)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질병관리청에서 보내온 백신 접종과 이상 반응 간 인과성 판정 내용이었다. 앞서 지용 씨가 병원으로부터 진단 받은 밀러피셔 증후군과 횡단성 척수염을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해달라고 질병청에 인과성 판정을 요청했는데, 질병청은 밀러피셔 증후군에 대해서만 ‘백신과 인과 관계를 인정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보상 대신 의료비 지원만 하겠다’는 판정 결과를 냈다. 이에 두경 씨는 질병청에 황단성 척수염에 대한 판정을 재차 요청했다. 마침 유럽 의학품안전청과 영국 당국, 백신안전성위원회가 횡단성 척수염을 AZ 부작용으로 인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질병청은 ‘세계보건기구(WHO)와 의약품규제기관국제연합(ICMRA)에서 발표한 공식적 입장이 없다’는 이유로 인과성 인정을 하지 않았다. 두경 씨는 “AZ가 만들어진 영국에서 횡단성 척수염을 부작용으로 인정하고 유럽 기관에서 비슷한 판단을 했으면 부작용 증명 사례가 되는 게 아니냐”며 “왜 우리나라는 WHO 입장만 판단 기준으로 삼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이어 “2021년 6월 질병청이 갑자기 인과관계 평가 시스템을 변경하면서 그전에 부작용으로 인정 받았던 혈소판 감소증 등 이상 반응이 다른 판정을 받기 시작했다. 정부가 애써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말이 나온 김에 두경 씨는 업무상 백신 접종자의 산업재해 처리 문제도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들 지용 씨가 백신 접종 당시 재직 중이었던 병원에서 직원에게 “미접종으로 코로나19에 감염돼 영업 정지되면 손실금의 4배를 청구하겠다”며 사실상 접종을 강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접종 이후 이상 반응에 대한 산재 처리를 근로복지공단에 요청하자 “인상반응 원인이 상세 불명이고, 질병청에서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산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두경 씨는 “인과관계 심사 결과 4-2, 5 판정을 받은 공무원과 경찰, 집배원이 잇따라 순직 처리됐다. 그런데 일반 국민의 산재 처리를 하는 공단은 질병청 피해보상전문위원회보다 더 난해한 심사를 해 백신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인다”고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아버지의 이런 노력에 대해 지용 씨는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무리하시는 게 마음이 쓰여서 그만 하시길 권했다”면서도 “이제는 아버지가 시름 속에서 희망을 안고 살아가시는 길이라고 여겨 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활동을 응원하려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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