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곤충들이다” [허연의 책과 지성]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2. 2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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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과 화학의 경계 뛰어넘은 美곤충학자 토머스 아이스너
아이스너
니체는 이런 말을 남겼다.

“곤충은 결코 나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살아야 한다는 본능 때문에 사람의 살을 찌르는 것이다.”

곤충들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곤충들은 먹이를 구하고, 집을 짓고, 짝짓기를 하는 모든 행위에 진심이다. 인간처럼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기 위해, 즐기기 위해 혹은 심심해서 그것을 행하는 경우는 없다.

미국 코넬대학 석좌교수 토머스 아이스너는 세계적인 곤충학자다. 그를 곤충의 세계로 이끈 건 ‘폭격수 딱정벌레’라는 이름을 가진 한 마리 곤충이었다.

1955년 20대 중반의 대학원생이던 아이스너는 바위 밑에 있던 작은 딱정벌레 한 마리를 잡았다. 딱정벌레를 손에 쥐는 순간 아이스너는 하마터면 깜짝 놀라 벌레를 놓칠 뻔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벌레의 꽁무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손가락이 뜨거워질 정도의 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곤충학과 화학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큰 감명을 받은 아이스너는 화학생태학(Chemical ecology)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뛰어들었다.

곤충은 포유류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에 비해 작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그저 ‘벌레’라는 말로 통칭한다. 그러나 곤충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놀라운 생명의 경이로 가득 차 있다.

아이스너는 자신이 쓰는 곤충에 관한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책은 발견의 즐거움에 관한 책입니다. 곤충에 관한 이야기이며 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동물을 탐구한 저의 회고록이기도 합니다.”

그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무척추동물에 대한 편견을 가슴 아파한다. 벌레는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생각도 없고, 인간에게 귀찮은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편견 말이다.

곤충은 실제로 치밀하게 구성돼 있는 지구생태계의 중요한 일원이다. 곤충은 단순히 식물을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다. 신세를 졌으면 다시 그 식물에 도움을 준다. 풀잠자리 유충인 리네아티코르니스는 플라타너스 이파리 뒷면에 나 있는 털을 뜯어서 짊어지고 다닌다. 플라타너스의 털을 이용해 자기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리네아티코르니스는 그 대가로 플라터너스를 공격하는 방패벌레를 잡아먹는다.

곤충의 세계는 경이 그 자체다.

나방의 일종인 셉텐트리오니스는 소금으로 암컷을 유혹한다. 그들이 주로 먹는 사시나무에는 나트륨이 부족하다. 수컷은 진흙이나 물을 통해 나트륨을 섭취해 암컷에게 나누어 준다. 수컷은 섭취한 나트륨 중 60%를 암컷에게 주고, 암컷은 다시 30%를 알에게 준다. 이처럼 곤충들의 생명 고리는 매우 치밀하게 조직되어 있다.

아이스너의 말을 다시 되새겨 보자.

“이 존재들의 놀라움은 작은 몸집이 아니라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함에 있다. 곤충에 비한다면 하늘의 별도 지극히 간단한 구조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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