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서방과 러시아 모두 패자, 승자는 중국

이규화 2023. 2. 24. 03: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美 1000억달러 이상 투입, 러도 국력 소모
中, 러 저렴해진 석유 천연가스 수입 늘려
노드 스트림 라인 폭발, 美의 독일 견제구
세계 절반이상, 美보다 中과 더많이 교역
미어샤이머 "美 최대 적은 러시아 아닌 中"

10년 후 우크라이나전쟁을 복기하면서 '그때 왜 중국이 아닌 러시아와 소모전을 벌이며 힘과 시간을 낭비했나' 후회할 것이라는 가정은 오늘날 미국인에겐 대수롭지 않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막상 닥치고 나면 세상이 달라져있음을 알게 될 것이고, 때는 이미 늦었을 수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국가로서 성장기(네이션빌딩 기간)를 예외로 치면, 지금까지 한 번도 2등이었던 적이 없다. 언제나 1등 최강국이었다.

그런 미국이 오늘로 꼭 1년째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이상한'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우크라전의 겉모습은 권위주의 독재자 푸틴이 평화롭게 사는 옛 형제를 무단 침략한 '조폭 행태 같은 것'이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우크라이나 내 민족주의 발흥으로 인한 민족간 갈등, 러시아에 대해 뿌리 깊게 각인된 서방(특히 영국과 미국)의 견제심리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미국이 적어도 10여년 이상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러시아를 자극하도록 작업을 했다는 주장도 전혀 허튼 소리는 아니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러시아를 아직도 공산주의국가로 오인한다. 러시아는 자유시장자본주의 국가이다. 체제상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크라전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과연 미국은 10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하며 전쟁을 계속 하도록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등 떠밀어도 되는 걸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이 우크라이나 국민 전체의 의사와 이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가. 작년 3월 잘 될 것 같던 휴전협상이 왜 갑자기 결렬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의아한 점은 미국이 중국과 디커플링을 추진하면서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해도 힘겨울 판에 왜 전선을 두 군데로 갈라 힘을 분산시키느냐는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세계 저명한 지정학자들은 "미국이 뻘짓을 하고 있다"는 결론에 내고 있다. 미국이 지금 힘을 투사할 데는 우크라전이 아니라 대중국 봉쇄라는 말이다.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어부지리 중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주석이 4월이나 5월 초에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전이 장기화하는 시점에서 중국이 분쟁 종식을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국제적 위상을 높여보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했다. 그러나 최근 무기 공급까지 논의됐던 점을 감안하면, 휴전이나 종전 종용은 대외용이고 양국간 상호이익 범위의 확대를 논할 가능성이 더 높다.

중국은 작년 개전 이래 러시아를 지지해왔고 그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들여오고 있다. 우크라전 이후 수입량은 50% 이상 늘었다. 중국은 심지어 러시아로부터 싸게 들여온 가스를 제3국에 되팔고 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서방의 대러시아 금수조치는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중국이 러시아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산 생활소비재들이 러시아 가게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이란 이름의 우크라이나 침공작전은 중국에게 중요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대만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무력 통일도 불사하겠다고 중국이 밝히고 있는 마당이어서 대만이 '미래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우크라전의 양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우크라전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철저히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우크라전은 러시아로 하여금 중국에 더 많이 의존하게 만들었고, 중국은 향후 감행할지 모르는 대만침공의 좋은 테스트베드를 제공받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러시아 국력 소모전 이면에는 독일 견제도 숨어있다

미국이 러시아와 대리전을 벌이는 것은 러시아 국력을 소모시키는 것이 일차적 이유지만, 원려(遠慮)도 작용한다. 독일과 러시아의 관계를 끊어 놓는 일이다. 독일은 지금까지 러시아의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와 자원을 바탕으로 갈수록 EU의 맹주가 돼왔다. 지정학자 조지 프리드먼은 "러시아와 유럽(독일)이 통합될 경우 인구, 기술 및 산업역량, 천연자원 보유량 등이 적어도 미국과 대등하거나 미국을 능가할 가능성이 크다"(21세기 지정학과 미국의 패권전략, 김앤김북스)는 분석을 내놨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양국의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수 백만 명의 사상자를 내며 혈투를 벌인 적국이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밀착하게 될 터였다. 독일과 러시아 연합이 미국의 강력한 경쟁상대로 부상하는 것이다.

현 세계 최강 패권국 미국은 잠재적 경쟁국까지 감시하고 견제한다. 우크라전이 진행되면서 그 결정적 단서가 포착됐다. 작년 9월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발트해 해저 가스파이프라인 노드 스트림(Nord Stream) 폭발 사건이 터졌다. 미국을 포함한 유럽 각국은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으나, 러시아는 펄쩍 뛰었다. 러시아가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을 할 리 없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소행이라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개최를 요구하고 공동 진상조사를 요구했으나 유럽과 미국은 못들은 척하며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심지어 최대 피해국인 독일까지 쉬쉬하는 중이다. 우크라전 대응에서 서방의 결속을 해치는 일은 피하자는 암묵적 동의가 있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미국만 목적을 관철한 셈이 됐다.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전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다. 프리드먼은 "러시아는 원자재 수출에 의존한 경제로서 심각한 인구 쇠퇴로 인해 자체 경제 성장을 이끌 힘이 부족하고 지리적 구조에서도 불리하다"고 단언한다.

◇중국이 러시아보다 미국 패권에 도전할 더 강력한 도전자

중국이 러시아보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더 강력한 경쟁자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래서 이 단순한 명제를 놔두고 미국이 엉뚱한 곳에서 힘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향후 10년이 미중 패권경쟁의 결정적 시기(위험 구간, Danger Zone)라는 주장을 내놓은 미국 기업연구소(AEI)의 지정학자 마이클 베클리와 할 브랜즈는 강력한 경쟁자를 상대할 때는 최우선이 전략적 목표를 확고히 하는 동시에 전술적 민첩성을 결합하는 일이라고 했다(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부키).

그리고 미국이 타깃팅해야 할 상대는 중국이라고 꼭 찍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시진핑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군대를 부리고 있다. 1978년부터 2018년까지 중국의 실질 국내총생산은 37배나 증가했다. 전 세계 국가의 절반 이상(여기에 한국도 포함)이 이미 미국보다 중국과 더 많은 교역을 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전 세계 최대의 해외차관 공여국이다. 미국의 적수가 될 만하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여태 중국의 화려한 성공을 가져온 지정학, 개혁개방정책의 결실, 인구배당효과, 부존자원이 모두 적대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 때문에 지금이 미국이 중국을 통제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두 학자는 전후 1947년 대공산권 장기 봉쇄전략을 수립한 조지 케넌의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기 전략에 능했던 케넌조차 역동적인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능란한 수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세력균형 전략에서 속도와 시기는 승기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다. 미국이 향후 10년간 중국의 국력신장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팍스아메리카나는 종언을 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중국 견제에 온힘을 결집할 얼마 남지 않은 기회의 한 순간이라는 설명이다.

두 연구원의 '피봇 중국' 전략은 철저히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이 반(反) 권위주의 대항을 명분으로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의 기치 아래 우크라전에 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점은 전쟁의 원인에서 미국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비판한 존 J.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의 공격적 현실주의 전략과 맥이 통한다(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 김앤김북스). 미어샤이머 교수는 "미국 최대의 적은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며, 중국을 억제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온 학자다. 우크라전을 빨리 매듭짓고(미어샤이머 교수는 중립화 방안 제시) 패권 확장에 나선 중국을 봉쇄하는데 집중하라는 경고다.

결론적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서로 소모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그리고 러시아는 모두 패자이고 진정한 승자는 중국이라는 것이다.이규화 논설실장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