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의지 불태웠던 KT 구현모, 중도하차 배경은
업계에선 정·관계 출신 지원자 선임 가능성 점치기도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구현모 KT 대표가 23일 연임 의지를 꺾은 배경에는 일단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 기류 및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국민연금이 KT처럼 지배 주주가 뚜렷하지 않고 소유가 분산된 기업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 즉 기관 투자자로서 수탁자 책임 강화를 언급하면서 차기 대표 선임 과정에서 점점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이 연임 포기 이유가 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다.
당초 구 대표는 지난해 11월 차기 대표 도전을 공식 선언하면서 재임 기간 공들인 '디지코'(DIGICO·디지털 플랫폼 기업) 사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특히 회사의 양적·질적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앞세워 연임 당위성을 강조해왔다. 실제 KT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구 대표 취임 직후인 2020년 8천782억원에서 지난해 1조1천681억원으로 24.8% 늘어났다. 콘텐츠 부문에서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성공을 거두는 등 유·무선 통신사라는 인식이 강했던 회사를 디지털 플랫폼·콘텐츠 기업으로 체질 개선하는 데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KT 이사회도 구 대표가 연임 도전을 공식화한 날 그를 차기 대표 선출을 위한 우선 심사 대상으로 선정했고, 이사회 내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3일 구 대표를 차기 대표로 적격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사이 KT의 '큰 손'인 국민연금이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구 대표를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게 변화했다. 국민연금은 주주명부 폐쇄일인 지난해 12월 27일 기준 KT 지분 10.13%를 보유한 1대 주주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8일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지배 주주가 뚜렷하지 않고 소유가 분산된 기업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를 두고 국민연금이 KT 정기 주주총회에서 구 대표 연임에 반대표를 던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게다가 공정거래위원회는 같은 달 12일 그룹 보안 계열사인 KT텔레캅에 대해 '일감 몰아주기' 의혹으로 서울 구로구 본사 현장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구 대표는 12월 13일 복수 후보에 대한 심사 가능성을 검토 요청했고, KT 이사회는 이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 끝에 심사를 다시 한 끝에 같은 달 28일 구 대표를 다시 차기 대표이사 단독 후보로 결정했다. 그러나 발표 약 3시간 만에 국민연금이 반대 입장을 담은 보도 자료를 내면서 구 대표는 또 '암초'를 만났다.
당시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라며 반대 입장을 재차 시사했다.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서 기업 대표 선임 등에 반대한 사례들은 있었지만, 소유 분산 기업의 대표 연임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KT 사례가 처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까지 스튜어드십 코드를 공개적으로 강조하고 나서면서 구 대표의 고심은 더 깊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연임을 노렸던 주요 금융지주 수장들이 줄줄이 교체된 분위기도 구 대표의 결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지난해 말 신한금융과 NH농협금융을 시작으로 BNK금융과 우리금융 등의 회장이 잇따라 물러나는 상황에서 구 대표 역시 계속 버티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이야기가 업계에선 나돈다.
결국 구 대표는 투명성과 공정성 제고를 위해 '공개 경쟁'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냈고, 이사회가 이를 수용해 선임 절차가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
공모 결과, 사외 인사 18명, 사내 인사 16명 등 총 34명이 지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는 구 대표를 포함해 자동으로 포함되는 사내 인사 외에도 정치권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
권은희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과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국민의힘 전신)이 지원했다.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등 관계 출신 인사들도 출사표를 던졌다.
업계에서는 구 대표가 연임을 포기하면서 정·관계 인사들의 선임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5대 금융지주 중 새 정부 들어 수장이 바뀐 신한금융과 NH농협금융, 우리금융 3곳 중 2곳이 전직 관료 출신으로 물갈이된 사례도 있다.
한편, 구 대표가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힌 23일 KT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55% 하락한 3만1천700원에 마감했다.
eng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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