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韓·美·日·대만 ‘칩4’ 본회의 개시… 삼성·SK하이닉스 공급망 대책 논의
공급망 안정화·다변화 주제
對中 수출 규제 등 민감 사안은 안 다뤄
한국 측, 반도체 공급망서 핵심인 국내 기업들 정세 전달
中 의존도 높은 국내 업계 촉각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 ‘칩4(한국·미국·일본·대만)’가 첫 본회의를 열고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로 중국에서 사업 중인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정부의 칩4 역할론이 강조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본회의에 앞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과 공급망 상황을 다각도로 토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 상견례 후 5개월 만에 본회의 돌입… 공급망 논의
23일 반도체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한국, 미국, 일본, 대만 정부의 국장급 실무자들이 화상으로 모여 본회의를 열었다. 지난해 9월 예비 회의에서 상견례를 한 이후 5개월 만에 본회의가 처음 가동된 것이다. 이번 본회의에서는 각국의 공유망 정세를 공유하고 점검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한국 측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세계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을 책임지고 있는 국내 핵심 기업들의 상황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회의에서는 미·중 갈등과 관련한 민감한 사안은 직접 다뤄지지 않았고, 공급망 안정화 및 다변화를 큰 주제로 두고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도 공급망 다변화를 메인 이슈로 두고, 향후 연구·개발 협력, 투자 인센티브 제공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은 4개 국가가 협력하면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반도체 공급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장비 분야에서 우위를 보이고,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분야, 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 일본은 소재·장비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 정부는 최대한 ‘로 키’(low key· 소극적 대응)를 유지하면서 칩4 회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전날 칩4에 대해 ‘동맹’이 아닌 ‘협의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우리도 반도체 공급망 안정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유관국과 협의해나가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대륙 한복판서 ‘낙동강 오리알’된 삼성·하이닉스
칩4가 공급망 논의에 돌입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해 10월 7일 미국이 발표한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규제에 따르면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16㎚ 이하 로직칩을 생산할 수 있는 장비와 기술을 중국에 들일 경우 미 상무부의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중국 반도체 공장 내 첨단 장비 업그레이드가 막혀 기업들은 중국에서 차세대 반도체를 만들 수 없게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 대만 TSMC는 1년간 규제 유예를 받았으나, 업계는 미국의 유예 조치가 길게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 정부의 제재 유예 조치가 극히 이례적인 일인 만큼 유예가 수년 이상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낸드플래시 전체 출하량 중 약 40%를 생산하고 있고, 쑤저우에서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도 D램 생산의 약 50%를 중국 우시 공장에서 만들고 있고, 지난해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플래시 공장도 중국 다롄에 있다.
현재 이들 공장은 공정 전환에 차질이 빚어져 일부 장비만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생산을 멈추고 매각이나 철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삼성전자 시안 공장은 낸드 128단에서 140단쯤까지 스핀오프 하는 정도로만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며 “SK하이닉스 다롄 공장은 돌릴수록 손해를 보는 수준이고, 선단 공정 적용이 수익성 확보에 핵심인 D램 우시 공장은 진퇴양난의 상태”라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 10년간 중국 투자가 제한되는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의 구체적인 지침이 조만간 나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미국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 신설을 준비하고 있다.
◇ 기업들도 물밑 협의 중… “칩4서 수출 통제 조치 목소리 내야”
국내 기업들은 중국 철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둔 채로 미국을 오가며 물밑 협의를 벌이고 있다. 정부도 측면 지원에 나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고위 임원들은 최근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면담을 갖고 가드레일 규제 예외 조치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주 중국 베이징에 방문해 장관급 인사와 반도체 사업을 논의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중국 공장에 문제가 생기는 건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에 해당한다”며 “중국 공장 운영이 어렵다고 가정하면 팹 매각, 장비 매각, 장비 한국 이동 등을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대중 규제가 가속화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도 존폐 위기에 처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2년 연간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수출액 1292억달러(약 170조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금액은 521억달러(약 67조원)로 40.3%에 달한다. 장비업체 관계자는 “현재까지 메인 시장인 40~90㎚ 반도체는 규제에 해당이 안 돼 당장 모든 수출문이 닫힌 것은 아니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공정 산업이 중국 시장에서 다 막혔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중소기업들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국내 반도체 우려 사항을 칩4 회의에서 논의하는 등 한국이 적극적으로 협의체를 활용해 실익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칩4에서 대만 대표부가 자국 이익이 최대한 반영되게끔 참여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한국도 구체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협의체의 목적인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서라도 한국은 대중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다”며 “협의체를 적극 활용해 국내 업계가 우려하는 가드레일이나 지난해 10월 조치 등에 대해서 협상을 벌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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