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밀양 출신 남자와 결혼 안돼"…부모님이 말린 사연
영화 '한공주', tvN '시그널'로도 알려져
가해자 중 1명, 불법고리사채업으로 징역형 '근황'
"언니가 결혼할 남자가 87년생에 밀양시 출신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이 절대 결혼은 안 된다고 하세요."
온라인에 게재된 글로 2004년 발생한 '밀양 성폭행 사건'이 재조명받고 있다.
지난 18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결혼할 남자가 87년생에 밀양시 출신이라는 이유로 결혼 반대'라는 제목으로 글이 게재됐다. 작성자는 "언니가 결혼하려고 하는데, 부모님이 언니와 결혼할 사람이 밀양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꺼림직하다고, 이 결혼 하지 말라고 난리인데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걸까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댓글로 2004년 경남 밀양시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행 사건이 언급됐다. 당시 가해자였던 밀양 지역 남고생 44명이 1988년부터 1986년생이라는 점, 밀양이라는 지역이 넓지 않다는 점에서 가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가족과 지인으로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모님의 선택을 지지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자신을 밀양 출신이라고 밝힌 몇몇은 "당시 지역사회와 경찰, 학교까지 덮어두려 했고, 입건된 가해자만 44명일 뿐 실제로는 그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당시 강간은 친고죄였지만 특수강간을 적용하면 친고죄가 아니었고 특수강간 혐의로 했으면 됐을 텐데 경찰에서 유야무야 넘어갔다"는 의견도 나왔다.
밀양 성폭행 사건은 밀양 고등학생 44명이 여중생 1명을 1년 동안 집단 성폭행한 범죄다. '밀양 여중생 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건의 내용이 충격적이었던 만큼 영화 '한공주'로 제작되고, tvN '시그널'의 에피소드로 등장하기도 했다.
가해자들은 7~10명씩 짝을 이뤄 피해 여중생을 여관, 놀이터, 자취방, 테니스장 등으로 끌고 다니며 유린했고, 성폭행 장면을 휴대 전화와 캠코더 등으로 촬영했다. 부모에게 발설하면 인터넷에 사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도 했다.
피해자는 1년 동안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견디다, 결국 이모와 엄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사건에 연루된 고등학생 44명 중 10명은 재판에 남겨졌고, 20명은 소년원으로 송치됐다. 나머지 14명은 공소권 없음으로 풀려났다. 또한 소년법 덕분에 44명 중 누구도 전과 기록이 남지 않았다.
지난 6일 방송된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범죄 잡학사전 알쓸범잡1'에 출연한 서혜진 변호사는 밀양 성폭행 사건에 대해 "놀랍게도 가해자 44명 중에 형사 처분받은 가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며 그 배경으로 어릴 때부터 가정 폭력을 일삼았던 법정 대리인 아버지의 합의를 언급했다.
서 변호사는 또 "피해자의 의사가 얼마나 반영됐을지도 의문이고, 합의금도 아버지와 그의 친척들이 나눠 썼다고 한다"고 전해 분노를 자아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2차 가해가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여중생과 가족들이 "피해자의 신원을 비공개로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피해자 보호는커녕 "내가 밀양이 고향인데, 밀양 물 다 흐려놓았다", "너희가 꼬리치며 좋아서 찾아간 것 아니냐" 등의 발언을 했다는 것.
당시 경찰의 비인권적인 수사가 문제 되면서 8명의 경찰관이 징계받았지만 1년 후에는 모두 복직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경찰의 모욕적인 수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2006년 6월 대법원을 통해 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가해자들의 근황에도 눈길이 쏠린다.
집단 성폭행 가해자를 옹호하는 글을 쓰며 2차 가해를 했던 A 씨는 2010년 경찰 채용 시험에 합격해 순경으로 임용됐고, 2014년 경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A 씨가 근무했던 경찰서 자유게시판에는 "A 경장을 해임하고, 의령경찰서장은 사임하라"는 글이 도배되기도 했다.
44명 가해자 중 한 명이었던 B 씨는 2018년 대부업법‧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위반과 공갈 혐의로 기소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B 씨는 정식 대부업자가 아닌데도 다른 일당들과 함께 채무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매일 찾아가 이자와 원금을 받아오는 수금책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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