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미지와의 조우…사우디아라비아 ③
(메디나·리야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출생지인 메카와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는 메디나 등 2개의 성지를 가진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문화의 원조'로 불린다.
최근 여성들의 운전을 허용하고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우디 특유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자신감은 외지인들을 따스하게 환대하는, 한국의 정(情)과 비슷한 '하파와'(Hafawa)라는 문화를 발달시켰다.
사우디의 최근 행보는 과거 아랍권이 융성할 때 보여줬던 개방성을 떠올린다.
대한민국 언론 최초로 성지 메디나를 둘러보다
이슬람에서는 메디나와 메카, 예루살렘을 3대 성지로 여긴다.
이슬람 신자는 건강과 재정 형편이 허락하는 한 평생 한 번은 성지순례(하지 또는 핫즈)에 참가해야 한다.
대부분 무슬림은 하지를 '평생소원'으로 삼고, 하지에 참가하기 위한 비용을 오랜 기간 모은다.
사우디에 있는 메카와 메디나는 이슬람 신자들에게만 개방됐으나 최근 메디나는 신자가 아니더라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그렇더라도 메디나 성지 내부 출입은 금지돼 있다.
팬데믹 이전에는 매년 250만 명이 넘는 성지순례객이 메카와 메디나로 모였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인해 사우디 왕명으로 이슬람 성지순례가 2년간 막히면서 정체가 되기 시작했다.
신자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의 정기 성지순례에 나서려면 4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정기 순례 대기 인원이 무려 141년 치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가고 싶어도 평생 한 번 갈까 말까 한 곳이 됐다는 이야기다.
메카와 메디나를 방문하는 정기 성지순례는 하루 다섯 차례 기도, 라마단 금식 등과 함께 무슬림의 5대 의무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 사우디가 메카와 메디나 문을 열면서 정책을 순화했다.
메디나의 경우 비신자라도 남성은 이깔(속모자), 여성은 머플러만 착용해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사우디관광청은 한국 언론을 대상으로 최초로 메디나를 공개했다.
첫 번째 방문한 쿠바 모스크의 경우 제지 없이 경내를 돌아볼 수 있었다.
회교도들이 즐비한 경내로 들어가 그들의 경배 모습을 본 뒤 신성한 물을 뜻하는 '잠잠 워터'를 한 잔 마셨다.
이 잠잠 워터는 메카 인근의 잠잠 우물에서 퍼 온 성수다.
저녁 무렵에는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는 그린 모스크를 방문했다.
'예언자의 모스크'(Prophet's Mosque)로 불리는 이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신자들로 넘쳐났다.
그들이 감동에 찬 얼굴로 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한 터키 가족으로부터 기념촬영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들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어줬다.
때마침 황혼이 물든 모스크를 찾은 가족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그들은 세상에 갓 나온 아이들이나 지을 법한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보며 행복해했다.
그런 경외감도 잠시…
경내를 어슬렁거리며 다니던 필자는 순찰하는 군인에게 붙잡혀 바깥으로 나와야만 했다.
너무 깊이 들어갔던 탓이었다.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는 따스한 정 '하파와'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우리의 정(情)과 비슷한 하파와 문화가 있다.
외부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응대하는 하파와 문화는 사우디 어디를 다니면서도 느낄 수 있다.
손님에게 아라비아 커피와 대추야자를 대접하며 적극적으로 환대하는 문화다.
수도 리야드의 한 가정을 방문했을 때였다.
주부 인플루언서 샤다(45) 씨 부부가 조용한 주택가의 2층집 대문을 열어 우리를 맞았다.
그들은 한국 언론에 기꺼이 자신의 집을 내줬다. 샤다 부부 집 거실은 2층이었다.
'미음'자 형태의 소파에 앉으니 환영의 뜻으로 아랍식 커피와 대추야자를 내준다.
샤다 부부는 이어 주방까지 공개한다.
그가 내놓은 전통 요리는 사우디 전통 요리 '캅사' 등 2가지다.
캅사는 쌀밥을 기본으로 당근과 고춧가루, 강황, 생강 등을 넣은 사우디식 잡탕밥이다.
의외로 사우디 전통음식은 우리 입맛에 맞았다.
샤다는 이날 얇은 누룽지 위에 소스를 부은 '쿠르산'도 함께 요리했다.
쿠르산은 특히 누룽지탕을 떠올릴 만큼 우리 입맛에도 맞았다.
배가 불러 더는 먹을 수 없는데도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린 음식 덕분에 무리해서 더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식사한 뒤에도 다양한 디저트와 아랍식 커피를 끊임없이 내왔다.
하파와 문화 진수 엿볼 수 있는 디리야
아랍식 하파와는 리야드 북서쪽 외곽에 위치한 디리야 살와 궁(Salwa Palace Diriyah)을 방문했을 때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디리야 토후국은 1774년에 와하브 운동으로 형성된 국가로, 1818년까지 존속했다.
사우디 왕국 발상지이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전체가 진흙 벽돌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이 유적은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이곳을 찾은 시간은 늦은 밤이었지만 많은 현지인이 북소리를 내며 여러 공연을 벌이고 있었다.
진흙으로 만든 벽 곳곳에는 미디어 파사드가 열리고 있다. 한마디로 축제 분위기다.
하파와의 느낌을 가장 잘 전달해 주는 것은 '하야쿠말라'라는 단어다.
골목골목마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하야쿠말라'를 외치며 관람객을 맞았다.
하야쿠말라는 '뵙고 싶었는데 정말 반가워요'라는 뜻이다.
오아시스 지역이었던 이곳은 실제로도 예전부터 여행자들과 무역상, 순례자 등에게 하파와 문화를 보여준 대표적 장소다.
마실 물과 음식을 제공하며 휴식을 취하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역할은 1400년대에 이미 활성화해 있었고, 이후 18세기에 들어서 왕궁이 들어섰다.
주목해야 할 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괄목할 만한 움직임이다.
이곳은 1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버려진 요새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우디 왕국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완벽한 테마파크 같은 모습으로 변모했다.
이재숙 사우디아라비아관광청 한국지사 소장은 "1년 전 이곳을 방문할 때만 해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면서 "1년 만에 몰라보게 변화한 모습에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사우디가 추진하고 있는 '사우디 비전 2030'이 그저 빈말이 아니었음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리야드 시내 한가운데 있는 알 마스막 궁전(Maskmak Fortress)은 사우디아라비아 제국 형성의 배경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이곳은 사우디 통일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 가운데 하나인 리야드 전투가 일어난 곳이다.
1865년 나즈드의 에미르 압둘라 빈 파이살에 의해 시작된 요새는 라시드 가문의 수장이었던 무함마드 빈 압둘라 알 라시드의 통치하에 완공됐다.
1902년 압둘 아지즈 국왕이 이곳을 라시드 가문으로부터 빼앗은 뒤 사우드(Saud)라는 이름으로 왕국을 통합, 오늘날 사우디의 기반을 마련했다.
리야드 킹덤타워센터
리야드 어디에서도 보이는 병따개 모양의 99층 높이의 킹덤타워센터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사우디로 이적한 포르투갈 축구스타 호날두의 숙소가 된 포시즌스 호텔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호날두가 내려다보는 것 같은 경치를 맛보려면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면 된다.
그야말로 리야드 전역의 모습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무척이나 인상 깊은 풍경이었다.
50여 년 전 우리 국민들이 이곳을 땀 흘려 지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다.
이 건물 77층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있는 모스크를 만날 수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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