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딸, 사위, 아들 모두 사라졌다…혼자 남은 스비틀라나의 소원[우크라이나 1년]
지난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체르니히우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체르니히우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30분 동안 세 번의 검문을 거쳐야했다. 도로를 지키던 군인들은 버스를 세우고 승객들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때 메고 있던 총신을 살짝 들어올린다. 총구가 아주 잠시 내 쪽을 겨냥했을 뿐인데도 심장이 조여드는 듯했다.
체르니히우는 키이우에서 북쪽으로 약 150㎞, 벨라루스 국경에서 남쪽으로 약 70㎞ 떨어져 있다. 지난해 2월 24일 벨라루스 국경을 넘어온 러시아군이 가장 먼저 도착한 도시 중 하나였다. 키이우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이 도시를 러시아군이 포위하면서 한 달 넘게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의 흔적은 1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체르니히우 진입로에서 실시된 세번째 검문을 통과하자 끊어진 다리가 나타났다. 러시아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이 파괴한 것이다. 버스는 끊어진 다리 아래 널빤지를 덧대 만든 부교 위로 지나갔다.
도심에서는 파괴된 채로 방치된 분홍색 건물이 보였다. 원래 6층 규모 호텔이었다는데 러시아군 미사일이 관통하면서 위의 3개층 한가운데가 무너져 내려 건물이 U자 모양이 됐다. 마치 거대 괴수에 뜯어먹힌 것 같았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학교는 유리창이 다 깨져 있었고, 무너져 내린 집터에는 흩어진 책과 옷가지들이 바닥에 쏟아져 진흙과 뒤엉켜 있었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10분 걸려 도착한 마을에서 스비틀라나 젤다크(45)를 만났다. 스비틀라나는 포위전이 벌어졌던 지난해 3월 남편 미하일로(42), 딸 폴리나(21), 예비사위 예우헨 코발렌코(33), 아들 렙(14), 할머니 할리나 페체르나(86)를 한꺼번에 잃었다.
스비틀라나가 혼자 살아남았던 2022년 3월 3일, 로이터통신은 “러시아군 미사일이 체르니히우의 학교와 민간 주택 2채를 강타해 최소 22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게는 당시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우크라이나 전쟁 기사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 순간 이후부터 스비틀라나의 삶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상실감으로 굴절됐다. 숫자가 말해줄 수 없는 스비틀라나의 지난 1년을 그의 말을 빌어 옮겨본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부터 우리 가족은 공습 우려 때문에 줄곧 지하실 창고에서 살았다.
하지만 천식과 먼지 알러지가 있는 내 아들은 지하실 생활을 오래할 수가 없었다. 딸도 더 이상 지하 창고에서 지내고 싶어하지 않았고, 할머니 역시 다리 수술을 받아 몸이 불편한 상태였다.
그래서 지난해 3월 3일 공습 사이렌이 울렸을 때, 우리는 지하실에 들어가는 대신 방바닥에 바짝 엎드려 누웠다. 전투기가 가까이 와 있는 듯 했지만, 우린 별다른 폭발음을 듣지 못했다. 첫번째 미사일이 학교를 강타했을 때도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바닥이 꺼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미사일이 우리 집 앞마당에 떨어진 것이었다. 곧바로 집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잔해 속에 갇힌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곳까지 와르르 무너져 깔릴까봐 몹시 무서웠다. 내 옆에는 남편이 쓰러져 있었다. 흔들어보니 그는 아주 힘겹게 무거운 숨을 내쉬고 있었다. 무언가가 그의 가슴을 강타한 것 같았다. 딸과 예비사위도 내 옆에 쓰러져 있었다. 아들과 할머니는 다른 방에 있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아들이 마지막으로 뱉은 말은 “엄마, 엄마” 단 두 마디였다고 한다.
다행히 휴대폰이 바로 내 옆에 있었다. 구급차를 불렀다. 이웃들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특수장비를 갖춘 구급대원들이 빠르게 도착했다. 그들은 남편을 흔들어보더니 “아직 살아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시 한 번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려던 순간, 아직 버티고 있던 건물의 나머지 부분들이 두 갈래로 쩍 갈라졌다. 아들 머리에 잔해가 떨어졌다. 안 돼! 안 돼! 내 아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해줘! 구급대원들도 필사적으로 아들을 살리려 했다. 그들은 아드레날린 주사를 놓으려 했지만 맞는 바늘이 없었다. 내 딸과 사위는 불행히도 이미 죽은 상태였다.
내 눈앞의 이 풍경은 뭐지? 내가 이미 겪었던 일을 다시 겪고 있는 것인가? 그때 이웃 주민이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서 뭐라뭐라 말을 했다.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쇼크 상태에 빠졌던 것 같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다들 죽은 상태였다. 내 이웃은 아무래도 내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딸이 죽기 전, 딸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나 피란 가야 하니, 말아야 하니.” 내 딸은 원래 다른 도시에서 약혼자와 함께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학위를 받고, 빛으로 가득 찬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걱정돼 체르니히우에 온 딸은 결국 여기서 다 함께 죽고 말았다. 죽은 내 딸이 이제 내가 뭘 해야 할지 알려줬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예비 사위의 형제가 살고 있는 서부 도시로 피란을 가기로 결심했다.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불행히도.
다음날 파란길에 오르기 전, 가족들의 장례를 치렀다. 모든 것이 진정된 후 장례를 치르고 싶었지만, 친구들은 시신 안치소도 곧 폭격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땅을 파서 우리 가족 다섯 명이 묻힐 공간과 십자가를 만들어줬다. 마지막 길을 떠나는 가족들을 한 명 한 명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남편은 평소에 “내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과 함께할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이 이런 식으로 실현돼 버렸단 걸 깨닫게 됐을 때의 내 심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지난해 5월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은 시부모님과 반려견 ‘선물이’랑 살고 있다. 아들과 생일이 같은 ‘선물이’는 내가 아들에게 준 생일 선물이었다.
사실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무서웠다. 살 집이 없어졌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돌아간 곳에 가족들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훨씬 더 무서웠다. 내 아이들도 없고, 남편도 없다.
여보, 당신 대체 어딨어?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데 받지 않는다. 아, 두 달 전에 모두 사라졌지. 악몽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 무너진 우리 집 잔해를 치우니 살아 있는 딸이 나타나는 꿈도 꾼 적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대체 나는 왜 살아남은 거야.
그저 이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란다. 나의 소원은 가족들 곁으로 가는 것이다. 가족들이 그들 곁으로 날 데려가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미사일이 비처럼 쏟아지는 순간에도 우리를 지키려 했던 군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선물이’를 데리고 종종 숲을 산책한다. 나는 종종 ‘선물이’에게 말을 건다. 꼭 우리 가족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새 식구가 생겼다. 두 달 전이었나. 그날도 여기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나에게 뛰어들어왔다. 까마귀 떼에 쫓기는 듯했다.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그 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암컷인지 수컷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됐다. 그 고양이는 임신한 상태였다. 난 이제 곧 많은 새끼 고양이들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불임수술은 시키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가 행복하려면 다른 고양이들이 있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취재 도움: 다큐앤드뉴스코리아>
체르니히우 | 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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