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紀의 전시 보려면, 손잡이 꽉 잡으세요

정상혁 기자 2023. 2.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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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장의 전시]
그림 보호용 펜스를 짚은 채 관람객들이 ‘여주인과 하녀’(1665~67)를 관람하고 있다. /Rijksmuseum

전시 개막과 동시에 입장권 45만장이 매진됐다. 유명 아이돌 가수 콘서트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미술관에서 벌어진 것이다. 동선 등을 고려해 미술관이 배정한 최대 수량이었지만, 흥분한 미술 애호가의 발길을 품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 10일 개막한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 회고전 얘기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너무도 유명한, 그러나 과작(寡作)의 화가답게, 현존하는 그림은 30여 점뿐. 이번 관람 열기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작품을 역대 최대인 28점이나 모은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림 앞에는 독특한 펜스가 설치돼 있다. 반호(半弧) 형태로 그림 앞 벽면을 둥글게 막는 성인 허리 높이의 안전 펜스다. 보통의 그림 전시에는 펜스가 없거나 있어도 눈에 띄지 않게 최소화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 출품작은 하나하나가 국보급인 데다 한곳에 모으기도 어려운 만큼 특별히 고민한 것이다. 그림 관람은 체력 소모가 큰 취미다. 벨벳으로 감싼 펜스를 관람객은 손으로 짚으며 더 오래 더 면밀히 그림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니 이 펜스는 ‘손잡이’인 셈이다.

‘우유 따르는 여인’ ‘레이스 짜는 여인’ 등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 걸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귀한 자리지만, 방심은 금물. 지난해 11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과격 환경 운동가의 오물(汚物) 테러 대상이 된 바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부 환경 단체가 “공공 훼손을 주요 시위 수단에서 잠정 배제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긴 했지만. 미술관은 “더 많은 관람객을 모실 방안을 고심 중”이라며 “추후 공지를 기다려 달라”고 했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은 “완벽에 가까운 전시”라며 찬사를 쏟아내는 중이다. 6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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