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습식저장조엔 사용후핵연료 빼곡…1호기 해체 차질 우려

신심범 기자 2023. 2. 22.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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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발전소 가보니

- 1호기 곳곳 ‘미사용 설비’ 팻말
- 핵연료 딴 곳 옮겨야 해체 착수
- 2호기 습식저장조는 벌집 형태
- 수용 공간 중 93.8% 포화 상태

- 건식시설 건립, 영구처분장 우려
- “최종시설 완공시기 법에 명시를”

지난 21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의 고리1발전소. 2017년 6월을 끝으로 영구정지한 고리 1호기와 계속운전(수명연장)이 추진 중인 고리 2호기가 있다. 두 곳 모두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발전소 내에 임시 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는 이미 포화 지경이지만, 이를 반출해 보관할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장은 아직 제대로 된 논의조차 시작되지 못했다. 이날 국제신문은 고리본부의 안내를 받아 2시간가량 두 발전소의 현황을 살펴봤다.

부산 기장군 고리1발전소 내 고리1호기와 2호기 전경. 1호기는 2017년 6월을 끝으로 영구정지했고, 2호기는 계속운전(수명연장)이 추진 중이다. 고리본부 제공


가동이 멈춘 고리 1호기 곳곳에 ‘영구정지 관련 미사용 설비’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지만 원전 작동음이 들려왔다. 2호기 터빈에서 발생한 소리다. 고리 1·2호기는 방호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이어져 있어 터빈이 작동하며 발생하는 소리가 문과 벽을 넘나들었다.

1호기는 현재 해체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를 치워야만 해체를 진행할 수 있다. 1호기에는 사용후핵연료 485다발(167.18t)이 저장돼 있다. 포화율 100%다. 포화율은 2호기 93.8%, 3호기 95.7%, 4호기 93.6%, 신고리1호기 69.3%, 신고리2호기 73.9% 수준이다. 고리본부 관계자는 “원전산업의 새 먹거리 육성 차원에서 국내 최초로 1호기 해체 등 관련 영역의 역량을 쌓으려 한다”며 “고리2호기 안전 운영을 전제로, 1호기를 단독 해체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방호문을 지나 2호기 터빈실로 들어서자 증기와 열로 인해 주변 온도가 달라졌다. 작동음이 비교적 크고 요란했던 탓에 옆 사람과 대화조차 쉽지 않았다. 터빈실을 비롯한 발전소 시설 곳곳을 관리하는 ‘주제어실’에서는 ‘원자로 출력 99.9%, 발전기 출력 70MWe’라는 표시 문구와 함께 조종수들이 수백 개 계기판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단지 내 30여 곳에서 방사선 누출 여부를 확인하는 감시장치에도 불이 들어와 있었다. “밥을 먹을 때든 근무교대를 할 때든 이곳을 비워두는 일은 없다. 늘 이곳을 지킨다”는 한 조종수의 말처럼, 사람의 기술과 손길 없이 관리될 수 없는 ‘핵발전소’임이 실감됐다.

고리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소 모습. 연합뉴스


마지막 방문지인 2호기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에 들어갈 땐 별도의 방호 장비를 갖춰야 했다. 원자로에서 실제 사용된 핵연료를 보관하는 곳이어서, 발전소 내에서도 출입이 가장 까다로웠다. 방사능 마크가 새겨진 갈색 방호복과 면장갑 면양말 안전모를 착용했다. 여기에 출입자의 피폭량을 측정하는 자동선량계(ADR)와 열형광선랑계(TLD)를 소지해야만 한다. 철저한 준비 끝에 들어간 저장조에는 짙은 청색의 수조가 들어서 있었다. 사용후핵연료의 열을 식혀 보관하는 ‘습식저장조’다. 가로 16.7m, 세로 7.9m, 깊이 12.7m 규모로, 수조 안에 사용후핵연료를 세워 꽂아두는 벌집 형태의 ‘저장랙’이 설치됐다. 관계자들은 손에 볼펜을 쥔 기자들을 보고 “이물질이 물 속에 들어가면 핵연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경계했다.

2호기 저장조는 사용후핵연료 920다발을 보관할 수 있다. 한 다발은 연료봉 256개를 한 묶음으로 하며, 한 번 원자로에 들어가면 5년가량 사용한다. 현재 수조 속에 가라앉은 사용후핵연료는 약 760다발이다. 보관 밀도를 높여주는 ‘조밀저장대’가 곧 설치될 예정이지만, 오는 2032년 11월에는 포화에 이른다.

전치홍 고리본부 PA추진팀 차장은 “고리2호기는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수 있는 저장랙 구멍이 41개밖에 남지 않아 포화율이 93.8%로 사실상 가득 찬 상태”라며 “현재 고리2·3·4호기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는 신고리1·2호기 저장소에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수조 포화 문제로 한수원은 원전 부지 내 별도의 시설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건식저장시설은 사용후폐연료를 밀봉용기에 저장해 공기로 냉각하는 방식이다. 고리3발전소 주차장 부지에 사용후핵연료 2880다발 규모의 시설을 2032년까지 건설하는 게 골자다. 이에 대해 부산지역 탈핵단체는 “영구처분장 부지조차 선정하지 못한 현 단계에서 건식저장시설을 짓는 건 사실상 이곳을 영구처분장으로 쓰겠다는 말이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수원은 국회에서 제정 중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방폐물)특별법’에 중간저장시설과 최종처분시설 완공연도가 명시되면 건식저장시설이 영구처분장이라는 우려는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처분하는 시설을 마련하는 법안인 특별법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체계, 부지선정 절차, 원전 내 저장시설 용량 등을 담고 있다.

고리본부 관계자는 “1호기 해체를 위해서라도 건식저장시설이 필요하다. 이곳에 보관 중인 사용후연료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향후 20년 동안 해체 작업에 착수할 수 없다”며 “시기를 못 박은 특별법을 통해 국민과 약속해야만 고리의 영구폐기장화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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