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자립'선언 4년 … 반도체 부품 日의존도 되레 커져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고재만 기자(ko.jaeman@mk.co.kr) 2023. 2. 22. 17: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자부품 핵심소재 수입비중
2019년 9.9%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1.8%까지 늘어나
공급망 위기에 자립화 난항
수출제한 직격탄 맞은 中企
비용 늘고 품질 떨어져 이중고

◆ 한일관계 급물살 ◆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문재인 정부는 '소(소재) 부(부품) 장(장비) 자립'을 통해 맞불을 놨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일본에 대한 중간 소재 의존도가 쉽게 개선되지 않으면서 부품 조달과 생산이 차질을 빚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소부장 자립'이 장기적으로 방향은 맞지만 단시일 내에 이뤄지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급망 안정화는 물론이고 기술격차를 줄이기 위한 전략 차원에서도 일본과의 관계 회복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전체 부품의 60%가량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했던 반도체 장비 중소기업 A사는 일본의 수출 제한으로 부품 조달이 30% 이상 차질을 빚었고 매출은 15% 급락했다고 밝혔다. A사 관계자는 "급한대로 미국, 유럽 등으로 수입처 다변화를 추진했지만 만만치 않았다"며 "제조 설비와 테스트 설비를 일본산 부품에 맞춰 가동하고 있었는데 다른 나라 부품으로 대체하려면 설비와 인건비 등 비용이 급증해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구매했던 소재·부품·장비의 대체품을 찾는 과정에서 추가 지출은 물론 불필요한 연구개발 과정 때문에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선박용 재료 제조기업 대표 B씨는 "유럽·미국 등에서 대체원료를 찾았지만 유럽의 경우 중국산 제품을 '표지갈이'한 사례가 많아 원자재의 균일한 품질을 담보할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는 "특히 미국은 관련 물질이 군사용으로 지정돼 있어 복잡한 수입절차를 따라야 하는 등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산화도 검토했지만 국내 수요만으로는 시장성이 적다는 판단으로, 가능한 한 일본산 재고를 확보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해 대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과거 문재인 정부가 '소부장 자립'을 선언한 지 3년차인 지난해 반도체 핵심부품의 일본 의존도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소부장 분야 전체 수입액 중 일본 수입액 비중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진 점 등을 근거로 소부장 자립에 성공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서는 핵심 부품에 대한 일본 의존도는 여전히 높고 대일 관계 악화가 대체물품 모색 등 불필요한 변동성을 초래해 경영환경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22일 소부장넷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부품 부문의 대일 수입액은 약 96억1110만달러로 집계되며 전체 전자부품 부문 수입액(816억6126만달러)의 11.8%를 차지했다. 이는 소부장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 해인 2018년(59억9651만달러)보다 절대적인 수입액과 전체 전자부품 부문 수입액 비중(9.6%) 모두 늘어난 수치다. 전자부품 부문은 메모리반도체 등 각종 반도체의 전자집적회로와 인쇄회로기판, 평판디스플레이, 다이오드·트랜지스터 등 유사 반도체소자를 포함하고 있는 영역으로, 한국의 주력 경쟁품목인 반도체 분야의 핵심부품을 포괄하고 있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핵심품목을 수급할 수 있는 통로를 다변화했다는 면에서 지난 3년여의 시간을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소모적인 면이 컸다"며 "일본과의 교류를 정상화하고 전략적 자율성(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과 전략적 불가결성을 꼽고 한국의 바게닝 파워를 높이는 방식으로 한국의 수출 경쟁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는 "핵심 소부장 분야에서의 국가적 역량은 당장 몇 년의 시간을 준다고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정부가 내재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99%의 내재화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선진국과의 기술교류를 기반으로 격차를 좁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소부장 자립 전략이 시간은 걸리더라도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소부장 부문 수입액(2614억6243만달러) 중 일본 수입액(394억2996만달러)이 약 15.1% 비율을 차지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부장 부문에서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그만큼 낮아졌다는 방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최근 소부장 부문 100대 핵심 품목의 대일 의존도가 수입액을 기준으로 2018년 32.6%에서 지난해 21.9%로 떨어졌다고 설명하면서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진한 기자 / 고재만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