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뿔났다…파업 카드 꺼내들며 반발 '두 가지 이유'
최근 이래저래 '뿔난' 의사단체가 '파업'이라는 극단적 카드까지 거론하면서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만약 파업을 실행할 경우 지난 2020년 6~9월 의사 총파업 사태 이후 2년여 만의 총파업이 될 전망이다. 의사단체의 심기를 건드린 안건은 크게 두 가지다. 바로 '간호법 제정안'과 '의사면허 취소법'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원인은 뭘까.
'간호법'이라는 틀을 만들어 간호사의 과중한 업무를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간호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사와 간호사 간의 불협화음은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의료법에서 간호사의 업무영역은 '의사의 지도 하의 진료의 보조'였다. 하지만 초기 간호법안에선 이를 '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의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정의했다. 이를 놓고 의사단체에선 "간호사의 독자적인 진료·개원이 가능해지는 것"이라며 반발했고 이 조항은 다시 '의사의 지도 하의 진료의 보조'로 수정됐다.
간호사의 업무영역에 대한 갈등은 또 불거졌다. 간호법안 총칙에 '지역사회'란 용어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총칙에선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 안전을 도모해 국민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이를 놓고 대한의사협회는 "지역사회에서 의사 없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법"이라 주장했고,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사에겐 의료기관 개설 권한이 없고 해당 조항은 다가올 초고령사회에 높아질 간호 수요에 대비하기 위한 법"이라고 맞받아쳤다.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의사-간호사 간 갈등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앞서 2004년 5월 '간호법 제정 백지화 요구' 성명을 냈고, 같은 해 8월 의협과 대한병원협회는 공동으로 간호협회의 단독 간호법안 제정 추진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입장을 담은 건의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양 협회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기보다는 각 의료단체가 추진하는 의료법 개정사항을 함께 검토해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의료법 개정으로 충분하며 단독 간호법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이 전에 없다가 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1914년부터 있던 '간호부 규칙'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설명에 따르면 과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의료인을 강제징용하기 위해 당시 모든 의료 관련 법안(의사 규칙, 의생 규칙, 치과의사 규칙, 간호부 규칙)을 통합해 1944년 '조선의료령'을 만들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51년에 국민의료법으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의료법의 뿌리가 됐다. 반면에 일제는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인 1948년, 오히려 자국에선 의료법과 함께 의사법, 치과의사법, 보건사·조산사·간호사법을 별도로 복원했다.
간협 관계자 A씨는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은 의사가 전체 5대 의료인의 절반을 차지하던 시절에 만들어져 '의사법'으로 간주할 정도였다. 당시 전국의 간호사는 고작 1700명으로 의사(5082명) 수의 절반도 안 됐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에선 간호사(50만 명)가 의사(14만 명)의 3.6배에 달할 정도로 의사 수를 앞질렀다. A씨는 "이 때문에 현행 의료법은 시대에 뒤떨어진 법으로 평가된다"며 "간호사의 전문성 함양을 위해 간호법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간호법안의 직회부 이후 다른 직역의 반발도 거세다. 간호사의 업무영역 가운데 의료법에 있던 '간호조무사가 수행하는 업무 보조에 대한 지도'가 간호법안에 그대로 들어가자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측은 "지역사회에서 간호조무사의 고용 불안을 유도할 수 있다"며 반기를 들었다. 노인요양시설·사회복지시설·어린이집에서 간호조무사를 '단독'으로 채용하기 어렵게 되면 간호사 위주로 채용해 간호조무사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란 주장에서다.
이에 대한 반대의 시선도 있다.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 강주성 대표활동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일자리를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오히려 주장과는 달리 간호법으로 인해 간호조무사들은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난다. 방문간호 등 재가 의료서비스의 확대는 간호사만이 아니라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의 일자리도 늘어나는 효과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임상병리사·응급구조사·방사선사·요양보호사 등 보건의료 직역도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로부터 업무 영역을 침해당할 것"이라며 간호법의 반대편에 섰다. 현재 간호법 제정에 봉기를 들고 뭉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임상병리사협회 등을 비롯해 13개 단체다. 그러나 대한간호협회를 비롯한 간호계에는 이에 대해 "간호법안은 현재 의료법에서 정하고 있는 간호사 업무 내용과 동일하기에 단독개원을 할 수도, 다른 직역의 업무를 침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해외에선 어떨까. 미국·영국·독일 등 90개가 넘는 나라에선 간호사에 관한 별도의 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OECD 가입국 38개 나라 가운데 33개국에 간호법이 마련돼 있다. 또 OECD에 가입한 아시아 국가 가운데선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간호법이 없다. A씨는 "나라에 간호법이 있다는 건 간호 업무의 전문성·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라며 "많은 선진국에서는 간호법 하에서 전문간호사·임상간호학박사 같은 제도를 통해 간호사의 독립과 전문성을 강화해왔지만, 우리나라에선 전문간호사가 있어도 관련 법·제도가 미비해 비활성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은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소위에 회부된 간호법 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으로 지정해 본회의에 직회부할 것을 의결했다. 20년 가까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간호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로 직행한 것이다.
현행 의료법(제65조)에 따르면 의사는 '의료 관련 범죄'에 한해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을 때만 면허가 취소된다. 의료와 무관한 영역에서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의사면허가 유지된다. 실제로 2011년 만삭의 아내를 살해한 전공의 B씨는 징역 20년 형을 받았지만 의사면허는 살아있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실에 따르면 2015~2019년 의사 범죄 현황에서 살인·강도·절도·폭력은 2867건, 성범죄는 613건으로 집계됐다.
범죄 의사 면허 취소법의 국회 본회의 직행 건에 대한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한방병원협회·대한치과병원협회는 지난 20일 공동 성명을 내고 "과도한 징벌적 규제 법안 심사에 대해 결사반대한다"며 "의료인이 의료와 관계된 범죄뿐 아니라 교통사고 등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은 지나치게 가혹하고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의료인은 국민의 건강을 다루는 직업적 특성상 민사상 손해배상 이외에도 업무상 과실치상죄로 인해 다양한 형사책임의 위험에 놓여있다"며 "그런데도 이런 직업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 본회의에 회부되는 것만으로도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직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범법 행위까지 광범위하게 의료직무 박탈의 근거로 삼는 건 과중한 규제이자 이중 처벌이며 모든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21일엔 서울시치과의사회에서 성명을 내며 이 법을 반대했다. 이 의사회 역시 "의료와 관련되지 않는 죄를 저질러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받더라도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는 건 의료인 개인의 생존권 및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과잉규제"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간호법에 대해서도 함께 입장을 냈다. 이 의사회는 "의료인 면허취소 강화법과 간호법을 같이 통과시키면 간호사는 면허취소 강화법 대상에서 제외돼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반영된 입법이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법사위에서 위헌의 우려가 있어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무시하고 복지위에서 본회의로 직회부한 법안 상정 또한 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입법 강행"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오는 26일 서울 여의도공원 앞 여의대로에서 '간호법과 범죄 의사 면허 취소법 강행 처리를 규탄한다'는 내용으로 삭발식을 포함한 총궐기대회 개최를 예고했다. 이 연대에는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 13개 단체, 400만 회원이 포함돼 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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