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빠른 등장으로 반도체는 ‘기성복’ 아닌 ‘맞춤복’ 시장 될 것”[현안 인터뷰]

김병채 기자 2023. 2. 22. 09:1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현안 인터뷰 - 미래 반도체 연구 김형준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구글·테슬라도 전용 칩 개발
‘칩 만들었으니 사가라’ 아닌
제품설계 뒤 제작 맡기는 시대
CPU보다 GPU가 더 유용해
3나노·2나노 등 숫자에 불과
미세공정 한계…후공정 중요
韓,D램·낸드플래시 대량생산
수요가 줄면 어려움 겪는 구조
인력보다 인재가 부족한 업계
반도체 계약학과 특효는 아냐
전략 없이 돈만 쓰는 건 낭비
MZ 세대 확실한 유인책 필요
김형준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이 지난 16일 서울 성북구 연구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챗GPT 시대 반도체 산업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지난해 11월 등장 이후 전 세계적인 폭풍을 몰고 오고 있는 챗GPT로 반도체 산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챗GPT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여기에는 많은 반도체가 투입된다. 챗GPT에 사용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제공한 미국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는 올해 주가가 폭등했고,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챗GPT 등장이 불황 탈출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형준(52)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챗GPT의 등장으로 반도체 시장은 ‘기성복 시장’이 아닌 ‘맞춤복 시장’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칩을 만드는 회사가 수요자에게 파는 것이 아니고, 제품 제조사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칩을 설계하고 반도체 회사에 제작을 맡긴다는 것이다. 이는 차세대반도체연구소가 연구해온 저전력 반도체 개발 등과도 맞닿아 있는 흐름이다. 지난 16일 서울 성북구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실에서 김 소장을 만나 챗GPT가 바꿀 반도체 시장, 한국 반도체가 나아갈 길,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차세대반도체연구소가 하는 일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

“차세대반도체연구소는 산업계가 10∼20년 후에 필요로 하는 기술을 선행 연구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현안이 중요하기 때문에 10년 이상 후에 벌어질 일을 내다보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에는 데이터센터 하나마다 원자력발전소 하나씩을 줘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막대한 전기를 소비하게 된다. 차세대반도체연구소에서는 저전력으로 사람과 비슷한 사고를 할 수 있는 하드웨어 등을 연구해 왔다.”

―선행연구를 해 왔는데 챗GPT 열풍이 지금쯤 올 거라고 예상했나.

“챗GPT가 이렇게 빨리 등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우리 생활에 AI가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사람이 AI 기기를 몸에 지니고 건강진단을 하는 시대도 올 것이다. 데이터센터도 특정 회사에서 멀리 지은 장소에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실생활 공간에서 운영돼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저전력 반도체가 더 필요하다.”

-챗GPT는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가 아닌 GPU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이가 무엇인가.

“고속도로로 따지면 CPU는 시속 100㎞로 다닐 수 있는 하이패스 차선을 하나만 뚫어놓은 것이고, GPU는 시속 30㎞밖에 안 되지만 차선 여러 개를 개설해 놓은 것이다. 기술적으로 봤을 때 AI를 운영하기에는 GPU가 더 낫다고 평가한다.”

―그러면 앞으로 GPU의 시대가 열리는 것인가.

“GPU도 한계가 있다. 구글은 자체 개발한 AI 전문 칩 TPU(Tensor Processing Units)를 만들었다. 테슬라도 자사 차에 사용할 전용 칩을 만든다. 앞으로는 자사 전용 칩을 만들어 설계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AI 회사들이 전용 칩을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들이 좋은 칩을 만들었다고 정보기술(IT) 회사에 사 가라고 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만들었으니 반도체 회사에 찍어달라고 하는 시대로 바뀔 것이다. 인력의 흐름도 그런 식으로 바뀌고 있다. 테슬라는 자동차 회사지만, 애플에서 컴퓨터칩 설계하던 사람을 데려갔다.”

―국내에서도 많은 회사가 뛰어들어 ‘한국형 챗GPT’를 만들겠다고 한다. 기술 수준은 어떻게 평가하나.

“그거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처음 만든 사람이 표준을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누가 먼저 사고를 치고, 세상에 먼저 내놓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챗GPT가 등장하면서 한국 반도체 회사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는 평가가 있다.

“챗GPT를 돌리려면 서버에 들어가는 고성능 메모리가 필요하다. 지금 글로벌 침체로 시황이 안 좋은데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수요가 많아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도 많아져야 한다. 당연히 메모리 반도체는 더 많이 팔릴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한국 주요 반도체 회사들이 메모리 쪽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한국 반도체가 일본을 제치고 지금 메모리 시장에서 1위를 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메모리 시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제품은 D램과 낸드 플래시 등 2개밖에 없다. 품종이 다양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요가 줄어들면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생태계가 됐다.”

―결국 시스템 반도체를 키워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회사들이 잘해줘야 그것을 생산하는 파운드리가 클 수 있다. 한국에서도 팹리스가 아주 많은 시절이 있었지만 생태계가 갖춰지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을 하지만 국내 팹리스 회사들의 제품을 잘 생산해 주지 않았다. 그러면 국내 업체들은 대만 TSMC에 위탁 생산을 하게 된다. TSMC는 이러한 제품도 다 받아준다. 생태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다.”

―삼성전자와 TSMC 또는 한국과 대만을 많이 비교하게 되는데, 메모리 부분을 제외하면 확실히 대만이 우위인가.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대만도 훌륭하고, 중국도 우리가 무시하지만 잘하고 있다. 중국은 내수시장도 크고 정부가 투자도 엄청나게 하고 있다.”

―TSMC는 오로지 생산만 하고 설계를 하지 않아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점을 많이 내세운다. 그것이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고 보나.

“예전에는 애플이 아이폰에 들어갈 칩을 갤럭시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에 맡기면 기술이 유출된다는 우려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본다. 애플이 삼성전자에 칩 생산을 맡긴 적도 있고, 정보 유출과 관련된 장치들은 다 마련돼 있을 것이다. 지금 고객들이 TSMC를 더 많이 찾는 것은 기술력의 차이라고 봐야 한다.”

―어떤 기술력의 차이가 있나.

“반도체 미세공정은 이제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했다. 3나노(나노는 10억 분의 1m를 의미), 2나노 공정 등 얘기가 나오지만 숫자는 이제 상징적인 의미고, 사실상 끝까지 간 것이다. 앞으로 더 작게 만드는 것보다 첨단 패키징(반도체를 전자기기에 맞는 형태로 제작하는 공정으로, 전기 신호가 흐르는 통로를 만들고 외형을 가공해 제품화하는 필수 단계), 즉 후공정 쪽이 중요해졌다. TSMC는 후공정에서 소형화 못지않은 성능 개선을 이뤘고, 거기에서 차이가 생겼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나노 세계 최초 양산과 함께 GAA(Gate-All-Around) 공정을 선보였다. 게임체인저가 될 수는 없나.

“삼성전자가 그 기술을 어쩌면 조금 빨리 내놨을지도 모르겠다. 큰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 수율이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만약 안정적 수율을 확보한다면 TSMC와 격차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반도체 계약학과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는 어떻게 보나.

“반도체 업계는 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고 인재가 부족하다.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는 것이다. 저는 반도체 계약학과는 좋은 처방은 아니라고 본다. 생태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인력만 양성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한국도 팹리스가 많았을 때 생태계가 없다 보니 많은 인력이 중국으로 갔다.”

―앞으로 반도체 인재 육성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10년 대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예컨대 우리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가 약한데 더 세부적으로 봐야 한다. 인력 구조 등을 고려해 일부 영역에서라도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 없이 돈만 투자하는 것은 세금 낭비가 될 수도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의 문화를 많이 고려해야 한다. 미국 회사들은 인재 유치를 위해 과감한 베팅을 한다. 확실한 유인책을 줄 수 있어야 한다.”

■ 김형준 소장은…

美서 박사 취득 뒤 2006년 KIST 합류… ‘저전력 AI 반도체’ 개발 매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및 새로운 컴퓨팅에 요구되는 반도체 소재, 소자, 공정, 설계의 핵심 기술을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차세대반도체연구소는 저전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AI 반도체 등을 꾸준하게 연구해 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초거대 AI 시대가 되면서 전력을 덜 소비하고, 크기도 작은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챗GPT만 해도 월 300만 달러(약 38억 원) 수준의 운영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초전력 AI가 동반돼야만 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차세대반도체연구소 산하 인간뇌융합과학단은 지난해 국내 최초로 인간 두뇌 신경망의 동작 원리를 모사한 ‘뉴로모픽 반도체’ 시스템과 프로세서를 개발해 주목받았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두뇌의 동작 원리와 구조를 모사해 설계하는 스파이킹 신경망 구조가 적용된 저전력 AI 반도체 기술이다. 실용화 단계로 나아가면 저전력으로 드론, 자율 주행차 및 서비스 로봇 등에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차세대반도체연구소는 2015년에 만들어졌다. KIST는 주요 분야의 여러 연구단을 융합해 여러 개의 연구소를 만들었다. 기술이 점점 고도화되면서 다양한 전공자들의 협업 필요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 차세대반도체연구소 외에도 뇌과학연구소, AI·로봇연구소, 기후·환경연구소 등이 있다. 차세대반도체연구소 산하에는 스핀융합연구단, 광전소재연구단, 양자정보연구단, 인간뇌융합연구단 등이 있다.

200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재료공학과 박사 학위를 받은 김형준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박사 후 과정을 거쳐 2006년 KIST 스핀융합연구단 책임연구원으로 합류했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나노-정보 융합 교수, 나노기술연구협의회 학술위원회 운영위원,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 나노·소재 전문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2018년 스핀융합연구단장에 이어 2020년부터는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성균관대 금속공학과 학·석사 △UCLA 재료공학과 박사·전자공학과 박사 후 과정 △KIST 스핀융합연구단 책임연구원·단장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