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대신 '불법파업조장법' 경총 요구 그대로 따른 매일경제

박재령 기자 2023. 2. 2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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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기사, 사설 가리지 않고 재계 요구대로 '불법파업조장법'
대다수 언론은 '노란봉투법' 사용… "기계적 중립마저 어겼다"
용어뿐 아니라 기사 내용도 편향적, "법 계기·취지 다 빠져"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이름이 사라지고 '불법파업조장법', '원청-하청노조 직교섭' 등의 명칭이 기사 제목에 드러나고 있다. 여론전에 나선 재계의 요구가 사설·칼럼이 아닌 일반기사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습이다.

▲ 16일자 매일경제 1면 기사.
▲ 16일자 매일경제 사설.

매일경제는 최근 지면 제목에 '노란봉투법' 명칭을 빼고 있다. 매일경제는 지난 16일 1면 기사 <'파업조장법' 결국 강행, 노조 편승 巨野의 폭주>에 이어 16일 사설에선 '원청-하청 노조 직교섭 법'이라고 불렀다. 18일 5면 제목은 <회의시작 18분만에… 野 '불법파업조장법' 일사천리>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해 10월부터 토론회 등 대내외 행사에 '불법파업조장법'을 사용하며 용어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법안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인데, 이 우려가 매일경제 지면에 그대로 반영되는 모양새다. 매일경제는 개인 시각이 담기는 오피니언뿐 아니라 일반기사에서도 재계가 규정한 용어를 따르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2014년 당시 쌍용차 노조가 불법파업으로 46억8000만 원의 배상 판결을 받자 한 시민이 노란색 봉투에 성금을 넣어 전달하며 응원한 것에서 유래했다.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기업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노동자를 향한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다는 법안 취지와, 대중 통용성을 고려해 모든 언론이 대체로 제목에 노란봉투법을 사용하고 있다.

▲ 21일 한국경제 사설.
▲ 16일자 중앙일보 6면 기사.

한국경제는 그간 노란봉투법을 계속 쓰다 최근 제목에 '파업조장법'을 달았다. 똑같이 비판적 스탠스를 취하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노란봉투법을 아직 유지한다. 한국경제는 21일 사설 <절규로 치닫는 경영계의 호소… 끝내 파업조장법 밀어붙일 건가>을 냈고 중앙일보는 16일 기사 <재계 “노란봉투법, 무제한 파업법” 노동계 “적법파업 확대”>에서 '파업 만능주의를 조장하는 무제한 파업법'이라는 재계 요구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노란봉투법은 현재 여당과 야당, 재계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사안이다. 법안에 찬성하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0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노란봉투법을 '합법파업보장법'이라고 불렀다. 이 대표는 해당 법안을 “헌법이 정한 노동권을 보장하고 노사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최소한의 균형추”라 했고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는 21일 환노위 의사진행발언에서 “불법파업조장법이 아닌 산업평화보장법이다. 하청노동자들에게도 노동3권 누릴 수 있게 하는 진전된 법안에 한발 다가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 2월11일부터 17일까지 신문지면 노란봉투법 보도유형 분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2월11일부터 17일까지 신문지면 일반기사 노란봉투법 보도태도 비율.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용어뿐 아니라 기사 내용에서도 매일경제는 편향된 모습을 보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따르면, 지난 11일부터 17일까지 사설·칼럼이 아닌 일반기사를 모니터링(지면 기준)해 긍정, 중립, 부정으로 나눈 결과, 매일경제는 4건의 기사 모두 노란봉투법에 부정적이었다. 한국경제는 8건의 일반기사 중 75%가 부정, 조선일보는 87.5%가 부정적인 기사였다.

노란봉투법 보도분석을 진행한 박진솔 민언련 미디어감시팀 활동가는 21일 통화에서 “사설이나 칼럼은 주관이 드러나도 된다고 합의를 본 부분이지만 일반기사는 일단 중립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첨예하게 양쪽이 다투고 있는 법안에 대해 경총 의견을 그대로 받아쓴 건 심하게 중립을 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진솔 활동가는 “이번 노란봉투법 국면에서 사설과 칼럼이 그렇게 많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일반기사를 이런 식으로 내면서 주관을 많이 드러냈다. 기사 내용에서도 재계 시각을 일방적으로 전하고 기사 내 법안에 대해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게으른 태도라고 할 수도 있고, 재계 시각을 단순반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법을 만들게 된 계기·취지가 다 빠져 있어 해당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은 노란봉투법이 이견의 여지 없이 불법파업 조장하는 법이구나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 16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제지엔 잘 보이지 않지만, '불법파업조장'이란 주장엔 빠진 맥락이 많다. 해당 안은 '사용자' 개념과 '노동쟁의' 개념을 확대해 합법파업 범위를 넓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은 사용자 개념을 계약 당사자가 아닌 원청으로 넓혔는데, 최근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원청의 사용자성과 하청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추세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도 원청을 상대로한 하청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언급한다. 한겨레는 18일 사설에서 “불법파업에 대한 손배소 자체를 금지하자는 게 아님에도 '불법파업면책법' '불법파업조장법'이라는 왜곡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지금까지 사용자의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에 현행법이 파업 자체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로 촉발된 파업에서도 파업 봉쇄를 위한 '손배폭탄'은 이어졌고, 실제로 청구된 금액을 수습하지 못해 목숨을 끊는 이들이 생겼다.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9년에서 2022년 8월 사이 151건(2752억 원)의 손배 소송이 제기됐고, 30건(246억 원)의 가압류가 신청됐다. 지난해 7월에도 대우조선해양이 하청 노동자들에게 470억 원의 손배를 제기한 바 있다.

21일 노란봉투법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될 예정이다.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차지한 법사위에서 난항을 겪더라도 민주당은 해당 법안을 본회의 직회부할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법안폐기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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