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사거리 두 곳 지켜보니 보행자 신호 녹색 외엔 위반 다수 경찰, 4월22일부터 단속 들어가 운전자들 “정확한 규정 몰라 혼란”
#.“뛰자!” 21일 낮 12시10분쯤 서울 종로구 이화사거리. 인근 건물에서 빠져나온 직장인 4명이 보행자 신호등의 녹색 신호가 깜빡이는 모습을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약 6초 후 보행자 신호가 적색으로 바뀌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횡단보도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기다리던 차량 3대는 이들을 피해 주행하기 시작했다. 보행자 신호가 녹색이었을 때는 멈춰 있었지만,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지는 않았다.
지난 2022년 7월 12일부터 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른 우회전 차량 일시정지가 의무화된 가운데 21일 서울 종로구 이화사거리에서 차량들이 우회전 도중 정차해 있다. 최상수 기자
우회전 차량의 ‘일시 정지’ 규정이 담긴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일선 도로에서는 여전히 위험천만한 상황이 여전하다. 이달 들어 우회전하던 차량이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등 운전자들이 경각심을 갖고 관련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세계일보 취재진이 서울 종로구에 있는 사거리 두 곳에서 1시간씩 우회전 차량을 지켜본 결과 보행자 신호등이 녹색으로 전환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규정을 제대로 지키는 차량은 단 1대도 없었다. 대학로 인근 이화사거리에서는 우회전 차량 236대 중 209대가 전방 차량신호가 적색임에도 일시 정지하지 않았고, 27대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상황에서 주행을 시작했다. 조계사 앞 사거리에서는 이 같은 경우가 각각 102건, 16건 있었다.
이는 모두 현행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지난달 22일부터 적용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우회전 차량은 전방 차량 신호등이 적색일 경우 반드시 우회전해 마주치는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하고,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을 때 우회전해야 한다.
앞서 지난해 7월22일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거나, 건너려고 하는 경우에만 일시 정지하게 해 보행자가 없는 경우에는 우회전 차량이 멈추지 않고 주행할 수 있었다. 반면 이번 시행규칙은 보행자 유무와 관계없이 우회전하려는 모든 차량을 일시 정지하게 했다. 이를 어기면 도로교통법에 따라 20만원 이하 벌금이나 30일 미만 구류에 처한다. 경찰은 3개월의 계도기간을 거쳐 오는 4월22일부터 단속을 시작할 예정이다.
경찰은 개정법에 이어 이번 시행규칙까지 시행되면 운전자들이 안전운전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이후 우회전 차량 사망자 수가 21.7% 감소한 바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7월12일부터 12월31일까지 발생한 우회전 차량 교통사고는 8684건, 사망자 수는 54명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사고 수(8601건)는 1.0%(83건) 늘었지만, 사망자는 21.7%(15명) 크게 줄었다. 경찰청 교통안전국 관계자는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교통사고가 전년 대비 증가했는데, 우회전 차량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줄었다”면서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으로 운전자들이 주의를 기울인 영향”이라고 평가했다.
향후 관건은 운전자들이 관련 규정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정확한 규정을 알지 못해 혼란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날 이화사거리에서는 경찰 순찰차 조차도 일시 정지하지 않은 채 우회전하기도 했다. 시내버스 3대가 줄줄이 차량을 멈추지 않은 채 우회전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운전경력 30년 차인 최모(58)씨는 “시민들에게 노출이 많은 TV광고를 통해 관련 법을 홍보해주거나 명확한 신호체계가 있는 ‘우회전 신호등’을 설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