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반집승의 품격
배우 유아인이 살아 있는 '바둑의 신' 이창호를 소환했다. 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그가 2분기 개봉되는 넷플릭스 영화 '승부'에서 이창호 역을 맡은 것이 빌미가 됐다. '승부'는 사제지간인 조훈현과 이창호의 대결을 다룬 영화다. 바둑 팬들은 이창호의 명예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유아인의 결백이 입증될 때까지 개봉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까지 냈다. 바둑계에서 이창호는 그런 존재다.
그는 1990년대 초 혜성처럼 등장해 10년 넘게 세계 바둑을 평정했다. '돌부처(石佛)'라는 별명처럼 그의 기풍은 깊고 고요했다. '끝내기'의 지평을 넓힌 그의 '반집승'은 바둑의 역사를 다시 썼다.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반집승은 '운'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수읽기와 전투력을 강조했던 당시 기풍과는 전혀 달랐다. 마지막 수까지 계산해야 하는 초인적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승부였다. 이런 반집승을 고집하는 제자에게 스승 조훈현은 이유를 물었다. 이창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큰 집 승부를 하려면 대마를 잡아야 하는데 그러다가 상대에게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대마를 살려주는 대신 다른 곳에서 차근차근 대가를 치르게 하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반집 승부는 지는 쪽에서는 아깝게 패했다는 아쉬움과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를 무참히 무너뜨리는 싸움과는 품격이 다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과 승자와 패자 모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창호는 반집승의 정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순류에 역류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거기에 휘말리면 나를 잃고 상대의 흐름에 이끌려 순식간에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 수단이자 공격 수단이다." 상대를 죽이려고 역류를 일삼는 정치인들이 한 번쯤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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