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수지 흑자 전환, 반도체·중국에 달렸다"

세종=유선일 기자, 박광범 기자 2023. 2. 2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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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추경호 부총리와 박진 외교부 장관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3.02.21.

이달 1~20일 무역수지가 60억달러 적자를 보이며 '무역적자 1년'이 사실상 현실화됐다. 외환위기 이후 26년 만의 최장기간 적자다.

정부는 그간의 적자 원인은 주로 '에너지 수입가격 상승'이었는데 점차 '중국·반도체 경기 불황'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만큼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거는 기대도 크다.

그러나 올해 중국 경제 회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중국 리오프닝에 따른 효과가 미미할 수 있고 글로벌 물가를 자극해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릴 우려도 제기된다.
"무역적자 1년" 원인은 에너지·반도체·중국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무역수지 적자는 비교적 낯선 단어다.

2000년대 들어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은 두 해에 불과하다. 첫 적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132억달러)이었다. 코로나19(COVID-19)가 창궐한 2020년과 2021년에도 흑자였던 무역수지는 2022년 -472억달러로 14년 만에 다시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수출과 수입이 모두 늘었다. 무역수지가 적자를 보인 것은 수출은 미미하게 늘어난 반면 수입은 급등했기 때문이다.

수출이 꺾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이지만 이미 중순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전년동월대비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5월 21.4%에서 6월 5.3%로 급격히 낮아졌고 10월 감소(-5.8%)로 돌아섰다. 이후 11월(-14.1%), 12월( -9.6%)에서 올해 1월(-16.6%)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감소폭도 커졌다. 2월 1~20일 기준 수출도 -2.3%를 기록해 5개월 연속 마이너스가 유력하다.

반면 수입은 같은 기간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부터 올해 1월까지 수입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12월(-2.5%), 올해 1월(-2.6%) 등 두 달뿐이다. 2월 1~20일에는 수입이 9.3% 늘어 이달 증가 전환이 예상된다.

정부는 무역수지 적자 3대 요인으로 △에너지 수입액 증가 △반도체 경기 불황 △중국 경기 둔화를 꼽는다.

올해 1월 무역수지 적자(-126억9000만달러)의 원인을 비율로 따졌을 때 54.9%는 에너지, 19.8%는 반도체, 20.3%는 중국(반도체 부문 제외)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3대 요인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액은 올해 1월 157억9000만달러로 지난 10년간의 동월 평균(102억5000만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산업부는 "유가가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며 원유 수입은 전년비 소폭 감소했지만 동절기 안정적 에너지 수급을 위해 가스·석탄 등은 수입 규모를 확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2대 요인인 반도체 수출, 중국 대상 수출은 지난달 크게 줄었다.

구체적으로 D램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세 영향으로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동월비 48억달러 감소(-44.5%)했다. 중국 대상 수출액은 1월 전년동월대비 31.4% 줄어든 91억7000만달러에 머물렀다.

대중(對中)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는 D램 등 주요제품 가격 하락세가 맞물리며 지난달(1~25일 기준) 대중 수출액이 전년동기비 46.6% 줄어든 20억3000만달러에 그쳤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에너지 가격 인상에도 석유·가스 등 동절기 에너지 수입은 줄지 않고 있다"며 "글로벌 경기 둔화 여파로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 감소세가 심화하고 있고 중국 리오프닝 효과도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반도체·중국"
정부는 3대 무역수지 적자 요인의 비중이 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종전에는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을 대부분 '에너지 수입액 증가'로 설명할 수 있었다"며 "최근에는 반도체와 중국 요인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요인이 무역수지 적자에 미치는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배럴당 110.93달러에 달했던 유가(두바이유 기준)는 올해 1월 80.42달러로 떨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인 지난해 1월(83.47달러)보다 낮은 수준이다.

반도체 불황이 계속되며 관련 수출액 감소폭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7월 전년동월대비 7.8% 줄며 감소세가 시작됐다. 이후 반도체 수출 증감율은 지난해 11월 -29.%, 올해 1월 -44.5%로 감소폭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대중국 수출 부진도 심화하고 있다. 중국 대상 수출 증감율은 지난해 △6월 -0.8% △7월 -2.7% △8월 -5.5% △9월 -6.7 △10월 -15.7% △11월 -25.5 △12월 -27.1%에 달했고 올해 1월에는 -31.4%를 보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무역수지 흑자 전환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반도체·중국 수출 회복을 꼽는다.

추 부총리는 지난 16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개최한 한국최고경영자포럼 기조연설에서 "에너지 때문에 무역수지 적자가 됐다"며 "무역수지가 하반기엔 회복할 것이다. 관건은 중국과 반도체"라고 말했다.

정부가 무역수지 회복을 기대하는 가장 큰 요인은 중국 리오프닝이다. 중국은 반도체 단일 품목 수출액 기준, 전체 수출액 기준으로 모두 한국의 최대시장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우리나라의 중국 대상 수출은 전년동월비 31.4% 급감한 91억7000만달러에 머물렀지만 여전히 2위 아세안(82억6000만달러)과 차이가 컸다. 지난해 연간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 중 중국의 비중은 40.3%에 달했다.

문제는 올해 중국 경제 회복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 발표한 '2023년 중국 경제전망 및 주요이슈' 보고서에서 "2023년 중국 경제는 글로벌 경기 악화로 수출 둔화 우려가 높은 가운데 그간 제로코비드 정책으로 큰 폭의 부진이 지속된 내수가 리오프닝으로 얼마나 회복되는지가 경제 성장세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한은은 "예상보다 빠른 중국 정부의 방역정책 변화로 경제는 소비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점차 확대되겠지만 리오프닝을 위한 사전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 리오프닝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높고 경기회복 효과도 제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만 풀리면 된다? "큰 효과 기대 어려워"
정부의 무역수지 회복 전망을 두고 산업계와 학계에선 '장밋빛'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원유 등 에너지 가격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며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상품 수출 부진도 계속되고 있어 무역수지 적자 문제가 빠르게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대를 걸고 있는 중국 리오프닝 효과에 대해서도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중국 리오프닝이 우리 무역수지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어서다. 중국 경제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면 단기적으로는 대중국 수출 증가로 무역수지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 가격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이 커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안 교수는 "중국이 봉쇄를 풀면서 다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 단기적으로는 일부 리오프닝 효과를 볼 순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실익을 중시하는 중국의 특성상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 장기적인 무역수지 개선에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도 "코로나 사태 이후 공급망 재편 등이 일어나며 과거처럼 중국을 통해 수출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며 "중국 리오프닝이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인 무역수지 위기를 탈출할 만큼의 큰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무역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시장의 반도체 제조용 장비 국산화율은 2021년 말 21%에서 지난해 상반기 32%로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출은 50% 가까이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대중국 교역 악화를 리오프닝 등 단기 이슈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핵심 소재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동시에 주요 산업 분야에서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대중국 무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안 교수는 "과거 일본과 갈등이 있을 때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일본 의존도를 낮춰 주요 산업에서 시장 국면을 전환하지 않았느냐"며 "이번 기회에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우리나라는 유럽 등과 비교해 에너지를 많이 쓰는 편이고 에너지 가격 영향도 크게 받는다"며 "장기적으로 에너지 수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절약과 이용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전환을 위한 투자도 늘려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2.20.


세종=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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