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우크라이나 전쟁 1년…'전쟁 끝낼 자' 누구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도 오는 24일로 만 1년이 됩니다. 당초 러시아의 압도적 전력에 밀려 맥없이 끝날 걸로 예상됐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과 서방의 지원으로 전쟁은 지금까지 공방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직접 전투 당사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이지만 실제 전쟁은 미국을 중심으로 나토는 물론 한국, 일본 등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들까지 참여하는 서방 진영 대 러시아를 필두로 중국, 이란, 북한 등 권위주의 반 서방 체제가 힘을 합친 진영 간 대결 양상으로 확대됐습니다.
러시아, 1차 전략 목표 달성…하지만 멈추지 않는 이유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어려운 게 바로 전쟁입니다. 더구나 이렇게 다자간에 복잡하게 얽힌 전쟁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의 종결은 누구 손에 달린 걸까요? 물론 정답이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만 이런저런 사정들을 검토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등 서방의 확장 움직임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전면전을 일으켰습니다.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이렇다는 할 천연 장애물이 없습니다. 이런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양측은 오랜 기간 긴장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저 요인이 전부는 아닙니다.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에서 보듯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 요충지 확보를 노려왔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이번 전쟁을 일으킨 1차적 목표는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남부 회랑 지역 확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이 분석대로라면 남부 요충지 마리우폴 점령 등을 통해 남부 회랑을 잇는 데 성공한 러시아로서는 전쟁을 끝낼 명분을 어느 정도 갖게 된 걸로 보입니다. 말이 왔다 갔다 하긴 하지만 러시아 쪽에서 협상 이야기가 나왔던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방의 지원에 힘입어 예상 밖 선전을 펼친 우크라이나에게 한 때 밀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러시아도 그냥 물러서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 됐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기는 하지만 러시아가 실제 핵을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바로 핵을 쓰지는 않겠지만 궁지에 몰릴 경우 1차적으로 우크라이나 근처에서 대규모 핵실험을 실시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속칭 '더티밤(dirty bomb)으로 불리는 포탄을 사용하거나 소규모 전술핵을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이는 강한 러시아를 갈망하는 러시아 국민의 희망과 맞물려 있습니다. 서방 언론은 푸틴에 대해 비판 일색이지만 러시아 내 푸틴 지지율은 1월 기준 80%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멈출 순 없는 우크라이나…'전쟁 피로' 변수
다음으로 전쟁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입니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와 동부지역을 되찾기 전까지는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바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당 지역은 우크라이나 전체 면적의 약 20% 정도라고 합니다. 아쉽긴 하겠지만 지금 같은 극심한 인명 피해를 계속 감수하면서까지 전쟁을 끌어야 하는가 회의가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20% 지역이 사실상 나머지 80% 지역과 맞먹는다고 할 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남부지역에 대부분의 산업시설이 몰려 있고 특히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라는 점에서 우크라이나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입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 지역을 포기한 채 자신이 먼저 종전 협상을 꺼낼 경우 지금까지 쌓았던 모든 자산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우크라이나 지도부 입장에서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변수가 없는 건 아닙니다. '전쟁 피로'입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막대한 인명 피해와 함께 일상이 파괴된 국민 사이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로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군 시설이 아닌 전력과 가스 등 민간을 포함한 기간 시설을 파괴하는 것도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 의지를 꺾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추위와 배고픔, 질병 등 각종 어려움에 우크라이나 국민이 무릎을 꿇는다면 우크라이나 정부도 협상 테이블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원 반대 목소리 시작…당장 지원 중단은 없을 듯
마지막으로 미국입니다. 서방 진영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의중은 결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그간 종전 협상을 언제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우크라이나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밝혀 왔습니다. 얼마가 걸리든 우크라이나와 함께 하겠다며 지원 의사를 거듭 재확인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미국 대통령이 전쟁 지역을 방문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모두 미군 혹은 동맹군이 해당 지역을 통제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우크라이나에는 미 대사관을 경호하는 해병대 병력이 전부입니다. 이렇게 위험을 무릅쓴 방문은 사실상 처음인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습경보 속에서도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전사자 추모의 벽으로 가 헌화했습니다.
불과 5시간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미국이 돌아왔다'는 취임 일성을 재확인시키며 서방의 리더로서 미국의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철수 때 실패를 만회하고 나아가 동맹 재건, 미국 중심 세계 질서 강화라는 성과를 거둔 셈입니다. 재선 도전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가장 절실했던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적어도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그들이 목표로 했던 미국의 리더십 부활과 동맹 재건은 물론 바이든 대통령 본인의 재선 도전을 위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먼저 발을 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트럼프식 미국 우선 주의에 입각한 공화당 내 강경파들이 남의 전쟁에 왜 국민 세금을 쓰냐며 반발하고 있는 점이 변수라면 변수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당장 미국이 지원을 중단하게 만들 정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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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 연합뉴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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