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자서분양' 악몽, 실적 부풀리기 뇌관될듯

김노향 기자 2023. 2. 21.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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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미분양'과의 전쟁] ② "땅 팔아주면 인센티브"… 직원 총동원령 내린 건설업체

[편집자주]분양시장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특히 입주 시점이 지나도 주인을 못 찾은 '준공 후 미분양'은 시공사·시행사의 막대한 손실로 이어져 할인분양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존 계약자와의 대립이나 법적 분쟁 등으로 확산될 공산도 크다. 과거에 할인분양을 진행한 아파트의 기존 계약자가 앙심을 품고 분신을 하는 등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분양 물량을 떨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 살포되는 분양(계약)촉진비(마케팅 비용)는 결국 건설회사에 실적 악화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향후 분양가 상승 등 간접 효과로 이어져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전가되고 사회적 손실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2010년대 자사 임직원들에게 미분양 아파트를 떠넘겨 강매 논란이 제기됐던 '자서(스스로 서명함) 분양' 관행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래픽=강지호 디자인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강남역에 나타난 호객꾼… "계약하면 7000만원 드려요"
(2) 10년 전 '자서분양' 악몽, 실적 부풀리기 뇌관될듯
(3) "70%가 공실" 지식산업센터 골칫덩이 전락

#. 직장인 A씨는 2014년 서울 외곽의 신규아파트를 100% 대출로 분양받아 임대하다가 분양가보다 낮은 금액에 되팔았다. 세입자 구하기가 어려워 공실 기간이 짧지 않았던 데다 대출이자와 세금까지 감안하면 A씨가 손해 입은 금액은 수천만원에 달했다. 그가 분양받은 건 아파트 공급업체에 근무하는 형 때문이다. 처음 분양 당시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하자 회사는 분양률을 높일 목적으로 임직원 가족까지 동원해 계약서에 서명토록 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 있었던 2010년대 자사 임직원들에게 미분양 아파트를 떠넘겨 강매 논란이 제기됐던 '자서(스스로 서명함) 분양' 관행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자서분양이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한 건설회사 직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자서'에 나서서 투자 피해를 입을 뿐 아니라 시공사·시행사의 사업실적을 허위로 부풀리는 결과를 낳게 해 문제로 지적된다.

2013년 국토교통부와 건설노조는 자서분양을 전체 미분양 물량의 5% 이하로만 허가하도록 규제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정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일부 건설업체는 자서 물량이 5%를 초과해 노조가 문제를 제기했다.

2010년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을 밟다가 2014년 법원의 파산 선고를 받은 벽산건설은 직원들이 강제로 떠안은 자서분양 중도금대출에서 대거 연체가 발생했다. 당초 회사는 직원들에게 자서분양 받은 아파트의 대출이자를 대신 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회사의 이자 지급이 끊겼고 아파트가격마저 하락해 일부 직원들은 살던 집을 압류당하기도 했다.

최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방의 한 중견건설업체는 상가 분양의 65%를 자서분양으로 떠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분양을 떠안은 직원들 가운데 퇴사한 일부는 회사의 강요로 이뤄진 계약이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형 건설업체 중개 프로모션도 등장


자서분양과는 다른 형태지만 시공능력 6위 대형 건설업체 대우건설은 개발사업이 중단된 산업단지 용지의 매수인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우건설에 따르면 영남권산단태스크포스팀(TFT) 직원을 제외한 전체 임직원은 경남 창원, 경북 경주, 울산광역시의 일반산업단지 부지 매수인을 회사에 소개해 거래가 성사될 경우 총분양금액의 3%(원천징수 22%)를 인센티브로 지급받을 수 있다. 최대 인센티브는 80억원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대우건설 측은 밝혔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시행사의 요청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한 경우도 있고 회사가 투자한 PFV가 보유한 산단도 있다"면서 "법인 영업이다 보니 계약 성사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창원 동전 일반산업단지 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에 기업유치 설명회가 지연되고 경기 침체로 투자자 모집에 실패해 사업에 난항을 겪었다.

대우건설은 미분양 우려로 400억원대 보증금과 시공권을 포기하는 사태마저 발생했다. 울산 동구의 한 주상복합 개발사업에 시공사로 참여했던 대우건설은 440억원의 대출 보증을 자체 상환하고 시공권 포기 의사를 시행사 측에 통보했다. 지난해 시행사는 토지 매입과 인·허가 비용으로 증권사·캐피털 브리지론 약 1000억원을 조달했고 대우건설은 440억원의 보증을 제공했다. 공사비는 약 1600억원을 받기로 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금리가 10%를 넘기는 상황에 리스크 관리 차원의 손실을 감수하고 책임 이행을 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려자 계약을 아시나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10년대 일반 소비자의 대량 피해를 발생시킨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체로 인한 부실 사태가 발단이 됐다. 각 건설회사들은 자사 직원에게 강제 분양을 넘어 명의만 도용한 가짜계약서마저 만들어 계약률을 높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부 건설회사는 주민등록이 말소되지 않은 행려자의 명의를 이용해 가짜계약서를 만들기도 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심지어는 업체들끼리 행려자 명단을 공유해 분양률을 높이는 데 이용했고 이를 통해 가구당 1000만~2000만원인 계약촉진비를 빼돌렸다는 소문마저 무성했다.

건설업체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감추는 이면엔 수많은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었다. 제대로 된 계약이 아니다 보니 사실상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실제 당시에 주택사업을 하던 시공능력 26위 벽산건설을 비롯해 남광토건, 중앙건설, 한일건설 등 9개 건설업체가 워크아웃을 밟았다. 성지건설 등 7개 건설업체는 대주단의 결정으로 대출 연장이 불가해 청산됐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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