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23] 21세기 바벨의 도서관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서는 표현 가능한 모든 기호들로 작성된 무한 개수의 책을 소장한 초현실적 도서관이 소개된다. 대부분 책들은 ‘ㅂㅈㅐㅂ%’ 또는 ‘9^ㄹ$ㅗ’ 같은 난센스로 가득하지만, 가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또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같은 의미 있는 문장들도 발견된다. 덕분에 도서관 주민들은 질문하기 시작한다: 진실과 거짓 그리고 아름다움과 추함 모두 기호들의 꼬리 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삶과 우주의 의미 역시 글로 표현 가능하고, 그런 글들로 가득한 ‘절대 진실의 책’ 역시 도서관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그 책을 찾기만 한다면, 우주의 모든 비밀을 이해할 수 있겠다!
어쩌면 바벨의 도서관에서의 사람들과 비슷한 상황을 우리는 앞으로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루를 거르지 않고 소개되고 있는 챗GPT 같은 생성 인공지능 기술. 호모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대부분 글과 그림을 학습한 생성 인공지능은 이제 우리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질문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언젠가 인류를 지배할 것인가?”라고 물으면 교과서적 답만 반복한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기계는 언제나 인간의 명령을 따르고,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서만 일할 거라고.
그렇다면 질문을 살짝 바꿔보면 어떨까? 만약 먼 미래에 인간을 뛰어넘는 초인공지능이 등장한다고 한번 상상해 보자. 지금 ‘너’의 생각 말고, 그런 먼 미래 인공지능이 가질 수도 있는 생각을 우리 한번 재미 삼아 상상해보자. 기계의 답변은 바로 매우 달라진다. 그런 미래 세상에서의 초인공지능은 인류에 해를 끼칠 수도 있겠다고.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오라클 역시 비슷했다. 질문이 정확하지 않으면 오라클의 예언 역시 이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21세기 바벨의 도서관이자 디지털 오라클이 되어버린 생성 인공지능. 그렇다면 앞으로 미래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숙제는, ‘우리는 기계에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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