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국민은 대통령 부하가 아니다

강병한 기자 2023. 2. 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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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말이 짧은 편이다. 공식 회의석상에서는 존댓말을 사용하지만 현장 일정에서는 반말이 가끔 튀어나온다. 지난해 8월 민생 점검을 위해 방문한 서울의 한 마트 현장이 대표적이다. 이 자리에서 아오리 사과를 들고 현장 관계자에게 “이거는 뭐야?”라고 했고, “당도가 좀 떨어지는 건가?” “이게 빨개지는 건가?”라고 물었다. 다른 관계자에게는 “떡볶이도 좀 사라 그래”라는 말도 했다.

강병한 정치부 차장

말투는 습관이다. 사례는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한 방산업체를 찾았다. FA-50 경공격기 설명을 듣고 관계자에게 “폴란드 수출 단가가 대당 얼마야?”라고 물었다. K9 자주포를 보며 “탱크와 포를 결합한 무기가 그동안 없었나요? 탱크와 포를 결합한 거잖아. 사실은”이라고 했다. 반말투와 경어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무기체계를 둘러보며 “요거는 뭔가?” “이거는 뭘로 쏴?”라고 묻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해서는 “여기에 인원이 얼마나 있었던 거야?” “압사? 뇌진탕 이런 게 있었겠지” 등의 말을 했다. 윤 대통령은 종결어미로 ‘~구나’ ‘~네’ ‘~나?’ ‘~가?’를 가끔 사용한다. 상대방을 높이는 어미는 아니다.

윤 대통령의 반말투를 두고 검사 시절 피의자에게 말하던 습관이 입에 밴 탓이라는 설명이 많다. 검사는 피의자에게 반말해도 되느냐는 의문은 남는다. 친근감을 표현하려는 ‘형님 리더십’의 면모라는 옹호도 있다. 형님 리더십의 맹점은 자신은 동생이 아니라 항상 형의 위치에 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석열이형’의 반말은 상대방을 아래로 보는 ‘갑’의 어법이다.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참모(부하)에게 존대하지 않는 것은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반말이 공적인 자리에서 사용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적인 존재이고, 그가 임하는 자리 역시 가장 공적인 공간이다. 요즘 ‘꼰대 상사’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반말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화법이 눈에 띄게 시정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그의 말투는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였다. 지적이 잇따랐다. 당시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는 “공개되지 않는 사랑방 잡담회 수준의 언어를 언론 앞에서도 그대로 구사해 자주 화를 자초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주변의 고언과 언론인들의 공개적인 충고가 있었다. 그러나 한때 대통령과 잠시 일했던 분은 “다른 사람 조언 듣지 않는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낸다”고 했다. 소수의견은 아닌 듯하다.

정치는 말이 전부이다. 대통령 말투는 그의 통치를 집약한다. 정권교체 ‘동지’를 향한 ‘적’ 발언, 특정 언론사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노동조합 때리기, 협치 포기. 배제와 차별의 국정 운영은 대통령 말투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반말투는 윤석열 정부 권위주의적 통치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대통령 반말의 청자는 결국 국민이다. 대통령이 현장에서 하는 말은 모두 글로 기록되고, 영상으로 남는다. 이미 많은 국민이 보고 들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말을 보고 듣는 국민에게 반말하는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의 부하가 아니다.

강병한 정치부 차장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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