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44] 기계와 대화하는 시대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3. 2. 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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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취업 인터뷰에서 막말이 튀어나와 당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진행한 인터뷰가 아닌 컴퓨터 스크린 앞에서 인공지능과 벌인 인터뷰였다. 검은 스크린 뒤에 숨은 기계 앞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 인간으로서 확 짜증이 났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인간-기계 관계(Human-machine relationship)’ 관련 글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인간의 뇌가 컴퓨터와 네트워크로 직접 연결된 세상을 그린 1999년 작 ‘매트릭스’란 영화를 보면서 기술적으로 난해하지만 언젠가는 뇌와 컴퓨터가 직접 소통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런데 기계가 사람 표정과 언어를 파악하는 능력이 발달하고 심지어는 말도 잘하게 되면서,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 발전을 건너뛰어 기계가 인간 관계의 중요한 대상으로 순간 이동해 버린 느낌이다. .

앞의 예처럼 인공지능이 면접 대상자의 표정, 몸짓 같은 시각적 정보, 사용 단어 등의 언어적 정보, 그리고 목소리 톤 같은 음성 정보 등을 취합 분석해 면접자의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보조적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더 나아가 아예 인공지능이 결정까지 내리는 ‘인공지능 주도 인터뷰’도 있다. 인공지능이 개입된 인터뷰 때 스트레스가 커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이 판단 결정에서 우월하다는 인식이 있는 경우에 압박감이 커진다. 또는 사람과 연결이 끊어진 상황의 인터뷰가 긴장도를 올리고 불안감을 증폭할 수 있고 부적절한 언행이 튀어나올 수 있다.

인공지능과 하는 인터뷰 관련 조언도 있는데, 알고리즘에 잘 보이려는 마음이 너무 크면 몸도 굳고 시선도 고정되어 정말 스스로가 로봇 비슷하게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계와 인터뷰할 때 인간인 나를 자연스럽게 유지하라는 웃지 못할 조언도 있다. 구체적으론 예상 질문을 설정하고 컴퓨터 앞에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반복 연습을 추천한다.

말 잘하는 인공지능이 이슈다. 당연한 결과이긴 한데, 말을 잘해서 사람으로 느끼는 정도(perceived humanness)가 클수록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상대방은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일 수도 있고 제공하는 정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을 잘하는 것과 그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가는 다른 문제다. ‘인공지능 환각’은 틀리거나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사실처럼 이야기하는 현상이다. 신뢰와 환각이 결합하면 사람을 도와줄 기술이 해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인공지능 윤리 기준 등 건강한 인간-기계 관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가 훅 찾아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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