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이들의 땅’ 시리아 [더 나은 세계, SDGs]
사상 최악의 강진으로 530만명이 거처를 잃고, 국제 구조팀이 없어 아이들이 시신의 잔해를 옮기는 데 여념이 없는 나라가 있다. 이번 강진으로 9000명 가까이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국제사회로부터의 도움과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한 ‘고립의 땅’ 바로 시리아다.
지난 6일(현지시간) 오전 4시17분 규모 7.7의 지진이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인근을 강타했다. 9시간 후인 오후 1시24분쯤 규모 7.5의 지진이 다시 한번 카흐라만마라쉬 인근에 발생해 튀르키예의 남동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강진은 21세기 들어 역대 6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낳은 자연재해로 기록된다. 그동안 현지에서는 지진 피해가 자주 발생하지 않아 내진 설계나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던 만큼 피해 규모는 막대하다.
국제사회는 너나 할 것 없이 튀르키예를 향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구호와 관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진 발생 직후 10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튀르키예에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즉각 구조대를 파견했고, 조속하게 구호물품을 조달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8일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튀르키예에 역대 최고 규모인 118명의 ‘대한민국 긴급 구호대(KDRT)’를 파견하여 생존자 탐색 및 구조에 총력을 다했다.
주한 튀르키예 대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한국 국민의 전화로 먹통이 될 정도”라고 밝힌 만큼 한국 역시 한마음으로 지진 피해를 돕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시리아와 관련해 “완전한 재앙, 그 자체의 모습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고 우려했고,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 긴급구호 사무차장 역시 “지난 10년간 내전의 주요 전선이었던 도시는 지금 이 순간 최악의 경험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시리아 국민을 도외시하며, 아무도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120시간이 지난 지금 시리아의 생존자 찾기는 중단되었고, 아무도 우리에게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장비와 긴급조치, 도움을 요청했지만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라는 말만 들려올 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번 지진 피해로 가족을 잃은 시리아 북부 거주민 아부 알라는 국제사회를 겨냥해 이렇게 통탄을 쏟아냈다.
오랜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의 상황은 열악하다. 이미 내전으로 포화 상태에 이른 병원에는 지진으로 피해를 본 부상자들을 받을 곳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구호 물품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통제되어 있다.
국제구조위원회(IRC) 측은 “현재 운영 중인 시리아 의료 시설은 전체의 45%에 불과하고, 그나마 운영되던 대형 병원들도 지진 피해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스페인 의사 몇명을 제외하고 이 지역에 도착한 국제구호팀은 없다”고 밝혔다.
시리아의 일반 외과의사인 파루크 알 오마르에 따르면 초음파 장치 단 1대로 지진 직후 환자 350명을 치료해야 했다.
그는 “평소에도 의료진이 부족했던 곳이고, 이미 같은 내용을 몇번이고 말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외면당하고 버려지는 것에 익숙합니다”라며 씁쓸한 상황을 전했다.
유엔에 따르면 이번 지진 전부터 시리아 인구의 70%는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었다. 국제사회가 시리아로 구호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인도적 지원 통로도 최근 그리피스 사무차장과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합의 끝에 단 2곳만 추가 개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구조팀이 없는 시리아 하렘에서 아이들이 잔해를 옮겨야 했다. 목숨의 가치가 어느 지역에 사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없지만, 시리아인은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한 셈이다. 인명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나, 시리아에는 여전히 적막만이 감도는 상황이다.
성서현 UN SDGs 협회 연구원 unsdgs.seohyeon@gmail.com
* UN SDGs 협회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 지위 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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